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둘째가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졸업식 전날 작품집, 미술활동들, 그림일기 등등을 왕창 갖고 왔다. 손수 그리고 만들고 끄적인 거라 엄청 뿌듯해하며 자랑을 한다. F인 엄마는 "우와 진짜 잘했네?" 하며 완전 공감과 칭찬을 해주고 조용히 망설임 공간에 보관했다.예쁜 쓰레기를 가져왔구나...
망설임 공간
그것들은 2월부터 망설임 공간에 들어갔다. 그리고 3개월쯤 지났다. 나도 냉큼 버리기엔 양심에 찔렸다. 확 버려 버리기엔 뿌듯해하던 아이에게 미안했다. 가끔은 아이가 자기 작품 얘기를 하며갖고 온 작품을 찾는다. 그래서 최소한 몇 개월은 보관해 두고 타이밍을 기다린다. 빨리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눈에 띄지 않는 공간에 숨겨둔다.엄마의 참을성이란.
어린이날. 아이들은 더 이상 장난감을 사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아직 레고에 한창 빠져있다. 이번 어린이날도 마트에 갔다가 구경만 하겠다고 사정사정하더니 레고 자동차를 하나씩 골라왔다. 방 하나 가득 넘쳐나는 레고들만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그 방은 쳐다보기도 싫다. 아침에 청소기 돌릴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인다.그런데 또 레고라니!!
아이들도 어린이날을 안다. 어린이날장난감 사라고 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얻은 용돈으로 무언가 꼭 사야겠단다.더 어렸을 적엔 티비에 나오는 변신로봇, 합체로봇을 세트로 사던 것에 비하면 정말 소박해졌다... 고 위안을 삼는다. 끝끝내레고를 하나씩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레고 조립에 신난 아이들을 흐뭇하게 보다가 문뜩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다.
순간 빛의 속도로 망설임공간의 둘째 작품 3 봉지를 꺼냈다. 조립으로 바쁜 아이에게 물었다. "어린이집에서 만들기 한 거랑 그림은 이제 정리해도 될까?" 그러자 둘째는 "응, 엄마 마음대로 해!" 하고 대답했다. 엄마 성격을 이제 잘 알고 있는 우리 집 녀석들 새 레고 덕분에 쿨해졌다.
새 물건이 오면 하나는 내보낸다
아이들도 사람인지라 자기 물건을 함부로 버리면 싫어한다. 아이가 기분 좋을 때, 특히 새 물건이 생겼을 때 비울 것들을 제안하면 아주 쿨하게 허락한다. 나이스.
새 물건을 샀으면 안 쓰는 물건, 필요 없는 물건을 하나씩 비워야 한다. 그래야 집이 물건으로 넘쳐나지 않는다. 비우지 않고 사기만 한다면 물건들이 넘쳐나서 집은 난장판이 된다.
시간추가로 미련만 강해진다
버리기 전 한 번 더 아이의 그림과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인상적인 건 사진으로 남겨둘 생각이었다. 내 아이의 작품이라 하나하나 다 귀엽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있을 때 작품들이 어째 다들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조용히 감상만 하고 종량제봉투에 가지런히 담았다. 망설임 공간 비움 성공.
어렸을 적나는 기록을 좋아하고 추억이 깃든 물건을 모으고 구경하는걸 참 좋아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아이들을 키우며 그런 물건들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추억의 물건이 몇 가지 있다면 이야깃거리가 되고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는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하지만 과유불급, 많으면 처치곤란이다.
추억의 물건에 시간의 가치까지 늘어나면, 나중엔 진짜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억지로 귀해진 물건'이 된다. 과거에 발목이 딱 잡히는 기분이 든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내 인생 전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바로 '오늘'이다. 과거도 중요하고 미래도 중요하지만 '오늘'에 소홀하면 안 된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고, 오늘은 내일의 어제가 되는 날이다.
어제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소중하지만 오늘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더 소중하다.그리고 어제의 아이가 그린 그림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 그것들을 다시 살펴볼 시간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말자.
추억의 물건을 들여다보며 회상할시간에 오늘을 좀 더 집중하며 살아보련다. 그래서 필요 없는 물건을 비우고 물건에 뺏기는 시간을 절약한다.시간을 절약하는 것은 오늘 하루를 좀 더 소중한 곳에 집중하며 살겠다는 나의 의지이다.
아이의 작품을 '쓰레기'로 분리하는 엄마.남들이 보기엔 조금 거북하겠지만 난 괜찮다. 없어도 아무 문제없다.모으지 말고 버리자.아이가 기분 좋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