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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Jan 09. 2024

딩크족으로 살다가 아기 낳지 않는 거 후회하시나요?

43살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지다.

딩크족으로 살다가 아기 낳지 않는 거 후회하시나요?

아기라면 딱 질색이었던 나.

40년 넘게 딩크로 살고, 계속 그대로 살 줄 알았던 나.

임신하고도 실감이 안 나 태교 한번 안 했던 나.


그런 내가 아기를 낳아버렸다.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던 엄마가 되었다.

절대로 살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삶을 살게 되었다.


40년이 넘도록 원하지 않았던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모두가 고요히 잠든 밤에 문득문득 나를 찾아와 위협했다. 임신 기간 내내 받았던 은근한 스트레스가 장기 출혈로 이어졌고 아기도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아 양수에 태변을 보았다. 아기는 아무 죄가 없는데.... 마음이 아팠다.


임신한 기간 동안 주로 두려웠다.



모성애는 자동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던데? 아기를 싫어하는 여자도 아기를 좋아하게 될 수 있는 걸까? 그토록 원해서 아기를 낳은 여자도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는데 내가 괜찮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딩크의 삶이 자랑스러웠었다. 이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는 내가 좋았다.


싫었다.


엄마라는 뻔한(?) 삶, 결혼했으니 아이를 낳아 키우며 울고 웃고 보람을 느끼며, 가족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 돈과 시간을 갈아 넣어 몇십 년 간 키워놓아도 결국엔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삶.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날 고통에 몸부림치며 잠시 잊고 있다가 서서히 아픔이 가라앉으며 새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둘만으로도 좋았는데,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찢어진 배의 고통만큼, 아니 그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이제 돌이킬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수술 다음날, 신생아 실에 아기를 면회했다.


아기를 만났다.



면회카드를 내밀자 간호사는 얼음 보관함에 얼음 조각들처럼 네모 반듯하게 정렬되어 있는 신생아실 침대들에서 하나의 아기 침대를 끌고 왔다. 아직 이름도 없는 아기에게 내 이름이 적혀있다.  


너구나.

내 방광을 발로 뻥뻥 차던 이!


모유수유를 위해 처음으로 만나던 날, 신생아실 간호사는 내 이름이 무엇인지 묻고 아기를 건네주었다. 이렇게 완전한 인간이 내 뱃속에 있었다니...


눈을 꼭 감고 있는 봄.

37주에 양수에 태변 싸고 태어나 헉헉 대는 봄.

다른 아기들보다 위장 역류가 심해 입 주변에 분유 자국이 있는 봄.    


내가 너의 엄마야.
널 소중히 여기며 지켜줄게.

봄을 처음 안아보던 날,
40대 딩크족은 사라지고 비로소 엄마가 되었다.



아직도 찾지 못했다. 무엇으로 이 기분을 설명할 수 있을지. 한참을 떠올려도 적당한 표현을 모르겠다. 다만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쩌지?' 하는 고민은 봄을 내 품에 안았던 순간 순식간에 허공으로 부서져버렸다. 봄은 그저 '아기'가 아니었다. 봄은 봄 자체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존재였다.



맘마 먹는 우리 아기



만일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딩크족으로 살다가 아기 낳지 않는 거 후회하시나요?

  

40대 부부가 자녀 없이 살며 수없이 듣던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야 할 수 있을까? 이건 후회하고 고의 영역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나비가 아니면서 나비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회사원이 아니면서 회사원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 간접 경험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  


딩크였던 내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자유였다. 원하는 만큼 자고,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삶. 시간과 돈, 에너지를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삶을 원했다. 송수연의 핵심가치이니만큼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봄을 낳고 기존의 가치체계가 와르르 무너졌다. '결혼했으니까 이래야 돼.', '아이를 낳았으니까 변화해야 해.' 하며 스스로 납득시킨 것이 아니다. 마치 새로 갈아 끼운 듯 달라진다.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새로운 가치관으로 교체되는 것이다.


아기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라는 말을 혐오했다. 무언가가 더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의미가 더 끔찍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 타인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삶.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 자신의 행복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해 왔는데 누구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결론은,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은 망상이다. 그런 삶은 이제 내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여러 번 인생을 살 것처럼,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냉정하리만큼 단 한 번의 인생만 가질 수 있다.  


가을과 겨울만 남은 것 같았던 마흔 중년의 인생에 봄을 선물해 준 봄.

한 번뿐인 인생에 임신과 출산이라는 감격을 안겨준 봄.

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어버린 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힘든 순간까지도 사랑할 작정이다.


딩크였기 때문에.

그런 삶을 선택했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신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딩크 시절처럼 앞으로도 송수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진정성 있게 살아가고 싶다.



<43세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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