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드 Oct 10. 2022

쉽게 읽는 돈키호테 1-39

포로가 자기의 인생과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지금부터 포로생활을 22년이나 한 저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라만차의 북서쪽에 있는 레온이라는 산악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도시에서는 그나마 잘 살았지만 군인 출신 아버지가 낭비벽이 있어 방탕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헤픈 씀씀이를 조절하실 수 없었고 이대로 가다가는 파산할 것이 눈에 보였고 그전에 재산을 자식 3명에게 나누어 줘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 아버지 : 얘들아, <교회냐 바다냐, 궁정이냐>라는 에스파냐의 속담에 따라 너희는 세 가지 중에 선택을 하면 좋겠다. 학문의 길은 성직자가 되는 것인데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장사를 하면 부를 얻을 수 있는데 배를 타고 무역을 해야 한다. 왕궁에 들어가서 왕을 섬기는 건 힘든 일이지만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아주 큰 명성을 얻을 수 있다.


저는 맏이로 군인이 되기로 했고, 둘째는 인디아스로 가겠다고 했으며, 막내는 성직자가 되거나 하던 공부를 마무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재산을 4분의 1로 똑같이 분배해 주셨지만 우리 형제는 남겨진 아버지를 위해 재산을 좀 더 보태드리고 헤어졌는데 벌써 22년이 지났군요. 그동안 아버지와 형제들의 소식을 듣지 못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알리칸테 ➜ 제노바 ➜ 밀라노(무기와 군복 구매) ➜ 장군 알배 대공작의 밑으로 들어감(1567년 경) ➜ 대장 디에고 데우르비나의 부관이 됨. ➜ 플랑드르에 도착. 조금 있으면 대위로 승진 임박! 


➜ 터키가 베네치아의 영토였던 키프로스 섬을 빼앗자, 이에 맞서기 위해 교황 피오5세가 베니치아와 에스파냐와 동맹을 맺음. 동맹군의 총사령관인 우리 국왕 돈 켈리페 폐하의 동생인 돈 후안 데 아우스트레아가 대규모 전쟁을 한다는 소식이 들림. 이 전쟁에 참전하고 싶어서 대위 승진을 포기하고 이탈리아 제노바로 감


➜ 돈 후안 님이 시칠리아의 메시나에서 베네치아 함대와 합류(1571년 8월 23일). 스페인과 베네치아 연합군은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으로 터키 함대를 전멸 시킴.(세르반테스는 이 전쟁에 참여했고 가슴과 왼팔에 부상을 입었다) 저는 이때 보병 대위로 승진했습니다


레판토 해전의 승리로 터키 함대에 포로로 노를 젓던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유를 얻어 기뻐할 때 나만 불행했습니다. 우리 측 몰타 함대가 알제의 왕이었던 해적 우찰리의 함대를 기습했으나 실패해서 다 죽고 3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포로를 구하기 위해 스페인 함대 후안 안드레아가 출동했고 저도 제 부하들과 함께 거기 타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병 대위이기도 하고, 적의 함대에 제일 먼저 뛰어든 사람에게는 승리 후 금으로 된 월계관을 씌워주기 때문에 적함으로 뛰어들었는데, 적함이 그 순간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제 부하들이 저를 따라오지 못했고, 저만 홀로 적중에 남게 되어 포로가 되었습니다.


➜ 해적 우찰리는 저를 콘스탄티노플로 데려갔습니다. 터키 황제 셀림은 저의 주인인 우찰리를 해군 제독에 임명시켰고, 1572년 나바리노(그리스 펠로포네소 남쪽에 있는 항구)에서 저는 우찰리 해군 사령관 배의 노예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모든 터키 배를 항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 1574년 라 골레타 요새가 함락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1573년 돈 후안님이 튀니스 정복해 새로운 왕을 앉히자, 분개한 터키 대공은 베네치아인들과 평화 협정을 맺고, 1574년 튀니지를 방어하던 요새 라 골레타와 그 옆에 있고 돈 후안님이 지키던 요새도 공격했습니다. 이때도 저는 계속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라 콜레타 요새의 22번에 걸친 전투는 치열했으며 적군도 2만 5천 명이 죽었고 우리 측의 훌륭한 장군도 많이 죽었습니다. 


저는 이때 만난 포로 중 안달루시아 출신의 돈 페드로 데 아길라르 소위가 마음에 들었는데, 저와 같은 갤리선의 노예였고 제 옆자리에 앉았거든요. 그는 시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고 몇 개는 제가 외울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그는 저와 달리 탈출에 성공했고 지금은 소식을 모릅니다.




* 페르난도 : 아니! 돈 페드로 데 아길라르는 저의 형입니다. 이런 인연이! 저희 형은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자식도 3명이나 낳았고 부자예요. 형의 시를 들려주세요!



>> 전쟁 이야기가 이렇게 상세할 수 있는 이유는 작가 세르반테스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언급 되는 사령관이나 기사의 이름도 다 실존 인물인데, 발렌시아 출신 장군 돈 후안 사노게라의 항복, 라 골레타의 대장 돈 페드로 푸에르토카르레로가 포로가 되어 끌려가다 사망한 사건, 요새 대장 가브리오세르베욘의 전투, 배신당한 산후안 교단의 기사 파간 데 오리아 등 작가가 경험한 역사적 사건이 같이 기록되어 있어 현실감을 더한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기에 사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기도하며 다음 이야기로 GO GO!






* 속담 한 줄

- 배신행위는 마음에 들지만 배신자는 증오한다


: 전쟁 중 산후안 교단의 기사 파간 데 오리아는 요새가 함락되자, 동료 아랍인이 탈출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무어인의 옷을 입고 타바르카 항구에 갔는데, 그 아랍인이 기사의 목을 잘라 터키 함대의 장군에게 가져갔다. 터키 장군은 오리아 기사를 산채로 데려오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며 그 아랍인을 교수형에 처했다는 내용에 인용된 문구.





To be continue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