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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24. 2022

안녕, 튀르키예

'오히려 좋아' 마법 같은 주문


오히려 좋아!


마지막 출장, 두 번째 튀르키예

튀르키예로 지금 회사에서의 마지막 출장을 떠났다. 코로나 전 마지막 출장이 터키(현 튀르키예)였는데 코로나 이후 첫 출장이자 현재 회사에서의 마지막 출장이 또 튀르키예라니 애증의 관계로 묶여있나 보다. 사실, 코로나 이후 출장의 기회가 몇 차례 있었으나 너무 바쁜 업무로, 그리고 더 이상 출장이 예전만큼 내게 설레는 일이 아니었기에 후배들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인원감축으로 인해 결국 내게도 차례가 돌아오게 되었다. 처음엔 일도 많은데 일주일이나(정확히는 5박 8일) 시간을 빼서 출장을 간다는 게 불가능으로 보였다. 노트북을 아무리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다른 클라이언트와 시간대도 다르고 눈앞이 깜깜했는데, 오히려 출장일이 가까워지자 눈 딱 감고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리프레시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의 기대가 가슴 한 켠에서 피어났다.


해맑은 여행 메이트들

이번 출장은 기존 매체나 인플루언서와의 트립이 아니라 일반인 참가자들과 함께하는 여정이었다. 한 대형 브랜드와 협업 프로모션을 진행해 순수하게 랜덤으로 튀르키예 여행 기회에 당첨된 사람들. 떠나기 일주일 전 줌으로 간단히 OT를 진행했는데 다들 마이크를 꺼두어서 그런지 말수도 적고, 질문도 없고 


이 여행 괜찮을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런 걱정을 모두 날린 출장 당일. 많게는 나랑 띠동갑보다 더 많은 나이 차이가 나는 어린 사람부터 대부분이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 막상 만나니 다들 들떠있고 밝은 모습들. 한결 안심이 되었다.


여전한 튀르키예

그렇게 도착한 튀르키예는 여전했다. 비행기 차창밖으로 보이는 이국적인 사원 뷰, 보스포러스 해협이 둘러싸고 있는 반짝이는 야경, 그리고 교통체증과 기도를 알리는 아젠 소리까지. 코로나 전 마지막으로 왔던 출장이 떠오르며 기분이 묘했다.


사실 본 출장에서 걱정이 되는 일은 한 가지 더 있었는데, 바로 현지 가이드였다. 한 달 전 다른 출장으로 우리 회사에서 참여한 후배가 가이드 때문에 너무 힘들어 매일 코피를 쏟았다는 전언.. 그렇게 본청에 공유했음에도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같은 가이드를 또 출장에 배정한 것이다.


바짝 긴장하고 가이드에게 몇 가지를 당부한 뒤, 새벽 4시에 이스탄불로 떨어진 우리는 호텔에서 씻고 조금 휴식을 취하다 첫날 일정을 시작했다. 


길치 가이드를 본 적 있나요?

이런, 첫날부터 일이 터졌다.


가이드가 길을 잃은 것이다. 여태껏 많은 출장을 경험했지만 길치 가이드는 난생처음이었다. 본인은 카파도키아가 주 무대라(카파도키아 출신) 이스탄불을 잘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 오르타쾨이를 갔는데 정말 오르타쾨이 사진을 찍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어서 주변을 돌아보거나 아님 주변 포토 포인트를 물은 게 화근이었다. 가이드는 근처에 레인보우 계단(계단마다 색이 다른)이 있다며 5-10분 정도 걸으면 된다길래 거기를 다 같이 갔다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싶은 사람들은 찍고, 짧게 자유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계단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조금만 더 가보면 된다, 조금만 더. 그렇게 50분을 걸었을 때 길가에 있는 행인에게 가이드가 터키어로 묻더니 이미 그 계단을 지났다는 대답. 심지어 그런 비슷한 계단이 두 개나 있었어야 했다는데 오히려 우리 보고 오는 길에 못 봤냐고 묻는다. (기가 막혀..)


베식타스에 있는 오르타쾨이는 그날 현지 축구팬들로 온 거리가 붐볐다. 베식타스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튀르키예 현지 축구팀 중 한 곳인데, 더군다나 그날은 일요일, 주말이라 튀르키예 현지인들도 모두 다 거리에 나온 것 같았다. 인도도 잘 갖춰지지 않은 길에 인도와 도로를 아슬하게 오가며 베식타스 축구팬들의 어깨빵은 덤으로 맞으며 마치 퇴근길 강남 한복판에 서 있는 아니 강남 한 복판의 인파를 역으로 뚫고 가는 기분? 잊지 말자, 이 날은 새벽 4시에 이스탄불에 도착한 여행 첫날이었다..


나는 인내심을 모아 모아 뚜껑이 열리던 걸 간신히 참았다. 무슨 이런 가이드가 다 있지?


참가자들의 눈치도 보였다. 다들 엄청 기대하고 부푼 마음에 왔을 텐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미안했다. 10시간 넘은 비행에 다들 피곤했을 텐데 이미 시티투어로 몇 시간을 걸어서 돌아다닌 뒤에 아무것도 보는 것 없이 차도와 인도가 구분이 없는 길을 50분이나 더 걷게 하다니, 입이 바싹 말라왔다.


의외로 돌아온 대답은, 오히려 좋아

기사를 불러 바로 숙소로 복귀했다. 숙소로 도착 후 노을을 보자며 숙소 앞 카페에 데려갔다. 커피라도 한 잔씩 돌리며 기분을 풀어줘야 할 것 같아서.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는데, 너무 쇼킹했다.

오히려 좋았다는 것이다.


점심을 많이 먹어서 음악 들으며 걷고 소화시킬 수 있어 좋았다.
정말 로컬 속으로 들어가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처음엔 내 눈치가 보여 좋은 말을 하는 건가 했지만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들은 진심이었다.


오히려 좋아, 그날 이후 여행 내내 난 그 말을 되뇌었다.

정말 좋지 않은 상황에도 오히려 좋다는 말을 내뱉는 순간 정말 오히려 좋은 순간이 된다. 


일상에서 많은 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늘 내 뜻대로 되는 순간 보단 그렇지 않은 순간이 더 많은 것이 인생이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좋아,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는 순간, 힘든 순간보다 좋은 순간들이 더 많아진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에게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여행은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 속에서 나를 채워가고 다져가는 일.


카파도키아의 노을 앞에서 우리

우리의 나머지 여정은 말해 무엇? 오히려 좋은 순간들이 이어졌다.

내 마지막 출장을 오히려 좋은 순간으로 만들어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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