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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Sep 14. 2024

Editor's Cut

전우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외모도 그렇지만, 나이들수록 성정은 더 닮았음을 깨닫는다.




친정이 있는 동네는, 개천을 사이에 두고, 가산 디지털 단지를 마주하고 있다.

어릴 적, 아빠는 가산디지털 단지에 있는_그때는 구로공단이라고 불리던_회사를 다니셨다.


어느날 아빠가 회사 근처에 알탕을 잘하는 집이 있다시며, 당신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회사 앞으로 모두 오라고 하셨다. 그닥 넉넉치 않은 월급이어도, 월급날이면 기분좋게 밥한끼 사주시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따라 회사 앞 붐비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인용 뚝배기에 보글보글 앞에 놓여진 알탕을 마주하고, 코 밑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모두 한 그릇씩 뚝딱했다. 우리는 눈 앞에 음식은 절대 남기는 법이 없는 대식가들이었다. 


배를 두드리는 우리들을 보시며 흐믓하게 계산을 하신 아빠를 따라, 식당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내가 엄마 귀에 살짝 속삭였다.

엄마, 맛은 별로였지만 다 먹었어.
아빠 속상하실까봐.

알탕이 초등학생인 내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_물론 지금은 너무 좋아한다._ 하지만, 검은 때 여기저기 묻은 유니폼을 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서 계시던 그날 아빠를 보고서는 도저히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후 알탕을 보면 그때 꽤 기특했던 어린 나와 꽤 젊었던 아빠가 떠오른다.


우리 아빠, 그때 젊었네...

지금의 나보다도 젊었던 아빠를 찾아 눈을 감아본다.


내가 미국으로 이민 후, 해마다 한국에 왔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몇 번의 이별 앞의 아빠,


내가 미국으로 이민가던 날, 그즈음 시작된 이명증상과 공황장애로 어지러워 식사를 못하셔서 야윈 몸과 푹 꺼진 눈으로 흔들어주시던 아빠,


내가 신혼을 시작했던 반지하집에, 한여름에도 하루종일 걷는 공공근로일에 모자가 땀으로 범벅이지만, 엄마가 챙겨주신 반찬을 가져다 주셨던 아빠,


내가 고등학교 때 아빠 생신날, 10년 넘게 사용한 인조가죽이 다 낡아 벗겨진 아빠의 벨트를 보고, 나와 동생이 용돈모아 새 벨트를 사서 가게로 갔다. 손님없는 냉냉한 공기의 가게 안, 약하게 켜진 난로 옆에 바짝 붙어 헌 벨트를 풀어내시다 눈물이 터진 아빠,


중학교때 어느 명절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3시간짜리 길이 10시간이 된 시골가는 길 위에서 모두가 잠든 사이, 나라도 깨어 아빠 외롭지 않게 하겠다며 눈 부릅뜨고 있다가 백미러로 눈이 마주친 아빠, 


초등학교 때 생일날, 내가 한달 전부터 노래를 부른 마룬 인형상자를 들고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오고 계시는, 까만 정수리만 보이는 아빠...


어느새

세월 앞에

부녀는 전우가 되어 있다.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서로를 호의하는...


공항에서 우리가 들어가는 걸 바라보는 아빠. 어제까지도 같이 다녔는데...여기부터는 저희만 가요...

추신.

오늘 한국에서 부모님 두 분 모두 코로나 진단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엄마는 재빨리 병원진료받고 추석 대비해서 약도 넉넉히 처방받아 오셨다고 했다.

참 잘했어요. 도장, 꾹.


써두고 발행을 망설였던 글 중에 하나 골라 올려봅니다. 본 것이 많아 흉내도 잘냅니다 제가. ㅎㅎ


모두 Happy Chu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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