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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an 20. 2018

<원더 휠> by 우디 엘런

재미있는 이야기들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 를 통해 진행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본 리뷰에는 영화 <원더 휠>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다음 무비' <원더 휠>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원더 휠 (2017) Wonder Wheel

2018.01.25 (개봉 예정)

101분,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우디 앨런

(주연) 케이트 윈슬렛, 저스틴 팀버레이크, 주노 템플, 제임스 벨루시



우디 앨런의 영화는 이 전엔 <카페 소사이어티> 만 봤었다. 소규모 상영회에서 관람 후 든 생각은, 이런 느낌의 <라라 랜드> 도 괜찮은데? 였었다. 그러다가, 이 리뷰를 쓰기 위해 검색하는 도중 <라라 랜드>와 <원더 휠>를 비교한 리뷰를 브런치에서 읽었다. 꿈과 사랑 사이의 선택에 관하여, 선택 자체가 안 되는 상황에 처한 영화 <원더 휠> 속 지니에 대한 글.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영화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른 브런치 리뷰의 글처럼, 모두의 불장난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현실 속에서 판타지를 연기하는 이야기' 란 말도 와 닿고, '벗어날 수 없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코니 아일랜드' 유원지 속 대관람차처럼 말이다. 

캐롤라이나 등장, 막이 오른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인생은 회전목마> 가 떠오른다. 마침, 영화 속 험프티도 회전목마를 관리하는 직원이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관람차(woder wheel)이다. 1910년대부터 뉴욕에 있던, <퍼스트 어벤져>와 <스파이더맨 홈커밍>에도 등장한 그곳. 거기에 서 있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가르는 상징. 영화의 시작은 믹키(저스틴 팀버 브레이크)가 캐롤라이나(주노 템플)의 입장을 알리면서 시작된다. 원더 휠 아래로 슬픈 표정과 화려한 의상을 한 여성이 들어선다. 무대 연출 같은 등장이다. 


캐롤라이나는 갱스터인 남편과 헤어지고, FBI에게 갱단 정보를 흘려서 표적(marked) 된 상태였고, 의절한 상태였던 친부를 찾아오는 중이었다. 거기서 새어머니인 지니(케이트 윈 솔렛)를 만나서, 그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간다. 원래 괴물 쇼(Freak Show)로 사용하던 곳을 개조한 곳이다. 또 다른 공간 분리. 의미심장한 이름이다. 

회전목마에서 팁을 받는 험프티

캐롤라이나의 친부, 험프티는 나름대로 코니 아일랜드의 삶에 적응해 가는 삶을 살고 있다. 그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캐롤라이나의 생모가 죽고, 캐롤라이나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갱스터와 결혼하러 떠나간 순간이다. 짐작컨데, 그 순간 생활이 무너지고 알코올 중독에 빠졌으리라. 그를 구원한 것이 지니였다. 지니 덕분에 그는 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돌고 도는 회전목마에서 일을 하고 있다. 


웨이트리스 복장의, 웨이트리스를 연기하고 있는 지니


지니는 극단의 배우였고, 같은 극단 소속 재즈 드러머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으나, 다른 배우와의 불륜으로 남편과 헤어지고, 일상이 무너진 채로 극단에서 쫓겨나듯 배우를 관두고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는 이게 삶이 아니라 연기임을 강조하는 말을 하는 상태로 살고 있던 그녀에게 이끌려 나가 온 험티의 손을 잡고 둘은 함께 어떻게든 다시 일상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코니아일랜드라는 유원지는 비일상, 일탈의 공간이다. 지하철역으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 때문에 중산층 이하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까지도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험티와 지니의 삶의 터전은 이 안에 있다. 일상이 비일상에 갇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일상 속에, 자신의 일상을 파괴하고 도망쳐온 캐롤라이나가 들어왔다. 갱단에게 쫓기는 여성. 엄청난 비일상이다. 험티는 그녀를 받아서, 그녀에게 일상을 다시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게 하고, 야간 학교에 보낼 학비를 마련하게 한다.


그런데 이 '괴물의 집' 속 삶에는 배우가 한 명 더 있다. 리치. 리치는 지니의 아들. 불장난을 심하게 한다. 불타는 모습을 지켜보는 눈빛이 건조하고, 깊다. 지니에겐 큰 골칫거리. 험티는 신경을 많이 써주지 않는다. 비일상의 공간에서 리치의 탈출구는 '영화'와 '불장난'이다. 영화는 그렇다 치고, 왜 불장난일까. 한 리뷰에서는 따스함이 그리운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읽었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영화가 끝나고, 수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민하고 있다. 왜 불을 바라보고 싶었을까. 



믹키, 비일상에 들어온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믹키가 있다. 뉴욕대, 시를 전공하고 극작가를 꿈꾸는 청년.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해군으로, '보라보라'라는 비일상의 공간을 다녀온 그는 파트타임으로 '코니아일랜드' Bay 7 의 라이프가드로 근무하고 있다. 그에게 빗속을 홀로 걷는 지니의 모습이 다가온다. 극적이다. 극단적인 이야기에 매료된 문학도는 지니라는 인물의 비극적인 자기 해석에 매료된다. 배우에서 웨이트리스로, 불륜으로 인한 꿈의 좌절. 그가 지켜보던 해변에서 비일상을 즐기는 일상적인 모습에 매치되는 삶.


지니와 믹키는 불륜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다시 짠! 캐롤라이나가 등장한다. 더 젊고 더욱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 비 사이로 들어오는 빛 아래에(Rainlight) 그녀는 빛난다. 갱스터에게 쫓기는 삶, 아름답다. 믹키가 원하던 희곡의 완성 편인 것만 같다. 믹키는 결국, 지니와 캐롤라이나 중 캐럴 리아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고전적인 비극. 고전적인 이야기 구조를 완성시켜야만 한다. 지니는 적극적이진 않았으나, 결국은 캐롤라이나를 쫒는 갱단을 돕는 선택을 하고 만다. 캐롤라이나 퇴장. 지니의 불륜과 함께 코니아일랜드 전역으로, 믹키의 집인 그리니치 빌리지 일대로, 중국 풍의 정원으로 커진 무대는 다시 좁아들면서 지니와 험티의 집 - 괴물의 집으로 한정된다. 관람차가 절정을 찍고 내려오듯, 극의 일반 구조와도 같아.


사이사이에는, 마치 연극처럼 관객에게 말을 걸어오는 믹키의 대사들과, 독백을 하듯 쥐어짜는 지니의 대사들이 있다. 믹키는 화자이며, 관찰자이다. 적극적인 이야기의 출연 배우이지만 또한 괴물의 집을 들여다보는 시선 중의 하나이다. 믹키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지니를 버리고 떠난다. 종장. 괴물의 집은 캐롤라이나가 없던, 믹키가 없던 일상으로 돌아간다. 



넓어진 앵글. 믹키와 지니.


영화는 무대같이 화면을 보여준다. 관람차에 타고 올라가는 사람의 시선처럼, 높이 올라가면서 절정에 갈 때에는 넓은 코니아일랜드를 잡아주지만, 끝으로는 다시 좁아져서, 바닥으로 내려오고 괴물의 집에 머무른다. 막이 내리고 피날레가 되면서 원더 휠을 잡으며 끝나지만, 그것이먀 말로 종막 이후의 이야기이다. 비일상의 공간 속에서 일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러나 그 일상도 모두 비일상 - 판타지였음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막을 내려버렸다. 그러면서, 코니아일랜드 유원지의 주제가 같은 흥겨운 멜로디와 함께 스텝 롤이 올라간다.


캐롤라이나를 구하려다가, 구하지 않기로 하는 전화 씬.


우디 앨런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꿈과 일상, 사랑의 선택. 진정한 사랑. 비극. 자신이 좋아하는 도시의 색감. 코니아일랜드의 이야기. 영화를 통해 알게 되어 찾아본 코니 아일랜드는 흥미로웠다. 1910년의 코니아일랜드의 해변이 여름의 해운대처럼 붐비는 것도, 최근에 인근에서 찍은 사진들의 색감도 매우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그 느낌이 영화에서 전달되어서, 만약 방문하게 되면 마치 추억의 공간에 들어간 듯한 경험을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관객도, 추억의 공간 - 영화라는 가장 비일상적인 공간에 우디 앨런의 이야기를 믹키의 입을 통해 들으며 빠져들어갔다가, 빠져나오게 된다. 디즈니랜드는 그래서 입장부터 내부의 모든 경험을 '비일상'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그래서 청소직원들까지도 디즈니랜드의 행동강령에 맞춰서 움직일 수 있도록 교육하여 '비일상' 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게 한다. 


무대에 설 준비를 하는 배우같은 느낌의 지니

하지만 영화는 그 비일상을 깨뜨리는 연출들을 종종한다. 실제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무대에서 보는 연극같이 말을 걸어오거나, 혼자 독백하는 배우들은 일반적으로 영화에 실재감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은 장치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장치들을 통해서 영화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실제가 아닌 '이야기'인데, 그래도 들어볼래라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비일상은, 일상과의 괴리감을 통해서 완성되니까, 어쩌면 그래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저기 저곳은 일상이 아냐, 도달 가능한 곳이 아니야라고 아무리 말해도 꿈을 좇는 자들은, 일상을 벗어나길 바라는 사람들은 멈출 줄을 모르는 것이다. 부서지고, 쓰러질지언정 수평선을 향해 가능성을 끝까지 쏟아부어버리고는, 그리고 다시 일상에 지쳐 도달하는 것이다. 대관람차처럼. 




더 많은 상징들, 색깔들에 대한 생각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캐롤라이나를 비추는 빛이 주홍빛에서 푸르스름한 빛으로 바뀌면서 이야기가 넘어가는 장면들 등등. 기억에 과부하가 걸려서 찾아내기 힘들어 일반적으로 생각한 주제인 '일상''비일상' 만 주저리주저리 적어버렸다. 


그래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 것은 맞기에, 큰 불만은 없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보통은 없는 편이고, 비일상을 꿈꾸면 불안전하기 마련이다. 코니아일랜드, 디즈니랜드는 비일상이어도 괜찮다. 입구를 들어서서 즐기고, 내려오면서 다시 복귀할 수 있으니까. 그 관문에는 원더 휠이 서 있을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뒤틀려버린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에버랜드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에 관한 이야기가 10여 년 전에 있었는데, 다시 쏙 들어갔다. 어쩌면 식당 종업원에게 막 대하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이런 이야기들에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은 다른 이에게는 비일상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Z_MNEHQcxC8&app=desktop


20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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