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곡경기장 역에서 승차한 소년에게로 승객들의 시선이 쏠렸다.
소년의 휴대폰에서 놀랄 만큼 큰 소리의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방금, 생일파티를 끝내고 왔는지 어깨에 색종이가 붙어 있었다. 소년은 그런 상태로 귀에 휴대폰을 바짝 대고 음악을 들으며 입술 주위의 근육을 씰룩거렸다. 누군가와 대화하듯 입모양을 오, 이, 어, 음-하며 움직였다. 나와 할아버지 손님 사이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유일한 빈자리는 아니었지만 그가 앉았다. 그가 왼쪽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바꾸어 그의 오른쪽에 앉은 나의 귀에 휴대폰을 가깝게 하여 노래를 들려주었다. 리코더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아팠지만 일단 참았다. 어느새 일어나 덜컹거리는 열차 리듬에 몸을 맡겨 흔들거리다 중간 어디쯤에 곧게 멈춰 섰다. 줄곧 보고만 계시던 어느 동네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소리를 크게 해야 돼요."
소년은 곧 소리를 줄이고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말하면 경찰이 잡아가요."라고 말했다. 아하. 하하. 웃음소리를 냈다. 얼굴에 웃음 근육은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서 "집에 인형이 많아요. 인형들도 시끄럽다고 할 것 같아요. 아니에요?"말하고는 배를 두드리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청중의 시선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입문으로 향했다. 환승역인 운산역 출입문 앞은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도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무심하게.
환승을 향해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여자가 레인 코트 안에 손을 찔러 넣고 나의 앞에 서 있었다. 나란히 서있던 사람이 잘 빠지지 않는 여자의 손을 꺼내 잡으려고 힘을 주었다. 애써 뺀 손을 꽉 잡았다. 그 남자는 환승하기 전 나의 옆, 옆 자리에 앉아있던 할아버지 손님이었다. 그렇지만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 한 칸 아래에서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시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긴 것과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며 시계의 분침과 시침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때 막, 밤 사이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할머니 한 분이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누가 뽑아준다고 다시 나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에스컬레이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손잡이를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지하철역에서는 안전을 위하여 선거 관련 발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할머니가 먼저 "아멘."하고 말했다. 뒤이어 소년이 따라 외쳤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