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이든 출입을 위해서는 홍채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아들로 등록이 된 직후부터 그 같은 확인이 불필요해졌다.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로든 숨을 수 있다는 뜻이다. 회복실에 들어서니 따스함이 느껴졌다. 곳곳에서 맥박 소리가 울렸다. 나는 파르제를 찾기 이전에 통에 잠겨 있는 다른 사람들을 구경했다. 얼굴을 덮고 있는 호흡기가 마치 책에서 본 우주복 같았다. 단 하나,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저렇게 눈을 감고 있는데도 저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누구…”
꼬맹이 여자 간호 로봇이다. 크기가 나보다 조금 큰 것이 귀엽게 생겼다. 나는 말을 걸기 전에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감사합니다, 엘렌 님.”
예의도 바르지.
“혹시 파르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니? 내 친구야.”
“물론입니다. P-3-2에서 치료 중이에요.”
그에 나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나는 그곳을 알지 못해. 그 앞까지 데려다 줄 수 있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로봇은 나를 가로지르더니, 오른쪽 팔을 뒤로 뻗었다. 손이 마중 나오면 잡는 것이 예의라고 배웠기에,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감촉이 차가울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간호 로봇의 손은 무척이나 따스했다. 간혹 그녀가 고개를 돌려 올 때면 나는 내 걸음에 문제가 있나 생각했지만, 단지 걱정의 눈길이라는 걸 파르제의 곁에 다다라서야 깨달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엘렌 님.”
“응! 고마워!”
그리고 나는 파르제가 있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잘 다듬어진 눈썹, 오뚝한 콧날. 입술은 왠지 모르게 보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곱슬이라고 했다. 아, 처음. 맨 처음 파르제를 만났던 때는 내가 말수가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더욱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와 내가 정원을 거닐던 푸르른 날이었다. 어디선가 음식 냄새가 났고, 아버지는 취식이 금지된 장소에서 농땡이를 피우는 누군가를 혼쭐내고자 나서셨는데, 그게 파르제였다. 그녀는 그 당시 작은 텃밭에 있던 파를 굽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텃밭을 훼손시키는 범행자로 오해를 받았다. 파르제는 웃으며 여러 개의 파를 꽂은 나뭇가지 두 개를 우리에게 건넸었다. 아버지는 칼을 뽑아 들며 나에게로 물러나라 호통쳤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를 맛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첫입을 먹는 순간 깨달았다. 대단한 맛이야, 라고. 아버지의 반응도 비슷했다. 이후로 아버지가 한 말이 있는데, 아직도 이해 못 할 말이다.
-너로구나.
나는 파르제의 통 위로 올라갔다. 통 속 물의 온도가 나의 손처럼 따뜻했다. 그리고 불현듯 파르제의 맥박이 다른 사람들보다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두 번이면, 파르제는 한 번이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이후로 나는 생각했다. 턱을 괴어서, 뺨을 번갈아 붙이어서, 얼굴이 납작해지도록 꾹 누르면서. 그러던 중, 나는 다시 잠들었다. 또다시 안개가 자욱한 공간이다. 이번에도 세 단계 모두를 건너뛰었다.
“어서 와.”
나는 녀석이 보이지 않는데, 녀석은 내가 보이는 모양이다.
“말했지, 난 널 부르지 않았다고.”
녀석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좀 자연스러워지는 게 좋을 거야.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나올 거거든.”
나는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무슨 뜻이야?”
안개 속으로 몸이 얇실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옆자리에도 누군가가 서 있었다. 안개가 자욱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서 있는 공간은 비어 있었다. 말하자면, 공간이 마치 비어 있는 듯 보였다.
“저곳이 보여?”
녀석이 호들갑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보여. 담배 피우는 사람.”
“아니, 그 옆에.”
나는 보인다고 말하면 녀석에게 지는 기분을 느낄 것만 같았다.
“안 보이는데.”
“거짓말. 방금까지 그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던걸.”
왜 묻는 거야. 꿈속 세계의 모두가 네 계획대로면서.
“알면서 왜 물어본 거야?”
“중요한 부분이거든. 그래서 확인이 필요했어.”
나는 다시 그곳으로 눈길을 옮겼다.
“저게 뭔데?”
나는 물었다. 그때야 녀석이 내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대답 대신 지팡이를 휘둘렀다. 안개가 조금 걷히었다. 거기서 무슨 용기가 생겨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소리쳤다.
“깔짝깔짝하지 말고 있는 힘껏 힘을 써 봐!!”
그러자 녀석은 지팡이를 한 번 더 휘둘렀다. 저번과 같은 반짝임은 없었지만, 기분상 안개가 조금 더 걷힌 것 같았다.
“몰랐어. 네가 화를 낼 줄은.”
녀석이 지팡이를 거두며 말했다.
“너라면 화가 안 나겠어? 네가 하는 짓거리를 보고 있으면 없던 충동도 생겨.”
“어떤 충동?”
“정말로 저기에 가 보고 싶다는 충동.”
내 말이 무엇을 자극했던 걸까. 녀석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말? 정말 저기에 가 보고 싶어?”
“그래, 자식아. 네놈 꿍꿍이를 확인하고 싶어진다고.”
녀석의 얼굴이 더욱 음흉하게 변하였다.
“그럼, 가 볼래?”
그 단락에서 나는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고,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파르제의 회복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2분 18초…, 통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빨간 자국이 이마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통에서 내려와 아까 나를 안내했던 간호 로봇을 찾았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키가 큰 남자 간호 로봇들이 치료가 끝난 환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간을 봤다. 30초. 회복실의 덮개가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나는 남은 30초가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다 되었다. 이번에는 누가 내 어깨를 두드렸는지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얼른 자리를 비켜 주었고, 그가 파르제를 꺼낼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았다. 사람의 손처럼 보이던 손이 순간 부서지듯 흩어지더니 뾰족한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나는 그 광경에 입을 벌렸다. 마치 첫 흡연에서 황홀감을 느꼈던 때처럼 말이다. 그것들은 줄처럼 길게 뻗어 나와 통의 수많은 구멍으로 순차적으로 들어갔다. 찰카닥거리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빠르게 이어졌다. 그리고 가지들은 순식간에 원래의 손 모양으로 돌아와, 툭 하고 떨어진 호흡기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이제 파르제가 눈을 뜨기만 하면 된다. 나는 숨죽여 파르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상하리만치 눈을 뜨지 않는 그녀에, 나는 조급함이 몰려왔다.
“여기!”
나는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남자 로봇을 불렀다. 그는 나에게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네, 엘렌 님.”
“파르제가 눈을 뜨지 않아.”
“아, 걱정하지 마세요. 보통 현실로 돌아오는 데까지 1분 정도가 걸리니까요.”
그리고 그는 나의 말을 듣지도 않고, 가던 길로 걸음을 내밟았다. 나는 다시 파르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멈춘 타이머가 눈을 뜨는 시간까지 나타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괜한 심술도 부려 봤다. 타이머를 때려 보기도 하고, 내 얼굴에 호흡기를 덮어씌워 힘차게 소리도 질렀다. 그렇게 8살의 투정 부리기를 마치고 나니, 파르제의 눈이 뜨였다.
“엘렌 님?”
몸을 일으킨 파르제가 환자복을 여미며 말했다.
“파르제!”
그리고 나는 한 번 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껑충 뛰어올랐다.
“파르제!! 이제 괜찮은 거야? 감기는 왜, 어쩌다가, 우리 아버지한테 말할까? 일하지 않게 해달라고?”
“그건 절대 안 돼요.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그것도 이곳에서!”
양팔을 벌린 파르제는 통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통에 걸터앉으라는 듯 빈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말을 이어 했다.
“몸은 정말 괜찮은 거야?”
“네, 말짱해요!”
“다행이다.”
“저 때문에 이곳까지 내려오신 거예요?”
“응! 오는 길에 가더 아저씨들도 만났어. 뭔가 이렇게 저렇게 커다란 몸집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무서웠어.”
내 말을 들은 파르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해맑고도, 경쾌한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 너무 크게 웃은 것 같아요. 병실에선 조용히 있는 게 예의인데.”
그에 나는 말했다.
“그럼, 나가자.”
파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잠시 기다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앞서 내가 말을 걸었던 남자 로봇에게로 가, 무어라 말한 뒤, 그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구석진 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제법 눈치가 있는 편이기에 제자리에서 발을 굴리기보다 입구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곧이어 단정하게 옷을 갈아입은 파르제가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 흰색 모자에 흰색 와이셔츠, 그리고 붉은 앞치마.
“출근하려고?”
“아니요. 이 복장으로 쓰러졌거든요.”
“아침에?”
파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글쎄요. 회복이 끝났으니 다시 일을 하러 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무리하는 거 아니야?”
“이 나이 아니면 언제 무리를 해보겠어요. 젊을 때 바짝 일해야죠!”
파르제의 말에 나는 그녀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럼요. 모두가 일을 해요. 제 동생도 일을 하는걸요.”
“그렇구나.”
그리고 나는 물었다.
“파르제, 나는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엘렌 님이요?”
“응.”
“어려운 질문이네요.”
“왜?”
“로한 폐하의 아들이시잖아요.”
“우리 아버지? 아니야. 아버지는 그 정도로 막히지 않으셨어. 오히려 내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좋아하실걸?”
내 말에 파르제는 손사래 쳤다.
“아뇨,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음…”
파르제가 저런 몸짓을 보이는 영문을 모르겠다. 모두가 일을 하고, 나 또한 그렇게 한다는데.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으음. 그런 이야기는 아니에요.”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파르제의 이름을 불렀다.
“파르제.”
“네.”
“방금 뭔가 엄청난 대화가 오간 것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