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연애를 하면서 제일 들뜨는 순간은 언제일까?
첫데이트? 첫키스? 첫포옹? 첫선물?
내게는 처음으로 손잡았던 순간이었다.
맨살과 맨살이 닿는 그 촉감만으로도 얼마나
가슴이 두근댔는지 모른다. 얼굴이 붉어졌다.
누군가의 커다란 손에내 손이 쥐어져있다는
사실로 진땀이 났다. 그런데 그 느낌이
참 보드라왔고 푸근했다. 설렜다.
긴장감속의 풋풋한 떨림이었다.
그런 연애를 지겹게 9년이나 하고
결혼을 했다.
서로를 잘 알다못해 지치도록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어쩜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서로 보여주지 않은것이 아니라 서로 보지 않은 것들이었다.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외치지만, 원래 그랬던 것들인데 그렇지 않을것이라 혼자서 믿은 것이었다.
섣불리 혼자서 짐작한 것들이었다. 짐작은 현실이 되면서 사소한 감정으로 부딪혔다.
부부란 쉽지 않다.
어느 날 저녁. 친구들과 늦은 맥주 한잔을 하기 위해 달려간 광안리.
어둠속에서 광안대교가 빛을 내고 있다. 그 까만 어둠을 밝히는 수천개의 전구를 보다말고
그 장대한 빛 속에서 갑자기 남편이 떠올랐다.
부부라는 묘한 관계는 얼마나 더 살아야 어둠속에 밝혀진 전구들처럼
서로의 실체를 속속들이 공개하게 될까?
드라마 대본을 쓰던 시절.선배 작가들과 공통된 의견으로 박장대소한 일이 있다. 대사 중에서도
부부싸움 대사가 제일 쉽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원칙은 간단하다.
"무조건 상대의 말꼬리를 잡아라. 상대의 말을 비틀어 시비를 걸어라. 과거를 시시콜콜 찾아서 공격하라."
크크. 돌아보니 우리의 부부싸움과 드라마속의 부부싸움이 다를 바 없다.
어둠속의 빛은 더 크게 도드라진다.
평화속의 불란은 더 크게 도드라진다.
부부싸움의 대사를 뒤집어보자. 간단하게 부부의 사이에 휴전이 찾아 올 것이다.
"상대의 말꼬리를 놓아주어라.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라. 지나간 과거는 들추지 말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