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을 만드는데만 너무 공을 쏟았나 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색다르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의미 있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우리답게 만들 수 있을지.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격식을 차릴 수 있을지. 그런 것들만 생각하다, 정작 이걸 어떻게 돌릴지 생각을 못했으니 말이다. 박스에 예쁘게 포장돼 차곡차곡 쌓여있는 수백 장의 청첩장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훅 끼쳐 들어온다. 이걸 대체 언제 다 돌리지?
“음. 그래서 몇 장 필요하다고 했지?”
여자친구와 나, 그리고 각자의 부모님들 분량을 차곡차곡 나눴다. 그렇게 내 몫으로 할당된 뭉치들을 들고 회사로 갔다. “이걸 누구부터 드려야 하나. 일단은 팀장님? 그리고 상무님? 음 또…” 청첩장을 돌리는 게 웃어른께 드리는 ‘인사’ 같은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던 모양이다. 누구에게 먼저 드릴지 고민한다는 게 결재라인을 따라 줄줄이 떠오르는 인물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선부터는 심리적 거리감이 확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 참. 드리자니 부담스럽고 안 드리자니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 같아 고민이 된다. 그렇다면 그 전 팀장님은? 전 상무님은? 그 전전 팀장님은? 어느덧 직장생활도 8년 차에 접어들다 보니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다.
문제는 이런 ‘관계’라는 게, 지금처럼 결재라인을 따라 ‘종'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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