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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Sep 08. 2024

에필로그

MoonA

나는

'첫'딸이고,

'첫'손녀이고,

'첫'조카다.


명절같은 날엔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첫딸, 첫손녀, 첫조카 곁으로

모두 모인다.

미드 'Friends' 의 한 장면.

"이름이 뭐꼬?"

나에게 물으면

"무나헌정"

이라고 나는 대답했다(고 한다가 더 정확하겠다,)


'문'이라고 하지 못하고 '무나'라고 했고

'현정'이라고 하지 못하고 '헌정'이라고 했던

나의 발음이 귀엽고 웃겨서 모이기만 하면 모두들 저렇게 이름을 물었다고 .


나는,

어디서든 친척 어른들이 모이면

무나헌정이라고 불렸다.


우리 무나헌정, 우유주라~


그날들처럼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어

MOONA라고 필명을 정하고 첫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다.


해마다 짧은 시간이나마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기록해두고 싶어 '엄마스테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고, 오늘의 글을 마지막으로 '엄마 스테이' 시즌 1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올 봄 부모님과 함께 보냈던 어버이날, 친정 근처 갈비집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날씨도 좋아 잠시 걷기로 했다. 길목에 세워져 있던 국민의료보험공단 입간판을 보신 엄마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아! 맞다! 우리 여기 온 김에 '연명치료거부 동의서'내고 가입시더.


연명치료거부동의서?!?! 갑자기요?

말씀을 들어보니, 얼마 전에 집으로 국민의료보험공단에서 연명 치료 거부 동의서에 관련한 안내문이 왔고, 두 분은 상의끝에 동의서를 내기로 결정하셨다는거였다.

연명치료거부동의서...? 어버이날에 이걸 내러가시려는 부모님앞에 선 딸.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건가요?


하기로 했잖아요.
애들 마지막까지 고생시키지 말고, 우리도 미련맞게 질질 안끌고 좋은거니까 가서 후딱 하고 옵시다.
더운데 언제 또 여기까지 다시 나와요. 나온김에 하고 가입시더.


나도 엉거주춤, 아빠도 엉거주춤. 부녀가 그렇게 엉거주춤 있는 동안, 엄마는 이미 의료보험공단이 적힌 입간판 뒷쪽 건물 정문으로 향하고 계셨다. 종잇장에 서명한다고 번복이 안되는 건 아니겠지하는 마음으로 일단 따라가본다.


차례를 기다려 상담실로 들어가신 부모님의 뒷모습을 대합실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안경을 낀 여자분 한분이 종이를 앞에 놓고 설명을 하는 듯해 보였고, 그 앞에 백발의 고슬고슬 파마머리의 엄마와 역시나 백발의 머리 위로 베래모를 쓰신 아빠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앉아 설명을 듣고 계신다.

사실 얼마 전에 나도 남편에게 당부했었다. 행여 내가 호흡기에 의존하는 상황이 되거든 연명치료받지 않을거라고. 엄마가 하신 말씀과 같은 말을 했었더랬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태연히 말했었는데...


울컥, 꼴깍.

울컥, 꼴깍, 꼴깍,

울컥, 꼴깍. 꼴깍, 꼴깍...

상담이 끝났는지 유리문이 열린다.

꼴깍, 꼴깍.

아이고, 후련하다.
맞죠? 후련하죠?

그러네...


나는 밖에 앉아 울컥 꼴깍을 몇번을 했는지 모르는데, 정작 두 분은 후련하시단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뚝방가서 자몽에이드 한잔 할까요~~~

좋지~~~


달쯤 뒤, 미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친정집으로 연명치료거부 동의서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증서가 도착했다.


왔네... 기분이 이상하다.

엄마, 그쵸? 그날 엄마가 너무 태연한 척해서 내가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던데 이제 좀 인간미가 느껴지네. 이거 취소해도 되요.

아니~ 그거는 아니고. 영정사진도 미리 찍고, 이것저것 차근차근 미리미리 준비는 해야되는데 그때마다 폭삭 찌그러져있을 수는 없잖아. 안그래?


마치 생일잔치를 준비하듯, 어느 골목을 돌면 있을지 모를 생의 마지막 날을 차근차근 준비한다는 엄마 앞에서, 국민의료보험공단 입간판앞에서처럼 엉거주춤, 웃는지 우는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던, 그날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태양과 훌쩍 더 가까워지는 미국 애리조나 우리집이다.


집에 돌아오면 한동안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태평양이 블랙홀처럼 까마득하고 야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내, 부모님도 나도 또 각자의 삶을 산다. 문득 생각나면 톡도 하고, 문득 사진도 보내고, 동영상도 주고 받는다. 열대야에 잠을 설치던 엄마가 이제 막 일어난 나에게 '잠이 안 와서~'라고 말을 걸어오시기도 한다. 항공으로 편지부치는 정도만 가능하던 시절엔 도대체 어찌 이 그리움을 감당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저녁 나절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찍은 하늘 사진을 엄마한테 보내드렸다.

이야, 거기는 하늘이 그림같네~
어느날, 우리집앞. 비오기 직전, 구름가득한 하늘.
너 돌아간지 또 석달이 지났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요? 우리 또 만날 날도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

그러네~~~


함께했던 추억으로 오늘을 '연명'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엄마스테이' 의 연명엔 거부동의말고, 찬성동의해주시길 부탁드리며,

그동안 '엄마 스테이 시즌 1'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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