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모삼천지교 Feb 23. 2024

아이를 키우는 일=피곤한 일?

정말 한국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BUT!

주말 저녁.

바쁜 한 주 끝에 남편이 집 앞에 새로 생긴 이자카야를 가보자며 재킷을 집어들었습니다. 늘 오가면서 사람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던 그 식당은, 일본어로 된 간판을 내걸고 있는 꼬치구이집이었습니다. 안쪽이 다 보이는 통 유리로 보이는 매장 안쪽은 일본에서 지낸 학생 시절, 지하철 역 앞에서 가끔 들렸던 작은 선술집과 비슷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엿보였습니다. 일본어로 쓰여진 메뉴들이 나무판에 달려있고, 그 앞의 바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을 먹으며 즐거이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 가득했죠. 매 번 지나면서 볼 때마다 사람이 늘 많고, 여름철이면 바깥 테이블까지 사람들이 꽉 찰 정도로 인기라 한번은 꼭 가봐야지 하던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나가려니 옷 갈아입는 것도 귀찮고, 그냥 집에서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는 "엄마도 안 가봤는데, 인테리어 한 것 보면 음식도 맛있을 것 같아. 같이 가자~~~~."라며 애교아닌 애교를 부려 간신히 함께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 식당에서,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 걷던 남편이 대기자 등록을 위한 키오스크에 다가서 등록을 하려다 멈칫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왜? 너무 사람이 많아?"

"아니..이거.."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한가지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린이 입장 불가

혹시 아이가 볼까 얼른 제 손안의 아이 손을 끌고 다른 식당을 가자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엄마, 왜? 우리 저기 가려던 것 아니야? 왜 안가? 사람이 많아?"


'네가 아이라서' 입장을 거부하는 식당이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뭐라 설명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괜히 제 손 안의 작은 손을 꼭꼭 눌러잡아보며 식당을 지나 걷는데 김이 살짝 서린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그 식당 안 창가에는 4인용 테이블에 둘이 마주보고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나베요리를 나누어 먹고 있는 연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제 막 서른 즈음 되었을까요.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핸드폰 속의 무언가를 함께 보며 웃음이 터진 그 사람들은 너무 즐겁더군요. 두께 2cm도 안되는 유리창 사이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가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한 때 살아본 적 있지만, 쭉 살까 생각해본 적도 있지만

이제 완전히 떠나온, 그리고 돌아가지 않을.. 

아이가 없는 세상.


그리고 제가 발을 딛고 있는. 아이가 있는 세상.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보는 세상은

그렇게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원래, 이렇게 나뉘어야 다들 살만한 걸까요?


아이에게 '노키즈존'을 설명해 준 적은 없지만, 언젠가부터 아이는 한국에서는 자신이 환영..아니 환영은 고사하고 입장이 아예 안되는 곳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합니다.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왜'그런지는 납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늘 환영받고, 늘 어린이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어른들이 가득한 곳에서 보낸 시간들을 정말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아이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른들을 무어라 설명해 주어야 할 지 몰라서 설명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사실, 아이에게만 설명이 어려운 이슈는 아닙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친구들에게도 한국의 이런 노키즈존은 참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긴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에서 한국을 찾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이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특징들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깨끗하다.

다들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심지어 아이들도 깨끗한 복장과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침 일찍 커피 파는 곳을 찾기가 힘들다.

.

.

그리고, 식당이나 대중교통 속에서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여행으로 온 사람들의 동선이란, 미혼 남녀의 데이트 동선과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일명 '핫플'이라는 곳을 주로 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곳들에서 '아이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을 집어내는 사람들 역시 모두 부모들이었습니다. 짧은 여행이나 출장으로 왔더라도, 나중에 아이를 데리고 가족들과 한국을 다시 올까 생각하며 둘러본 공간안에 아이들이 없는 경우가 자주 있어 이에 대한 인지가 생긴 경우였죠.

이런 친구들의 관찰에 대해 한국에는 “노키즈존”이 있다는 설명을 해주면 다들 굉장한 놀라움을 표합니다. 어떤 “존재”, 그것도 어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차별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가능하다는 점에 가장 큰 의아함을 표합니다. 몇일 전프랑스의 르몽드지에서는 이런 한국의 노키즈존에 대해서 보도를 하며 '특이한'점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특이한 점“이라고 볼만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제는 이런 특이한 점들이 너무 일상화 되어서 특이한 것인지도 모를 정도인 듯 합니다. 르몽드지가 노키즈존에 주목한 이유는 한국의 저출산율의 이유를 알아보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요, 이를 보도한 내용을 보던 중 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은 아이가 있다는 것 만으로 피곤해지기 때문.“

맞아요. 아이가 있다는 것 만으로 피곤해지고 포기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는 한국입니다. 


요즘의 미디어 속 컨텐츠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특히 더더욱 이런 느낌입니다. 연애도,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모두 굉장히 “피곤한” 일로 느껴집니다. 연애 프로그램에는 육각형 인간들이 넘쳐나고, 가만히 있어도 스쳐가는 컨텐츠 속에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워서 좋고 행복한 일보다 아이를 키워서 생기는 문제적 상황들이 더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잘못된 양육환경에 노출되어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대상으로 솔루션을 제공하는 TV프로그램 중 특정 장면- 주로, 아이의 극심한 문제 행동이 나오는 부분-이 짧은영상으로 인스타그램과 유투브를 돌아다닙니다. 이혼을 고려하는 사람들의 사연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가상 이혼이라는 컨셉을 가진 프로그램들도 보이니 결혼이라는 제도가 진짜 사람에게 필요한 것 맞는지 의심스러워 지더군요.


반면, 혼자사는 사람들의 싱글라이프를 즐겁고 재미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각 방송사별로 수 년 째 가장 인기있는 공중파 방송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의 행복을 전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어요. 아, 반려견 유모차가 사람 아이의 유모차 판매 수를 뛰어넘었다는 기사를 반증이라도 하듯, 반려견& 반려묘와의 삶이 선사하는 행복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SNS상에 가득합니다. 미디어 속의 모습만 이럴까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선후배들 중 “부모와 누군가의 배우자”로서의 삶이 주는 기쁨을 이야기하는 분들보다는 그로인한 [노고와 애환]을 나누시는 분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아니요. 다시 생각해보니, 직장에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극도로 아끼시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분들 삶에 가정이 후순위였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만큼 친밀해진 분들 중에는, 그 누구보다 살뜰하게 가족을 아끼는 분들이 많으셨으니까요. 다만 아이와 가정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비 전문적”이거나 “직장생활보다는 가정에 큰 에너지를 쓰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추어질까 조심하시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도 아니고 2010년도에도 회식 자리에서 ”애 낳는 여자 직원들이 회사 입장에서 제일 쓸데없다.“라고 당당히 말하던 임원분이 계시기도 했으니, 저보다 선배님들이 직장생활을 막 시작하고 결혼과 임신과 육아를 하시던 시기에는 더했으리라 짐작이 갔거든요. 


아주 오래전에는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알게 되는 '행복'이란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더 논의되지 않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혼-출산-육아] 3종세트가 그저 누구나 모두 하는 일 즈음으로 알고 자란 80년대 생들이, 어디서도 누구도 정확히 이야기 해 준 적 없는 당황스러운 진실들을 마주하며 그렇게 알게 된 사실들을 쏟아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이 그러했고, 웹툰 '며느라기'가 그랬습니다.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와 같은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회자된 이유도 그래서였죠.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모두 비슷하게 당황스러워했고 어이없어하고 있다는 점을 이런 컨텐츠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미디어와, 일상속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굳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해야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미 지나온 저도 이러니, 아직 결혼도 안한 분들에게는 시작도 하고 싶지 않은 명제가 되어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그 결과로 자주 들리는 뉴스들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저출산에 4년 후엔 어린이집·유치원, 3분의 1이 사라진다
인구 소멸 전국지도...100년 안 사라지는 마을 수 123곳


아이를 키우는 일이 '피곤하고' '불편한'일인데 이를 감.수.하.며. 결혼과 육아의 과정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미리 고통스러울 각오를 하고 시작하는 결혼이란, 육아란 있을리가 만무해보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경제적인 논리나, 감내도의 정도를 떠나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하는 결정이어야 하니까요. 


이대로 쭉 진행될 경우, 수십년 후의 한국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데 마침, 근거리에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이죠. 잃어버린 30년, 고령화 사회, 저출산...등의 키워드로 대변되는 일본은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한 문제들을 먼저 경험하고 있습니다. 되려 고정된 남녀 성의식이나 가정 내의 가사분담 비율 등이 어떤 면으로는 한국보다 훨씬 더 심한 남녀 차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일본을 두고,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는 이런 인터뷰를 한 적 있습니다.  

"만약 내가 지금 일본에 사는 열 살짜리 아이라면
AK-47(자동소총)을 구입하거나 아니면 이 나라를 떠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일본에 사는 아이들은 앞으로 일생을 살며 끔찍한 일을 겪게 될 테니까."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짐 로저스의 어떤 예견] 중

매우 충격적으로 들리는 이 인터뷰를 두고 일본 내에도 큰 파문이 일었다고 하는데,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2가지였습니다. 바로 [빚]과 [저출산]이었죠. 2019년에 발행된 이 책에서 언급되는 일본의 모습은 2024년의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그의 이런 경고에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고령화, 저출산, 증가하는 나라 빚, 벌어도 복지비로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젊은이들...똑같지 않나요? 이런 구조 속에서 나라를 떠나는 것이 답이라는 짐 로저스의 인터뷰를 읽으며 참으로 착잡한 마음을 그 이상으로 절망적이었던 것은, 실제로 2024년의 일본에서 현재 해외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일본의 상황을 두고 캐나다 토론토대의 사카모토 이즈미 연구원“성평등 조사에서 116위인 일본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떠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밝혔습니다. 이를테면 남성보다 학업성적이 더 뛰어나더라도 여성이 얻을 수 있는 기회의 가능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 환멸을 느껴 20여년 전 일본을 떠났다는 사카모토 연구원은 “일손부족 때문에라도 여성 근로가 장려되고 있지만, 일본 정치인들은 여전히 여성은 집에서 아이와 노인을 돌보기를 원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해당기사 내의 인터뷰 참조)


한국은 어떨까요? 

2024년의 한국은 출산 장려금을 늘리거나,  이제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집을 살 수 있도록 1%라는 낮은 금리로 5억까지 대출을 해주는 등 금전적인 지원의 내용이 뉴스와 신문에 계속 보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1억을 준다는 회사에 대한 기사도 등장했습니다. 

음. 당장의 해결책은 '돈'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실제 출산율을 해결하기 위해 집행된 예산중 거의 반 가까이가 '주거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실그보다 중요하고 먼저 해결이 되어야 할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문화가 아닐까 싶은데 말이죠.


나의 선택으로 꾸린 가정

사회가 '결혼'과 '출산'을 누구나 당연히 해야할 통과 의례처럼 시기와 형태를 강요하지 않고, 오롯이 개인의 선택의 영역으로 인정했으면 합니다. 결혼의 시기도, 출산의 시기도 개인이 정한 삶의 궤도 안에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서로서로 이해하고 '가정'의 형태에도 정해진 모양새란 없다는 점을 이제는 이해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성적인 정체성이 일반적인 통념과 달라 동성인 사람을 사랑하여 가정을 꾸리던, 결혼을 했었을지라도 여러가지 가치관의 차이로 싱글 맘 또는 싱글대디로 살아가기를 택한 경우던, 혼인하지 않고 아이만 키우겠다고 결정한 경우던...또는 1인 가정으로의 삶이던. 그 모든 형태들을 '가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 속에서 더 많은 행복들이 자랄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자랄 가능성도 함께 생겨납니다. 


모든 가치판단의 중심에 있는 '가정.'

가정을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일을 같은 조직 구성원의 이해나 양해를 구할일이 아니라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균형잡힌 삶을 더 잘 운영하는 모습' 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라면, 소리내어 아이 또는 배우자와의 시간이 주는 행복을 논할 경우도 많아지지 않을까요?  

지난 2020년. 코로나가 심해 건물이 모두 폐쇄되고 대부분의 회사가 재택근무를 하던 뉴욕에서,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중요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지인은 한창 중요한 내용을 진행하던 중 아이가 'Mommy, I'm hungry!!"라며 일하던 방으로 뛰어들어오는 바람에 미팅이 잠시 중단되었었다는 일화를 전한 적 있습니다. 혹시 그로 인해 사내에서 눈치보이거나 안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없었냐 묻는 제 질문에,친구는 이런 답을 주었습니다. 

"뭐, 좀 당황스럽긴 했는데, 다들 안그래도 지루했는데 아이 때문에 refresh 되었다고 하던데? 

아이인데 뭐. 그럴 수 있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이는, 아이를 가진 직원에게 '너그러운'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사람들이 마주할 있는 여러 상황은 당연히 누구에게나 있을 있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질 때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해볼만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일화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며, 아이가 환영받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환영받던 사회에서의 기억은 딩크로 살자 이야기했던 제가, 외동 아이를 넘어 아이를 하나 낳아서 키워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안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엄마가 되길, 부모가 되기를 잘했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죠. 그리고 이 아이가 행복하게 사는 삶을 위해서 세상에 대한 제 관심도 함께 자랐습니다. 던 같아요. 코로나라는 역병에 가로막히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가족은 좀 더 복닥거리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과정은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좌절과 함께 눈물도 많아지지만, 그만큼 웃음도 기쁨도 배가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게는, 경제적으로 환산이 어려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기회를 주었거든요. 

저를 꼭 닮은, 하지만 다른, 그런 아이를 키우며 일종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중입니다. 

기억 저편으로 잊혀졌던 유년시절들이 아이를 키우며 매일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그 안에 행복했던 나는 좀 더 키워주고, 슬프고 상처받은 기억은 부모가 된 내가 다시 보듬어주고 있지요. 그래서, 한 번 뿐인 삶을 두 번 살아보는 마법을 아이를 통해 선물 받았습니다. 그래서 떨어지는 혼인과 출산율, 늘어가는 노키즈존을 보며 더 아쉬운 마음이 드나봅니다. 







관련 자료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374726638792816&mediaCodeNo=257&OutLnkChk=Y


https://blog.naver.com/branch_1000/223359814206

https://n.news.naver.com/mnews/hotissue/article/079/0003865646?type=series&cid=2001768

https://blog.naver.com/coffresdechopper/223321750314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80512.html

https://youtu.be/cGaoQNRxCy0?si=Zby43U10RC-Mq_pN

https://www.seoul.co.kr/news/2023/05/03/20230503001007

https://www.yna.co.kr/view/AKR20240129118800530#:~:text=30%EC%9D%BC%20%EC%9C%A1%EC%95%84%EC%A0%95%EC%B1%85%EC%97%B0%EA%B5%AC%EC%86%8C,%EC%B2%9C562%EA%B3%B3%EC%9C%BC%EB%A1%9C%205.1%25

https://www.seoul.co.kr/news/2023/01/15/20230115500057


이전 07화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로 자라기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