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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Sep 01. 2024

여우비

첫 해엔 만나게 될 그리운 얼굴들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기억이 났다. 헤어지는 게 얼마나 아팠는지.

이듬해부터는 한국에 입국하는 날부터 겁이 났다. 또 헤어지는 게.




기약했던 한 달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야속하게, 어김없이 흘러갔고, 나는 다시 짐을 싼다. 이미 싸놓은 짐이라도 가기 전날엔 다시 열고, 나눠 넣고 닫았다가 또 연다. 내가 낑낑대며 여행가방을 들었다 놨다 하는 동안 엄마가 들어오셨다.

아이고, 또 짐쌀 시간이가.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리고 슬쩍 마사지 크림을 하나 건네신다.

이거 너 갈 때 줄라고 사놨어. 피부가 그게 뭐꼬? 거가 건조해서 그러지?
나이 들수록 듬뿍듬뿍 발라야 돼. 아끼지 말고 발라.


다이소에서 산 알로에 로션만으로도 백설공주 피부가 될 수 있다며 싼 거 사거 듬뿍듬뿍 바르는 게 최고라던 엄마가 나한테 내미신건 아이오페.


"엄마, 다이소 거가 최고라면서 왜 저는 이거 사줘요."

"니 얼굴은 그걸로 안될 것 같아서."

"내 얼굴이 어때서 그래요. ㅎㅎㅎ"


방안에 가득 펼쳐진 여행가방에는 강원도여행 갔다가 엄마가 사주신 들깻가루도 있고, 진도여행 갔다가 엄마가 사주신 모자도 있고, 전주한옥마을에서 엄마가 사주신 가방도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방금 엄마가 사주신 화장품도 끼워 넣는다. 엄마가 사주면 나는 받는다. 나는 여전히 받는다. 받는다. 받는다...


너 비행기표 사느라 돈 많이 썼잖아. 여기선 우리가 쓴다. 니는 지갑 닫아라.


인천공항 입국장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엄포로 시작되는 엄마의 다짐은 딸한테 해줄 수 있는 거 다해주는 것, 나의 다짐은 내가 드리고 갈 수 있는 것 다 드리고 가는 것. 그런데 암만해도 그 경쟁에서 이번에도 내가 또 졌지 싶다.

"너 가고 나면, 또 나는 누구랑 댕기노?
엄마는 댕기는 거 싫어하고. 너 있는 동안이나 돼야 내가 댕기는데."

아빠가 문지방을 딛고 서서 말씀하신다.

금방 또 와요~ 시간 금방 가니까~
또 와서 댕깁시데이~
가시고 싶은데 다 적어두이소~~~


공항에서 아빠엄마를 차례대로 껴안고 작별인사하다 눈물이 와락 했다. 아빠가 저리로 걸어가신다. 부르는 사람도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닦아내시는 그 뒷모습에 또 눈물이 와락 했다. 참으려니 목에서 꺽꺽거리는 소리가 나서 그냥 대놓고 울었다.

"내년에 또 볼 건데도 이러네. 이건 그냥 심장끼리 가까워지면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여우비처럼 입으로는 웃고 있는데 눈에선 눈물이 쏟아진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우리들의 모토 때문이다. 눈물이 나도 일단 웃자. 내가 출국장으로 들어서자 뒤에서 아이돌 출국장 현장처럼 연신 딸과 손자의 뒤통수 사진을 찍고 계시는 아빠를 본다. 건조한 표정의 검색대 직원은, 오늘의 나처럼 웃고 있는데 울고 있는 사람들을 하루에 몇명을 볼까 궁금해진다. 더 씨게 웃고 더 씨게 울면서 여권을 챙겨넣는다.


이런 이별을 한국 떠나 미국으로 가던 그날 포함 4번째... 반복한다.


자꾸 오늘이, 이번이 마지막이면 어쩌나 이렇게 함께 건강하게 여행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면 어쩌나 부레처럼 수시로 떠오르는 걱정을 수시로 가라앉힌다. 대합실에서 아들에게 이 말을 하니, 나보고 생각이 많단다. 맞아. 니 어미가 생각의 양으로는 빌게이츠보다 부자일 것이다.


엄마가 톡을 보내오셨다.

'헤어지면 보고 싶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건 이 내 심사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나랑 같았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막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다짐해 본다.


더 많이 설레고 더 적게 두려워볼께요.  

건강하게 지금처럼 아웅다웅, 재미나게 계셔요.

곧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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