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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을 위한 '포수 리더십'

365 Proejct (320/365)

by Jamin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33: 운과 실력에 이어서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34: 던지지 않는 리더십 에 이어서


삶의 매뉴얼 001: 단단해지기

삶의 매뉴얼 002: 운을 다루기

삶의 매뉴얼: 003: 리더십


직접 만들지 않아도, 당신이 팀을 승리로 이끄는 법

PM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은 수많은 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개발팀의 공, 디자인팀의 공, 마케팅의 공, 그리고 가장 예측하기 힘든 '고객'이라는 타자의 공까지.


많은 신입 PM이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데, 어떻게 팀을 이끌지?"라고 불안해합니다. 특히 개발자 출신이거나,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에 익숙했던 분들일수록 이 불안은 더 큽니다. "나는 이제 뭘 하는 사람이지?"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투수가 아닙니다. 당신은 포수입니다.


투수(개발자/디자이너)가 최고의 공을 던질 수 있게 만들고,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 당신의 존재 이유입니다.


많은 이들이 PM을 'Mini CEO'라고 부르며 "결정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CEO의 80%는 살림꾼입니다. 집안의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누가 지쳐있는지, 어디서 새는지를 살피는 것이죠. PM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직접 코드를 짜거나 디자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없으면 팀은 방향을 잃고,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쏟으며, 위기 앞에서 무너집니다.


이 매뉴얼은 당신이 팀의 '중심'이 되어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4가지 핵심 역할을 안내합니다.


역할 1: 경기를 리드하라 (Game Calling & Strategy)


야구에서 포수는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결정합니다. 왜일까요? 포수만이 그라운드 전체와 타자의 성향, 투수의 컨디션을 동시에 보기 때문입니다.


포수의 액션: 타자를 분석하고, 투수의 강점을 파악해 "이번엔 145km 직구, 바깥쪽 낮은 코스"라는 사인을 냅니다.


PM의 액션: 시장(타자)을 분석하고, 우리 팀(투수)의 강점과 리소스를 파악해 "이번 스프린트의 핵심 기능은 'OO'이고, 우선순위는 'P0'입니다"라는 명확한 '사인(요구사항/User Story)'을 냅니다.


[실천 가이드]

1. '왜' 없는 사인은 폭투가 된다

"그냥" 이 기능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실제 사례를 봅시다. 어떤 PM이 '소셜 로그인 기능'을 개발팀에 요청했습니다. 이유는 "경쟁사가 다 있어서요"였습니다. 개발팀은 내키지 않았지만 억지로 2주를 투입해 만들었습니다. 3개월 후 사용률은 5%였습니다.

만약 이 PM이 "현재 신규 가입 이탈률이 40%입니다. 사용자 인터뷰 결과 '또 회원가입하기 귀찮다'는 의견이 60%였어요. 소셜 로그인으로 이 마찰을 제거하면 가입 전환율을 20%p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라고 설명했다면 어땠을까요?


"어떤 고객(타자)의 어떤 문제(약점)를 공략하기 위해 이 기능(구종)이 필요한지" 명확히 설명해야 합니다. 개발팀은 '왜'를 납득할 때 최고의 공을 던집니다.


2. 투수(팀원)의 컨디션을 파악하라

야구에서 포수는 투수의 어깨 상태, 구위, 피로도를 매 이닝 체크합니다. 투수가 지쳐있는데 계속 "가장 빠른 직구만 던져!"라고 요구하면 어깨는 망가집니다.


PM도 마찬가지입니다. 팀이 3개월째 야근하며 신규 기능만 개발하고 있다면? 기술 부채는 쌓이고, 번아웃은 코앞입니다.


팀의 현재 컨디션(기술 부채, 번아웃 상태, 심리적 여유)을 매일 체크하고, 그에 맞는 전략(기능 개발, 리팩토링, 쉬어가기)을 제시하십시오.


"이번 스프린트는 신규 기능 없이 코드 정리에만 집중합시다. 그래야 다음 이닝(분기)에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짜 리더십입니다.


3. 데이터로 리드하라

야구 포수는 타자의 이전 타율, 약점 코스, 최근 컨디션을 모두 외웁니다. 감이 아니라 기록으로 사인을 냅니다.


당신의 '기록지'는 데이터입니다.


"이 기능 좋을 것 같아요"가 아니라, "A/B 테스트 결과, 핵심 유저층은 이 기능에 40% 더 높게 반응했습니다. 전환율이 15%에서 21%로 올랐어요"라고 데이터를 근거로 사인을 내십시오.


감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순간, 팀은 당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역할 2: 폭투를 막아내라 (Risk Blocking & Team Shielding)


아무리 뛰어난 투수도 실투를 하거나 폭투를 던집니다. 공이 뒤로 빠지면 주자는 진루하고 팀은 위기에 빠집니다.

야구에서 포수의 첫 번째 미덕은 '블로킹'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바운드 공을 몸을 던져 막아냅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고통스럽지만, 결코 공을 뒤로 빠뜨리지 않습니다.


PM의 액션: 예기치 못한 버그, 서버 다운, 잘못된 기획, 고객의 불만(폭투)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몸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이 충격이 팀 전체로 퍼져 사기를 꺾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신입 PM 실천 가이드]

1. '내가 막는다'는 태도를 가져라

런칭 당일, 서버가 다운됐습니다.


A PM은 슬랙에 이렇게 썼습니다: "도대체 누가 부하 테스트 안 했어요? 이런 중요한 날에..."

B PM은 이렇게 썼습니다: "상황 파악 중입니다. 제가 고객사와 경영진 설명은 막고 있을게요. 팀은 복구에만 집중해주세요. 지금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어느 팀이 30분 안에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버그가 터졌을 때 "누가 잘못 개발했어요?"라고 묻는 PM이 최악입니다. "상황 파악 중입니다. 제가 외부(상사, 고객) 소통은 막고 있을 테니, 팀은 해결에만 집중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PM이 최고의 포수입니다.

당신이 직접 서버를 고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팀을 믿고 시간을 벌어주며, 외부 압박을 차단하는 순간, 팀은 최고의 퍼포먼스를 냅니다.


2. '폭투'는 비난이 아닌 '복기'의 대상이다

야구에서 블로킹 후 투수에게 "왜 그런 공을 던졌냐"고 비난하면 관계는 끝입니다.


PM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 해결 후, "왜 이런 실수를 했죠?"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놓쳤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다음엔 어떤 안전장치를 미리 만들어둘까?"라며 '회고(Retrospective)'를 통해 시스템을 개선하십시오.


실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역할은 비난이 아니라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3. 방패가 되어라

상사가 말합니다: "왜 이렇게 개발이 느려? 경쟁사는 벌써 출시했는데!"

마케팅 팀이 말합니다: "이 작은 기능 하나 추가하는 데 왜 2주나 걸려요?"


이런 압박과 비난이 개발팀에 직접 전달되면 어떻게 될까요? 팀은 위축되고, 방어적이 되며, 결국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의 '프로텍터(보호장비)'로 이 모든 것을 막아내십시오. PM은 팀의 심리적 안정감을 지키는 최종 방어선입니다.


당신이 코드를 짜지는 못해도, 팀이 안심하고 코드를 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당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역할 3: 도루를 저지하라 (Defending Focus & Scope)


야구 경기 중에는 늘 '도루'하려는 주자(Runner)가 있습니다. 이들은 포수와 투수의 작은 틈을 노려 진루를 시도합니다. 성공하면 상대팀은 득점 찬스를 잡고, 우리 팀은 위기에 빠집니다.


포수는 주자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투구와 동시에 빠르고 정확하게 2루로 공을 던져 아웃시킵니다.

PM의 액션: 프로젝트의 본질과 관련 없는 '도루 시도'(갑작스러운 기능 요청, 불필요한 회의, 사소한 디자인 수정 요청)를 감지하고, 이를 빠르고 단호하게 '저지'하여 팀의 리소스(시간과 집중력)를 지켜냅니다.


[실천 가이드]


1. '스코프 크립(Scope Creep)'은 가장 위험한 도루다

"이거 하나만 추가해 주면 안 돼요?"

"이 색상만 살짝 바꿔주면 안 될까요?"

"요즘 AI 트렌드니까 우리도 챗봇 넣어보면 어때요?"


이런 작은 요청 하나하나는 무해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모이면 프로젝트 전체를 지연시킵니다. 이것이 '도루'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실제 사례를 봅시다. 어느 스타트업의 임원이 갑자기 "요즘 AI 트렌드니까 챗봇 넣어보면 어때?"라고 제안했습니다.


C PM은 "검토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다음 2주를 챗봇 벤더 미팅과 기술 검토에 썼습니다. 정작 핵심 목표였던 '결제 시스템 개선'은 밀렸습니다.


D PM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현재 저희의 최우선 목표는 결제율 30% 개선이고, Q2 목표 달성까지 4주 남았습니다. 챗봇은 정말 중요한 주제이니 Q3 로드맵 회의 때 깊이 논의하겠습니다. 그때 시장 조사와 ROI 분석을 준비해오겠습니다."


어느 팀이 목표를 달성했을까요?


2. 빠른 송구 = 단호하지만 정중한 'No'

야구에서 도루 저지는 타이밍입니다. 주저하면 주자는 이미 베이스에 도착합니다.


요청을 애매하게 미루지 마십시오. "나중에 생각해볼게요", "검토해보겠습니다"는 최악의 답변입니다. 요청자는 희망을 갖고, 팀은 혼란스러워하며, 결국 모두의 시간이 낭비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하지만 현재 저희의 최우선 목표는 'A'입니다. 그 요청은 'A' 달성 후(다음 이닝에) 논의하겠습니다"라고 명확히 답하십시오.


정중하되 단호하게. 즉각적으로. 이것이 도루를 막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3. 로드맵을 '베이스'로 삼아라


야구에서 베이스는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주자가 베이스에 도착했는지 아닌지는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신의 '베이스'는 명확한 '제품 로드맵'과 '스프린트 목표'입니다.


모든 요청에 대해 "그것이 우리가 지금 지켜야 할 베이스(목표)에 기여합니까?"라고 반문하십시오.


기여한다 →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기여하지 않는다 → 정중히 거절하고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기준이 명확하면 도루 저지는 쉬워집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당신이 혼자 만드는 게 아닙니다. 팀, 경영진, 고객 데이터가 함께 만든 합의입니다.


역할 4: 마운드에 올라가라 (Building Psychological Safety)


야구 경기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투수가 연속으로 실점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 포수가 마운드로 걸어갑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왜 그런 공을 던졌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편이야. 방금 건 잊어. 다음 공에 집중하자"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투수는 안정을 되찾습니다.


PM의 액션: 팀원이 실수했을 때, 압박을 받을 때, 혼자 고민할 때, 당신이 직접 다가가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심리적 안전감의 핵심입니다.


[실천 가이드]


1. '우리는 같은 편'을 매일 증명하라


개발자가 일정 추정을 잘못했습니다. 2주면 된다고 했는데 4주가 걸렸습니다.

최악의 PM: "왜 그렇게 추정했어요? 이제 일정 전체가 밀렸잖아요."


최고의 PM: "힘들었겠어요. 예상보다 복잡했나 보네요. 지금 가장 큰 어려움이 뭔가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일정은 제가 다시 조율해볼게요."


차이가 보이시나요?


전자는 "너 vs 나"의 구도를 만듭니다. 후자는 "우리 vs 문제"의 구도를 만듭니다.


팀원이 "내가 발목을 잡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방어적이 되고 솔직해지지 못합니다.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은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풀어가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1:1은 '점검'이 아니라 '연대'의 시간이다


많은 신입 PM이 1:1 미팅을 "진행 상황 점검"으로 착각합니다.

"저번주 태스크는 다 끝났나요?" "이번주 목표는 뭔가요?" "막히는 거 없어요?"

이건 그냥 스탠드업 미팅의 반복입니다.

진짜 1:1은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요즘 일이 어때요? 재미있나요, 힘든가요?"

"제가 PM으로서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뭘 배우고 싶으세요?"

"팀 분위기는 어때 보이나요?"


1:1의 핵심은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코드를 못 짜도, 팀원이 "이 PM과 함께라면 성장할 수 있겠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것이 리더십입니다.


3. 실수를 함께 짊어져라


디자이너가 고객사에 보낼 시안을 잘못 만들었습니다. 컨셉을 완전히 오해한 것입니다.


나쁜 PM: (고객사에게) "죄송합니다. 디자이너가 실수했네요. 다시 만들어오겠습니다."

좋은 PM: (고객사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방향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네요. 다시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디자이너에게) "제가 브리핑을 더 명확하게 했어야 했어요. 다음엔 레퍼런스를 더 구체적으로 드릴게요. 그래도 지금 나온 시안에서 좋은 부분도 많아요. 이 부분은 살리면서 방향만 조정해봐요."


차이가 보이시나요?

팀원을 버스 아래로 던지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포수가 아닙니다. 당신은 팀원의 실수를 함께 짊어지고,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심리적 안전감입니다. 이것이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증명입니다.


결론: 포수의 마인드셋


신입 PM님, 당신은 코드를 짜거나 디자인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직접 만들지 않기 때문에 더 중요합니다.


당신의 가치는:


'명확한 방향을 리드' 하는 것

'팀을 향한 위기를 블로킹'하는 것

'쓸데없는 곳에 자원이 낭비되는 도루를 저지'하는 것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이 네 가지에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리더를 '이끄는 사람'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리더는 '살림꾼'입니다.'


집안의 자원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고, 누가 지쳐있는지 살피고, 외부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우리는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사람입니다.


투수가 빛날 수 있도록 묵묵히 홈플레이트를 지키십시오.

던지지 않아도, 당신이 이 경기를 승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


포수는 경기가 끝나고 나면 온몸이 멍투성이입니다. 파울볼을 맞고, 주자와 충돌하고,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됩니다.


PM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칭찬받는 일보다 욕먹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눈에 띄는 성과보다 보이지 않는 노고가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팀원들이 당신에게 다가와 "당신 덕분에 우리가 해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직접 만들지 않았지만, 당신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그것이 포수의 자부심입니다. 그것이 PM의 자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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