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영강 Aug 16. 2024

워블의 본모습

집으로 돌아오는 길, 퓨티는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눈이 퀭했다. 발뒤축이 시티 해안가 낚시꾼들의 바늘에 꿰인 것처럼 뒤로 팽팽히 끌려가 있었다. 퓨티의 머릿속은 온통 순간순간 떠오르는 책의 결말 장면이었다. 눈을 얻어맞은 듯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나타나곤 하는 장면들. 장면은 늘 뒤바뀌었지만, 새 장면에서 바뀌는 것이라곤 구도, 색, 형상 같은 쪼가리들뿐이었다.


“그래, 맞아. 딱히…”


“이럴 기분으로 따라나선 건 아니었어.”


퓨티는 뒤돌아서며 멀어진 사형대의 꼭대기를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풀 죽은 얼굴로 되돌아와 처량한 자신의 꼬락서니를 거리 곳곳으로 내비쳤다. 퓨티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 같은 모습으로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오전에 내린 호우 덕분이었다. 마을에 있어 게릴라성 호우는 그러한 존재였다. 겨울을 물리쳐 준 대가로 더위에 빌붙어 공생하는 삶을 허락받은 악귀와 같은 존재. 비가 오는 날이면 나서는 사람 없이 마을은 조용했다. 그 들은 쉬었고, 그들은 숨었다. 내려져 있는 집의 빗장을 올리기 전, 퓨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속에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기에 어떤 연유로 그런 행동이 나왔는지는 퓨티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거무칙칙한 구름들 사이로 옅게 벌어진 작은 틈이 너무도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마을을 뒤덮은 무채색과 맞서는 유일한 샘터였다. 퓨티는 우연으로 발견한 그곳을 재빠른 다른 구름에 가려 한 점의 여백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았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이 뒤따르는 비참함과 맞닥뜨리려는 그때, 퓨티는 지금의 자신을 쏙 빼닮은 여인이 맞은편 난간에 기대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체 푸른 물감에 흰색을 녹인 듯한 연한 색 계열의 원피스, 그리고 그 위에 감긴 베이지색 스카프. 공허한 눈으로 그를 몰래 흘겨본 퓨티는 달라진 한 가지를 속으로 알 수 있었다. 워블을 향한 오늘의 마음가짐엔 평소와는 차이가 있구나, 라고. 퓨티는 왠지 집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퓨티는 빗장 위에 올린 손을 거둬들이고 몸을 돌려 축축한 바닥에 몸을 주저앉혔다. 그리고 퓨티는 워블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워블은 멀리서 보아도 힘이 없어 보였다. 특히 바람이 워블을 향하여 풍성하던 원피스가 그녀의 몸에 달라붙을 때면 그 같은 면이 더욱 도드라졌다.


‘죄책감인 건가?’


퓨티는 속으로 말했다. 그다음 한 번은 소리 내 중얼거렸다.


“저런다고 떠나간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문득, 위에서 불던 바람이 아래로 내려왔다.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의 서늘함을 유지하고 있는 바람에 퓨티의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바람이 지나가고도 뒤이어 전과 같은 것이 불어오진 않을까, 기대하면서 퓨티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더 이상 바람은 찾아오지 않았다. 바람 대신 어디선가 노크하는 듯한 소리가 퓨티의 귓가로 들려왔다. 자연적인 소리이겠거니 퓨티는 무시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동일한 소리가 똑같은 간격으로 울려오자, 퓨티는 눈을 떴다.


‘딱, 딱.’


눈을 뜬 퓨티는 소리가 피어난 위치를 단번에 발견했다. 그리고 손을 든 워블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퓨티는 작게 속삭였다. 이어서 워블의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라올래요?”


그에 퓨티는 손가락을 자신을 향해 가리키며 되뇌듯 말했다.


“올라오라고요?”


“네, 퓨티 양만 괜찮다면요.”


퓨티는 홀린 듯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본 워블은 기쁘다는 얼굴로 난간에서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흔치 않은 경우였다. 해가 지는 무렵까지 워블이 난간에서 내려오는 경우는 미음을 떠먹을 때나, 볼일을 보러 갈 때, 거의 저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피크와 워블 부부가 사는 집의 현관은 단출해 보이기도 했고, 너저분해 보이기도 했다. 안개꽃 줄기들이 시든 그대로 구석 모퉁이에 더미가 돼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돌고래 모양 자수가 담긴 시트와 유모차 한 대가 놓여 있었고, 천장으로는 파도의 단면을 본뜬 듯 보이는 납작한 모빌 여럿이 휘휘 돌아가고 있었다. 퓨티는 흥미에 찬 표정으로 파도 하나를 튕겼다가, 계단으로 발소리가 들리자, 손가락을 등 뒤로 감췄다.


“어서 와요.”


워블이 손을 내밀어 퓨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먼지로 막힌 듯한 목소리였다. 퓨티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쭈뼛한 표정으로 입을 움직였다.


“…아, 안녕하세요.”


“바지만 털고 들어와 줄래요? 다른 건 괜찮아요.”


“네.”


“물?”


“아뇨, 괜찮아요.”


퓨티의 건조한 대답에 워블은 눈썹을 으쓱해 보이고는 앉을 곳을 안내해 주었다. 두 사람의 집은 분리되어 있었다. 집으로 첫발을 디딘 퓨티는 아래서 올라오는 바스락 소리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눈을 내린 퓨티는 그제야 워블의 뒤에 숨어 있던 피크의 삶과 마주할 수 있었다. 1층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어느 한 곳 정돈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급하게 쓴 듯 보이는 편지 봉투들이었다. 공통적으로 도착지는 쓰여 있지 않았다. 모두 보내는 곳 주소만 명기돼 있었다. 퓨티는 발아래에 보이는 봉투 하나를 들어 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속으로 읽었다.


‘F-58’


출발지에 적힌 문구였다.


“그냥 아무 데나 던져 버려요.”


투명한 유리컵에 물이 반쯤 찰랑였다. 워블은 퓨티에게 컵을 내밀며 봉투를 자연스레 넘겨받았다. 일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처럼 단순히 빼앗긴다는 기분이 든 퓨티는 잠시간 워블의 손으로 간 봉투를 말없이 바라봤다.


“시원할 거예요. 저희는 장작을 넣는 지하에 식수를 같이 쟁여놓거든요.”


“아, 네. 감사합니다.”

     

대답한 퓨티는 기계적인 몸짓으로 담긴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다음 지시를 바라는 사람처럼 워블을 바라봤다.


“점심은 먹었어요?”


워블이 빈손으로 잔을 받으며 물었다.


“하루만 일찍 왔으면 좋은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을 텐데.”


말하는 워블의 검은 머리 너머로 까맣게 탄 장소가 보였다. 부엌이라고 나뉜 특정한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각기 다른 모양을 띠고 있는 그을음들은 크기에 따라 뻗친 모양이 달랐고, 어느 한자리에서 일자로 길게 뻗어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 바로 밑에 크기 별로 포개어 놓은 조리기구 역시 그와 색이 엇비슷했다.


“남편이 화를 참느라 이런 걸 거예요.”


워블이 퓨티의 속마음을 읽은 사람처럼 말을 건넸다. 말을 들은 퓨티도 물러서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냥 난간으로 가요. 지금 딱히 뭘 먹을 기분이 아니라서요.”


“그래요.”


계단에서 보이는 워블의 집은 상당히 깔끔했다. 나무 사이에 껴 있는 황토 역시 덧댄 기간이 오래 흐르지 않은 듯 천연 그대로의 색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퓨티는 워블의 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창에서 난간으로 이어지는 바닥에는 연갈색의 자그마한 양털 카펫이 덮여 있었다. 워블을 따라 발을 내린 퓨티는 보드랍고도 기분 좋은 촉감에 그 위로 발을 연신 문질렀다.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왔어요.”


어느새 난간으로 가, 몸을 기댄 워블이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퓨티가 무심코 내뱉은 대답에 워블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겹지 않으세요?”


짧지 않은 침묵, 혹은 정적. 퓨티는 입 안에 침이 고였지만, 그를 삼키지 못했다. 워블의 고개가 느린 속도로 퓨티를 향해 움직였다.


“…어떻게 지겨울 수가 있겠어요.”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잖아요. 잊으실 때도 되셨다고요. 마을 사람들이 워블 씨를 걱정하는 거 알고 계세요?”

     

그때 워블의 얼굴이 퓨티에게로 완전히 젖혀졌다. 퓨티의 목젖이 꿀렁였다. 어디로 보나 사나운 눈매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다물려 있던 입술이 벌어지며 말소리가 나왔다.


“퓨티 양, 내가 아직도 하늘 위의 구름이나 껴 맞추는 미친년으로 보여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