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를 결심하다]의 베로니카의 삶은 완벽하다. 그러나 그녀는 죽기로 한다. 더 이상 채워질 행복이 없는 지독하게 뻔한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 하다 늙어 죽는 여자의 삶. 물론 베로니카의 생각은 편협하고 진실이 아니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관계를 떠나 당사자가 그렇게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한때 나도 베로니카와 같은 생각을 했다. 내 삶은 괜찮았다. 그러나 무기력했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결심했고 마음관리를 시작했다. 그 뒤로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자기 몸과 마음 정도는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나 외의 다른 사람까지 책임질 만큼은 아니었다.
부처는 출가하며 아내와 자식을 버렸다는데 나는 그 무엇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함부로 인연을 맺지 않는 것으로 철저히 예방하고 있었다. 사람과의 완력 다툼은 마음의 고요함을 깨부수고 이성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진한 인연일수록 더 그렇다. 옆집 아이가 게임 중독인 것과 우리 집 아이가 게임중독인 것이 천지차이다.
진한 인연이 없다면 사는 재미야 조금 떨어지겠지만 마음만큼은 고요하다. 극한 수행이 없이도 평안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평안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안정된 일과 사랑, 놀이 그리고 경제적, 정서적 평안함.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나를 새롭게 빚어 만든 아기를 상상해 보았다. 그는 내게 있어 남편보다 더 진한 인연이 된다. 나를 닮기라도 하면 더 그렇다. 가장 두려운 점은 이 모든 게 결국 내 책임이라는데 있다. 부모와의 연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지만 아기와의 연은 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자식과의 진한 인연의 과보를 해결하려면 부모가 노력해야 한다. 노력은? 지금의 행복감을 한 스푼씩 덜어내는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평온한 딩크의 삶. 남편은 자기 스스로를 책임짐과 동시에 나의 인생도 동반 책임져 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임신하고 나서도 진한 인연의 책임을 평생에 걸쳐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나는 왜 내가 불임이라고 생각했을까? 폐경과 용종에 대해 상담하러 산부인과에 가지 않았다면 봄이 뱃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마음껏 술을 마시고 약을 먹었을 것이다.
9달간의 임신 기간을 지나 봄을 낳았다. 진한 인연을 맺어버렸다.
나의 행복은 이미더 이상 채워지지 않을, 찰랑이는 술잔처럼 완벽한 행복이라고 여겨왔다. 봄을 낳고 난 뒤 지금은?잔에 술이 흘러넘치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어쩔 도리 없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두려움이 사라졌다. 진한 인연의 책임을 기꺼이 지고 싶다.
봄을 낳기 전 우리 부부는 밤마다 와인을 마시고 주말에는 늘어지게 잠을 잤다. 커피숍에서 몇 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와 함께 영화를 봤다. 이런 게 행복이라면 한 트럭 덜어내도 상관없다.
봄이 오물오물 밥을 먹는 모습, 봄이 눈물을 찔찔 흘리는 모습, 봄이 내 손가락을 움켜쥐는 모습으로 언제보다 빠르게 행복감이 채워지고 있으니까.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여전히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아기는 단순히 아기의 범주에 넣을 수 없이 특별하다. 봄은 봄 그 자체의 존재이다.
40대 딩크족의 인생에 봄이 왔다.
우리 부부는 괜히 감탄한다. 40대에 아기를 만나서 너무 다행이라고. 행복을 행복 그대로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