맨해튼 정신과의사(7)
뮌하우젠 신드롬
놀라울 게 없었지만 이번주에도 주말밤에 당직이 걸렸다. 금요일 밤도 아닌 토요일 밤당직. 토요일엔 왠지 사건 사고가 더 많았기에 여느 때 보다 조금 더 긴장을 하고 CEP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6시도 안됐는데 응급정신과는 도떼기시장처럼 아수라장이었다. 대기실에서부터 간이 입원실까지 1개만 남겨놓고 만실이었다. 환자가 이렇게나 많으니 쉽지 않은 밤이 되겠구나 생각했지만. 웬걸, 막상 와 보니 이전 시프트의 3년 차 레지던트 선생님과 사회 복지사님이 거의 모든 환자의 신체검사와 인터뷰까지 끝내 놓은 상태였기에 난 남아 있는 환자를 대면하고 1개의 병동을 채우면 끝. 혹시나 새벽에 정신병동하나가 열려 이곳에서 그쪽으로 퇴원이 있을 경우에 나 새로운 환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당직 교수님께서는 급한 환자들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가능한 퇴원에 초점을 맞추라고 지시하셨다. 하지만 중증 환자분들을 아무 대책 없이 내 보낼 수는 없는 일이라. 난 계속 원리원칙을 기반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남은 몇 분의 환자분들 또한 모두 입원 대상이 되었다. 결국 응급실은 꽉 차다 못해 복도에 까지 환자를 수용하게 되었고 응급정신센터를 다급히 찾고 있는 분들에겐 다른 병원을 소개해 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더셉의 스태프들은 새로운 환자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기에 병원 안에 계신 환자분들을 돕는다거나 각각 밀린 서류 작성이나 개인일을 하며 정말 오래간만에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사회복지사님께서 서프라이즈 피자를 쏘아 주셔서 여담을 나누며 피자를 한 조각씩 먹었다. 여담이지만 난 솔직히 토핑이 하나 이거나 치즈만 덮여 있는 미국 스타일 피자가 싫었다. 한국에서 처럼 밥대신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푸짐한 토핑이 무척 그리웠던 것 같다. 그나마 이렇게 피자를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했지만.
피자 한 조각을 거의 끝낼 무렵이었을까, 병원 방송에서 다급히 나를 찾았다.
"Dr. You, please come to room 201. Again room 201.”
"역시나 날 편하게 뇌둘리가 없지" 속으로 생각했다.
피자를 먹던 나와 스태프들은 먹던 피자 조각을 집어던지고 우르르 201 병동으로 달려갔다.
달려간 그곳에는 여성환자분이 목에 이불끈을 두르고 두 명의 경비요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멜리사 무슨 일이죠"
201 병실 앞에서 15분 체크*를 하시던 간호사님께 상황 설명을 부탁했다.
*15분 체크란 병원 내에 있는 병동을 15분마다 돌아다니며 환자의 안전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다. 정신과 병동은 자살의 위험이나 자해 또는 타인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기에. 병원 입원 시 자살/자해를 할 수 있을 만한 모든 물품은 제거해야 한다. 운동화끈, 넥타이, 뾰족한 팬 등등. 심지어 환자분들이 이용하는 침대, 의자, 책상들도 움직이거나 던질 수 없게 거의 바닥에 고정이 되어있고 상당히 무겁게 만들어져 있다. 침대나 의자 옆면은 손을 넣어 들 수 없게 평평한 면으로 막혀있어 힘으로 들려고 해도 미끄러지게 디자인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어떤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기에 15분마다 병동을 돌며 환자분들의 안전을 체크하는 것이다.
"오늘 오후에 심각한 자해로 입원한 여성이 이불을 찢어서 길게 끈을 만든 것 같아요. 그걸로 방문에 목을 매려 한 것 같아 보입니다."
방문에 도대체 어떻게 목을 메지? 속으로 생각했다.
보아하니 이 환자는 병동에 목을 맬 곳이 없어 문의 위 가장자리에 이불로 만든 끈을 걸고 목을 매려 했지만. 환자의 몸이 육중하고 키도 커서 그리 쉽게 목을 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환자를 잘 아는 사회복지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환자는 20번이 넘는 자살 시도를 했고 대부분 보여주기식 자살 시도로 의심이 되었다고 했다. (물론 진심 일 가능성을 배재하지는 않았다. 습관적인 자살 충동 끝에 결국 세상을 마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스태프들이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죽어버리겠다고 고함을 치며 병동은 그야말로 아수라 장이 되었다. 두 명의 경비요원이 제지를 하려 했지만 그녀의 육중한 몸과 힘을 제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두 명의 지원을 더 받고서야 그녀를 침대에 눕힐 수 있었고 할 수 없이 그녀를 침대에 묶어놓아야 했다.
"4 point 포박*을 하세요."
내가 병원에서 제일 하기 싫어하는 오더를 내려야 했다.
*4 point 포박 = 4 point restraint 란 두 팔과 두 다리를 병원 침대에 고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가 너무 폭력적 이거나 자신아나 다른 주위 사람한테 해가 갈 수 있을 때 쓰는 마지막 방법이다. 때에 따라서는 한 곳을 추가해서 5 point 포박을 하기도 한다.
참 아이러니한 순간이 아니었다. 이 환자는 죽으려고 시도를 하고. 상식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위로와 서포트가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강제적인 제재가 가해지지 않으면 오히려 그녀와 주변 사람들을 더 위험에 노출시키는 상황이 되는 거다.
포박이 된 그녀 옆에서 난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도통 통하지가 않았다,
어떤 말을 해도 그녀는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난폭해졌다.
"Shut up you chinese little monkey.”
나를 중국원숭이라 불으며 계속 침을 뱉으며 반항을 하는 그녀에게 마스크를 씌어 드리고 설득하려 했지만 그녀의 현재 감정상태로는 더 이상의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게다가 침대에 묶여 있는 팔과 다리를 마구 비틀어 대느라 손목과 발목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간호사님 준비해 주세요."
간호사님께서 항정신성 약물, 그리고 약의 부작용을 줄여주는 항히스타민 계열의 약물을 적절히 섞어 가지고 오셨다. 이 약물들은 병동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환자를 진정시킬 때 쓰이는 약물이다.(체구가 몹시 크거나 힘이 좋으신 환자분들에겐 추가로 벤조다이아자핀이라는 진정제를 추가하기도 한다.)
간호사 분께서 가져오신 주사 바늘을 환자의 허벅지 근육에 꽂기 전 잠시 멈추게 하고 한 번 더 그녀에게 우리가 뭘 도와줄 수 있을지 말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침을 뱉어 응답을 했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마스크도 쓰고 있지 않은 내 얼굴에 그녀의 침이 흘러내렸다.
난 침을 닦으며 조용히 뒤로 물러나 간호사님께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왠디, 조금만 기다리면 좀 진정이 되실 거예요…"
간호사님은 고개를 저으며 왠디에게 약물을 투여했다.
왠디는 한동안 소리를 지르다 약에 취했는지 잠들어 버렸다.
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스태프들 중 한 분을 병실 문 밖에서 왠디의 상태를 지켜보게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스태프들과 의국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던 듯 농담을 계속 나누며 남은 피자를 마저 먹었다.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세요?"
응급정신과 실습을 돌고 있던 본과 의대생이 물었다.
"어떻게 환자가 저 지경이 됐는데 농담이 나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