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유호현 Dec 13. 2019

새로운 가치관의 시대에 들어서는 대한민국

소속의 시대에서 자아의 시대로

나의 빅 픽쳐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는 한국


실리콘밸리에 대한 고찰을 하고 많은 분들과 생각을 나누고 여러 책을 읽으면서 나는 현재 우리나라가 기업 문화의 변화를 넘어 경제, 문화, 정치적 대변혁의 시대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변혁은 알 수 없는 변화가 아닌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몇몇 다른 나라들이 이미 경험한 변화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가 수십 년이 걸쳐서 만든 변화를 우리는 단기간에 하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이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변화를 겪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여러 시대적 가치관을 가진 세대가 혼재되어 있다. 정치적으로 어떤 세대가 주도권을 갖는냐에 따라 세대 갈등이 심하게 발생할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변화를 늦추거나 막을 수도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성숙함에 따라 일반적으로 시민들의 복지는 증대되고 추구하는 욕망이 달라진다. 욕망의 대상에 따라 시대를 크게 셋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생존의 시대 (1970년대 까지)
2. 소속의 시대 (2010년대 까지)
3. 자아의 시대 (2020년대 이후)


생존의 시대

생존의 시대는 국가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시대이다. 그럴 때에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이다. 돈이 있으면 의식주는 쉽게 해결되지만 돈이 없으면 의식주에 대한 해결은 너무나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생존의 시대를 산 사람들은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다. 돈이 곧 생명과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소속의 시대

소속의 시대로 넘어오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족이 깨어지고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행복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시대에는 '돈이 먼저냐 명예가 먼저냐?',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냐?', '가정이 먼저냐 일이 먼저냐?'라는 질문들이 오간다. 돈이 가장 중요하고 일이 가정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던 생존의 시대와의 가치 충돌을 담은 질문들이다.


'돈이 먼저냐 명예가 먼저냐?': 이 질문은 돈이 중요하던 생존의 시대를 넘어 소속감과 존중이 중요해진 시대에는 돈 이외의 다른 가치인 명예와 사회적 지위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충돌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냐?': 이전 세대에는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부부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연대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중매결혼도 일반적이었다. 생존의 시대가 끝나고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사람들은 소속감과 안정과 존중감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인 사랑을 정의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가정이 먼저냐 일이 먼저냐?': 더 이상 일로 버는 돈이 생존과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질문을 하면서 일의 의미도 생존을 위한 생계 수단에서 가족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게 된다.


자아의 시대

자아의 시대는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되고 어느 정도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갖는 문제점들이 질문이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가?', '왜 결혼은 나를 속박하는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들이 사회에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자아의 시대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국가에 충성하는 존재도,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도 아닌 온전한 개인이 된다. 가정을 이루고 애를 낳는 것보다 나의 커리어와 삶의 질이 소중해지고, 일이 주는 돈보다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더 중요해진다. 내가 어떻게 해서 돈을 벌 수 있는가 보다 내가 어떻게 해서 나만의 가치를 만들고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대기업에서 떠나고, 자신의 아이디어와 꿈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자아의 시대로의 이양

자아의 시대로의 변화에는 위해서는 경제, 사회, 정치 분야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수반된다.

경제적 변화: 수출 위주의 제조업이 고임금으로 경쟁력을 잃고 그 대신 고학력 인재들의 재능을 활용하는 혁신 경제로.

사회적 변화: 획일화된 정답 사회에서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의 사회로

정치적 변화: 국가단위로 한 방향으로 나아가던 정치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풀어내는 정치로


경제적 변화


경제적으로 대기업, 수출 위주의 제조업은 경제 체제에서 혁신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제조업은 집단주의적 문화에 잘 어울린다.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한 방향을 향해 뛰어가는 문화는 대기업 제조업에 이상적이다. 그렇지만 개인이 각자 생각을 달리하고 자아실현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회사에서의 성과는 떨어지고 이직을 하기도 하고 자아를 찾아 떠나기로 할 것이다. 또 목표가 회사에서 돈 버는 것이 아니기에 회사에 충성하기보다는 틈만 나면 딴생각만 하는 직원들이 생겨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을 '90년대생', '밀레니얼' 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람들이 회사에서의 생존이 아니라 자아실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선진국이 되어감에 따라 제조업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대신 개발도상국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하는 회사들이 생겨난다. 이정동 교수님의 "축적의 길" 책에 나오는 '실행 역량'에서 '개념 설계 역량'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같은 스마트폰 제조업을 하는 삼성과 애플의 차이이기도 하다. 애플은 이미 직접 스마트폰 제조는 할 수가 없다. 인건비가 높은 미국에 생산 공장을 둘 수도 없고 해외 직영 공장도 없다. 모든 제조를 중국과 대만의 기업들에게 맡긴다. 그리고 그들은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스마트 기기들을 설계하는데 집중한다. 반면 삼성은 제조업의 전통으로 스마트폰에 접근한다. 그러다 보니 더 성능이 좋은 휴대폰을 만들 수 있지만 종합적 사용자 경험은 더 좋은 하드웨어보다 다음 순위에 있다. 즉, 처음부터 애플은 개념설계 회사, 삼성은 실행 역량의 회사였다. 기술 혁신의 측면에서 혁신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에서는 애플이 새 제품을 낼 때마다 혁신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애플의 새 기술은 삼성 핸드폰에 몇 년 전에 적용된 기능이라고 이야기했다. 반대로 사용자 경험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애플에서 혁신을 느꼈다. 드디어 그 기능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변화


사회적으로 자아의 시대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가 된다. 각 한 사람 한 사람의 독특한 특성들이 조명되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보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조명받기 시작한다. 과거의 우리는 수석 합격자, 국가고시 합격자를 조명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에 더 관심을 갖는다.


개인이 이루고 싶은 것들이 생기고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이 급증하면서 신생아 수는 급감하고 사회는 점점 고령화 사회로 이양하게 된다. 아직 우리에게는 청년 실업이 문제인 것 같지만 몇 년 후에는 일하는 청년의 수가 모자라서 아우성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임금 상승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전 세계 젊은 인재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곳이 될 것이다. 전 세계 똑똑한 인재들이 자신의 나라에 있는 것보다 한국에 오면 4배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면 한국어를 배워서라도 한국에 오는 것이 당연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도전하며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리콘밸리는 그러한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성의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인종 차별, 민족 차별, 성 지향성 차별, 남녀 차별, 나이 차별 등에 대한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다양성의 시대의 도래는 반만년 단일민족인 한민족이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게 하는 압력이 될 것이다. 한국은 인구 고령화로 인해 젊은 인재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전 세계 인재들에게는 높은 임금과 멋진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일하고 싶은, 나아가 살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해외 인재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몇 년 내 우리는 우리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고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우리보다 더 돈을 많이 버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강남에 집을 살 것이고 강남역과 압구정과 홍대 앞에서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영어를 쓰겠지만 한국어를 어렸을 때부터 배워 잘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들을 축출해내고 단일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갈 것인가? 이러한 고학력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못 들어오게 하면 우리나라는 곧 인구 고령화와 고임금 고물가로 경제적 활력을 잃어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정치적 변화


전정환 님의 "밀레니얼의 반격" 책에도 잘 소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앞으로 올 시대의 정치는 이전의 시대와 너무나도 다르다. 전쟁과 가난의 상처에서 벗어나 잘살아보자를 외치며 경제적 부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의 정치와 반 민주적인 독재정치에 맞서 싸웠던 세대의 정치는 국가와 사회가 아닌 나 자신의 자아실현에 관심을 갖는 세대의 정치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앞으로의 정치는 경제 발전을 위한 정치도 아니고 민주화를 위한 정치도 아니다. 앞선 세대의 값진 희생과 노력 덕분에 우리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세계적인 수준의 민주화도 이루었다. 물론 퇴행하지 않도록 노력도 해야겠지만 퇴행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방향이다. 우리는 이 멋진 나라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


앞으로 시대의 정치는 다양성의 정치가 될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다양해지고 각 개인이 자신의 자아에 관심을 가지면서 각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은 규제 철폐를 원하겠고 택시를 하는 사람은 택시업 보호를 원할 것이다.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리고 싶겠고 세입자는 임대료를 내리고 싶을 것이다. 제조업 위주의 대기업은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정부에서 지원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고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더 많은 돈을 주도록 하는 정책을 원할 것이다.


이전의 시대에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경제발전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어떠한 입장이 더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하고 다른 쪽은 정치적 권력이 희생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각 사람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어야만 하고 하나의 집단에게 몰아준다고 해서 경제 발전이 되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다. 나아가 경제 발전이 국가의 목표도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국민들이 행복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의 목표라면 이제 더 이상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미 어느 정도 잘 먹고 잘 살게 된 사람들이 각자의 역량을 펼치며 자아실현을 해야 행복해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자아의 시대에는 수많은 다양한 자아들의 이해관계의 갈등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국가가 해내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은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각자의 자아실현을 추구하며 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니크한 가치들을 생산해내고 그것을 통해 그들은 GDP에 기여하고 세금을 낸다. 오히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국가는 다양성을 통해 혁신을 만들어내는 나라들에 비해 경제 성장이나 국민의 행복도 면에서 뒤처지게 된다.


각각의 이해관계를 가진 국민이라고 해도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어떠한 대표자가 자신을 대변해 줄 수 있는지를 찾는 것은 현재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활발할 토론을 할 수 있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가 있지만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데이터에 직접 접근할 방법은 주어지고 있지 않다. 언론 등을 통해 해석된 데이터에만 접근이 용이할 뿐이다. 그래서 어떤 언론을 접하느냐에 따라 가짜 뉴스에 속기도 하고 편향된 의견 형성을 하기도 한다.


다양성의 시대의 의사 결정은 데이터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고, 각 이해관계와 사회에서의 역할에 따라 입장을 정하고, 선의를 가지고 솔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토론에 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승패가 있는 싸움을 하기보다는 모두가 조금씩 희생하고도 만족할 수 있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결론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결론을 얻을 수 없으면 어떠한 규칙을 가지고 결정을 해야 한다.


다양성의 정치는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그리 이상적이지는 않다. 국가적 공통의 목표가 아닌 각자의 이익을 솔직히 드러내 놓고 싸울 때에 정치는 더 정글 같은 싸움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게임의 규칙이다.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하든, 전 국민 온라인 투표로 하든, 아니면 돈을 많이 모은 사람이 이기든 어떤 게임의 규칙이 존재해야 한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투표가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밀레니얼은 다른 나라의 밀레니얼과 다르다


미국/유럽의 변화의 시기
- 민주주의 정착: 1800년대
- 대기업 제조업 위주의 경제에서 혁신 경제로의 이양: 1970년대 (일본 제조업이 미국 추월)
-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개인화된 시대로의 변화: 1970년대 (히피 문화, 68 혁명)
-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의 등장: 2010년대
대한민국의 변화의 시기
- 민주주의 정착: 2010년대 (촛불 혁명)
- 대기업 제조업 위주의 경제에서 혁신 경제로의 이양 시작: 2010년대 (임금 상승, 대기업의 경쟁력 약화)
-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개인화된 시대로의 변화: 2010년대
-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의 등장: 2010년대


지금 우리나라의 밀레니얼은 다른 나라의 밀레니얼과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해외의 밀레니얼은 디지털 세대라는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폰을 통한 정보의 무제한적 접근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그 특징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밀레니얼은 그러한 특징에 더해 더 큰 특징을 갖는다. 바로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첫 세대라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밀레니얼을 이야기할 때 새로운 패턴을 가진 소비자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세대 소비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의 밀레니얼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적 거대 담론이 된다. 정치 지형의 변화, 공정성에 대한 질문, 기업에서의 파괴적인 행동, 스타트업과 새로운 아이디어 지향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각각 다른 영역에서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는 밀레니얼과 90년대생에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러한 시대가 시작된 첫 번째 시기가 바로 68 혁명 이후, 즉 1970년대 초이다. 그때까지 국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었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평등을 외치고 자아를 찾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무정부주의부터 민주주의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맞춰 각자의 자아를 찾아가는 시작점이 되었다. 집단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정치 지형에서 개인 위주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히피 운동과 무정부주의 운동의 주요 주제였다. 그 시대의 가치를 녹여낸 존 레넌의 'Imagine'이라는 노래는 전쟁도 없고 평화로운, 모두가 각자의 자아 그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기업 문화 변화와 스타트업 위주의 지향성은 세대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기술 혁신으로 생겨난 새로운 사업 모델에 돈이 모이고, 전 세계 인재가 모이고, 실리콘밸리가 새롭게 탄생함으로 인해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와는 관계가 없는 변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시기가 일치해서 세대의 특성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All-or-Nothing Marriage라는 책에 나온 미국적 기준에서의 시대 구분에 따르면 미국의 생존의 시대는 1850년대에 끝나고, 소속의 시대는 1970년대에 끝난다. 우리가 미국을 개인주의적이라고 할 때 그 미국은 1970년대 이후의 미국이자 우리의 앞날과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존의 시대가 70년대에 끝나고 핵가족화, 개인화가 진행되었고 2010년대에 들어서 이제야 자아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아마 앞으로의 시대에는 우리는 집단주의 적이고 미국은 개인주의적이라는 말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도 자아의 시대에는 당연히 개인주의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밀레니얼 세대는 정말 독특한 세대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아의 실현을 추구하는 첫 세대이자 첫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고 선악이 존재하던 정치를 넘어 다양성과 공정의 정치의 시대를 처음 열어가야 하는 세대이다. 또한 한국을 향해 밀려오는 이민자들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 문화적 지위에서 우리의 위치를 정의해내야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전에 없던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것이 이미 해외에서는 어느 정도 지나가버린 밀레니얼들에 대한 이야기에 우리가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그 논의가 확장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90년대 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의 글에서 다루어 보았다.

https://brunch.co.kr/@svillustrated/65


각 영역에서의 나의 솔루션

경제적 변화를 위한 솔루션: 역할 조직

경제의 가장 큰 주체는 기업이고 기업의 양태에 따라 다른 주체인 정부와 개인의 경제의 양상도 달라진다. 기업이 분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구매력이 결정되고 기업이 얼마나 생산하냐에 따라 정부의 세금 수입도, 예산도 달라지게 된다.


자아의 시대의 국민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서 GDP과 경제성장으로 이끌 수 있는 경제 체제는 혁신 경제 체제이다. 획일화된 틀에서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은 노동력의 질이 낮고 전문성이 부족할 때 최고의 빛을 발휘한다. 각자에게 맡겨 놓아 봤자 새로운 것이 나올 것도 없고 돈만 받고 최대한 놀 생각만 하는 인력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혁신도 생겨날 수가 없다. 오직 위에서 계획한 대로 일을 수행하게 할 뿐이다.


반면 자아의 시대에는 고학력의 전문성을 갖춘 개인들이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차이는 국가대표팀과 프로축구팀의 차이와 비슷하다. 국가대표팀은 한정된 선수들을 가지고 최대한 역량을 끌어내야 한다. 수비수가 모자라면 미드필더를 수비수로 만들어야 한다. 전체의 목적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 프로 축구팀에서는 수비수가 모자라면 새로운 수비수를 사 오면 된다.


공채 위주로 구성원을 뽑아 왔던 우리나라의 세계적 기업들은 어찌 보면 세계적인 프로페셔널 리그에 들어간 국가대표팀과 같았다. 한국인 중 최고의 엔지니어, 한국인 중 최고의 프로덕트 매니저 등을 뽑을 수 있었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인재들은 뽑기가 어려웠다. 특히 각자의 다양한 역량을 발휘할 수 없고 회사를 위해 XX맨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인재들은 한국 기업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결정권이 위에 있는 위계 조직에서 결정권이 분배되어 전문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역할 조직으로 기업의 문화를 바꾸어나가면 기업은 비싼 비용을 제공하고 쓰는 고급 인력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고 개인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면서 자아실현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


역할 조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책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를 통해 소개하였다. 또한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브런치와 책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841603

https://www.youtube.com/watch?v=iaNl6zKTBfg&t=22s


사회적 변화를 위한 솔루션: 다양성에 대한 책/글/영상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던 소속의 시대와는 달리 자아의 시대에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중요하다. 각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같은 것을 추구하면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획일화된 제조업에서 벗어나 혁신 산업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생각들을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은 비단 남녀의 문제나 외국인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나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때 편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다양성이다. 내가 나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버리지 않고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다양성이다. 즉 법과 규칙을 지키는 한 내가 다른 사람과 유사하게 행동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남성이 여성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여성이 남성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며,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성 소수자가 자신을 숨기며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다. 또한 모두가 변호사, 판사, 의사가 되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각자가 자신이 타고난 재능대로 살면 먹고사는 것도 해결되고 자아도 실현되는 그런 사회이다.


그러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획일화된 정답 사회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한 의식의 변화에는 글과 영상을 통한 발제와 강연과 토론이 유용할 것 같다. 그래서 다양성에 대한 글들을 브런치와 페이스북 통해 올리고 있다. 앞으로 이 글들이 모여서 책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을 꾸준히 정리해서 다양성에 대한 인식 개선에 일조하고 싶다.


https://brunch.co.kr/@svillustrated/58



정치적 변화를 위한 솔루션: www.oxopolitics.com

정보 기술의 발전으로 시민들에게 소통의 권력이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넘어와서 촛불 혁명 등 많은 정치적 변화의 촉매가 되었다. 그렇지만 시민들에게 데이터의 권력은 아직 넘어오지 않았다. 시민들이 가짜 뉴스와 편향된 언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으려면 데이터가 시민들의 손으로 넘어와야 한다.


아주 제한적인 첫걸음이지만 www.oxopolitics.com로 정치적 의견에 대한 데이터를 시민들에게 넘기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았다. 앞으로 좌/우의 1차원 정치 문화에서 벗어나 2차원적 정치 지형도를 그리고 그 지도에 각 사용자의 위치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국민의 대표자들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 지금의 꿈이다. 언제 그 꿈에 달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걷다 보면 근처라도 가겠지라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떼고 있다.


https://brunch.co.kr/@svillustrated/59

https://brunch.co.kr/@svillustrated/60

https://brunch.co.kr/@svillustrated/61


내가 왜 이러한 일들을 하려고 할까?



행복한 우리나라에 대한 소망

위에 열거한 3개의 프로젝트, 기업 문화를 역할 조직으로 바꾸고, 사회에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며, 데이터에 기반한 다양성의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다 직접적으로 큰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대부분 나의 좁은 생각으로 만든 뇌피셜에 기반한 미래에 대한 예상과 꿈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 생각들을 한국 사회에 내놓고 토론의 시작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를 미국처럼, 실리콘밸리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실리콘밸리보다 더 멋진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보다 더 의료 복지가 잘 되어있고 극 소수가 아닌 사회 전체에 부를 나누며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각자가 자신의 꿈과 재능대로 살아도 다들 잘 먹고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본은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혁신 경제로 이양하지도 않았다. 정치는 옛날의 시스템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언론 자유도는 점점 하락하고 있다. 세계 1등의 혁신 국가가 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일본은 아래로부터의 변화의 동력도 없었고 위에서는 보수정권이 변화하지 않고 안정적인 나라로 만들었다. 일본에 대한 평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있겠고 진보/보수에 따라서도 갈리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변화의 시기에 변화를 하지 않은, 아주 편안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고령의 나라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일본도 산업화 시대가 다 퇴장을 하고 나면 자아의 시대로 이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고령화로 인해 그 시기가 점점 미뤄지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매우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시민과 기업들과 정치가 있다. 우리는 강박적으로 변화를 외쳐왔고 항상 변화를 향해 달렸다. 모두가 함께 한 방향으로 달렸다. 이제 각자의 달리는 속도에 각자의 방향을 부여할 수 있으면 그 에너지는 획일적 제조업에서 창조적 혁신 산업으로 옮겨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그게 미국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인 나에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나는 자아의 시대, 혁신의 시대에 자아실현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게 내가 경험한 자아실현을 통한 행복이었고 이제 우리나라에 그 자아실현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존의 시대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화목한 가정에 살며 자신의 가치를 느끼며 자아실현에 이른 사람이 상위 1% 이하였다면, 소속의 시대에는 상위 10% 정도, 자아의 시대에는 상위 50% 정도가 그러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 인간에게 준 행복이라는 선물

이는 나의 종교관에도 연결이 된다. 나는 신이 인간을 각자 다 다르게 만들어서 사회에 균형을 이루게 했다고 믿는다. 축구 좋아하는 사람, 정치 좋아하는 사람, 돈 좋아하는 사람, 프로그래밍 좋아하는 사람, 외국어 공부 좋아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창조의 목적에 맞게 살면 행복을 느끼게 신이 프로그래밍해 놓았다고 믿고 있다.


내가 이해하고 믿고 있는 행복은 신이 인간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고 개체를 보호하고 종족을 보존하는데 유리한 행동을 하게 만들어 놓은 메커니즘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때 재생산을 하게 되고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행복을 느끼고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면 또 행복을 느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나의 자아와 맞는 직업을 찾아 일을 하면서 그러한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거대한 사이드 프로젝트들은 나에게는 신이 준 소명이자 내가 느꼈던 행복을 나누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경험에 따르면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혼자 하게 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역할 조직이라는 개념을 정리하고 책으로 만들기까지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팀이 있었고, oxopolitics를 만드는 과정에는 4명의 엔지니어들과 한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해 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한국에서 나를 응원해 주시고 조언을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리고 아주 중요하게도 이러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생각을 할 때 바로바로 비판해 주고 피드백을 주고 토론에 함께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내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균형을 잃는 경우가 꽤 많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 방향으로 걷다 보면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프로젝트를 하게 될지 기대된다.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신의 계획이 있고 인도하심이 있으리라 믿으며 걸어가 볼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뛰지 않고 걷는 삶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