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영강 Nov 02. 2024

수석과학자

타닥타닥 자판 두드리는 소리. 삐걱대는 의자와, 그에 어울리지 않게 번져 나가는 클래식. 작업실의 구석에는 몸을 겨우 눕힐 만한 침대 한 구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는 두꺼운 서적들이 보인다. 남자의 이름은 세스석 달은 넘게 손질하지 않은 듯한 더벅머리에는 흰머리가 절반을 이루고 있다. 그의 직업은 과학자. 명확하게는 왕실 내의 수석과학자이다. 나이가 오십 중반이지만, 그는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 성격의 문제가 제일 컸다. 항상 자기주장만을 옳다고 여기며, 남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직관과 집념을 향한 고집이 드셌다. 그런 그가 고귀한 왕실에 속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실력이다. 무슨 실력을 얼마나 갖추어 있기에 로한의 곁에 있을 수 있나, 라는 의문이 든다면 앞으로 나올 그의 결과물들을 보면 된다. 때마침 세스가 몸을 일으켰다. 헐렁한 슬리퍼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색 가운. 삐쩍 마른 몸이 삐죽한 주걱턱에 가려 나름의 상쇄 효과를 냈다. 터벅터벅. 그리고 왼손으로 젖힌 미닫이의 길게 내뿜는 소리에 세스의 앞머리가 갈대처럼 휘날렸다. 실험실은 스산했다. 흰색 알전구가 끊임없이 깜빡거렸고, 빛이 들어올 때마다 보이는 어두운 청록의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만큼 사방에서 서성거렸다. 세스는 그런 실험실의 한가운데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들어갔다. 마스크가 씌어 있는 탓에 그의 중얼거림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분위기에 적응될 시점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의 근원지인 커다란 유리관은 세스가 서 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얼핏 세어도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세스는 다시 슬리퍼를 끌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붉은 조명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니.”


붉은 조명 아래로 거꾸로 뒤집힌 태아가 보였다. 생식기를 보아, 남자였다. 그리고 세스는 유리관에 안경이 거의 닿다시피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네가 태어나기 싫은 건 알겠는데, …창작자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그러지 마.”


세스는 왼손에 찬 시계를 눌러 홀로그램을 띄웠다. 넘버가 가득한 가운데, 붉은 유리관의 넘버가 느낌표와 함께 깜박거렸다. 그리고 몇 번을 다시 누르자, 가득 차 있던 물이 천천히 빠지며 유리관이 바닥 아래로 내려갔다.


“…긴장하지 마. …천천히 풀어줄 테니까.”


세스는 자신이 말한 대로 느리게 손을 뻗었다. 실제 살색과 같은 인공 탯줄이 태아의 목에 감겨 있었다. 세스는 아직 단단하지 않은 태아의 팔을 조심스레 뒤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태아의 목에 감긴 인공 탯줄을 섬세한 손놀림으로 풀어냈다. 그러한 찰나에 태아가 표정을 찡그렸는데, 세스는 녀석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안 돼. …너는 훌륭한 가더가 될 사내야.”


“…비록 내가 여린 마음을 소량 주입해 놓았다지만, 울음소리를 내기도 전에 이러면 곤란하다고.”


그리고 세스는 태아에게서 걸음을 물렸다. 유리관이 다시 위로 올라왔고, 따뜻한 물이 다시 태아의 몸을 품었다. 세스는 홀로그램을 집어넣고, 가운에서 볼펜을 빼내 목소리를 녹음했다.


“…여린 마음은 소량이라도 주입하게 되면 무의식의 반감에 의하여 태아 스스로 목을 감는다. 다시 한번 목을 감는다면 분노를 동일하게 집어넣을 것이며, 투약 이후에도 같은 반응을 보일 시 안전을 위해 폐기한다.”


그렇다. 세스는 감정을 제조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어느 이야기에 나오는 연금술사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런 세스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은 생명체의 수명이었다.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수명이, 이제 한 인간의 손으로써 조율되는 데까지 떨어진 것이다.


“세스님, 폐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천장에서 울린 여자 로봇 목소리였다.


“…내가 말했지. …폐하께서 오시면 묻지 말고 문부터 열라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1급 기밀 구역이라 반영이 어렵습니다.”


“…문은?”


“아, 지금 열겠습니다.”


세스는 크게 한숨 쉬었다. 그리곤 익숙하다는 듯이 마스크를 벗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작업실로 돌아온 세스는 미닫이를 닫은 뒤, 신발을 갈아신었다. 또한,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목에 낀 가래를 삼켰고, 쟁반과 어울리는 고급진 잔에 물을 따라 양손으로 쥐고서 로한의 인기척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세스는 고개를 숙였다. 가더는 없었다. 로한 홀몸이었다.


“…한 시간 안으로 고쳐 놓겠습니다.”


세스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됐네. 난 이제 이쪽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져. 참으로 잘 만든 AI이군.”


“…무례를 용서하시길.”


“아니라니까.”


그리고 로한은 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다시 세스의 쟁반 위에 올려놓았다. 세스는 그를 책상 옆으로 치웠다.


“잘되고 있나?”


로한이 미닫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군.”


“…그러나 나쁜 소식도 함께 있습니다.”


“뭔가?”


“…일전에 말씀드렸던 감정 주입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말해 보게.”


로한은 뒤돌아 세스의 눈을 바라봤다.


“…특정한 감정을 주입하면, 태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듭니다. …극히 낮은 확률이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자살을 하려 한단 말인가?”


“…예, 폐하.”


“이유는?”


세스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정의 종류는 상관없나?”


“…그 역시 밝혀진 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주 잠시 침통한 표정을 짓던 로한은 이내 심각한 얼굴로 세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아들에게 넣은 총명함엔 부작용이 없겠지?”


“…지능은 감정과는 결이 다른 사안이므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한은 크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일순 움직거렸는데, 아마도 ‘확실한가.’와 같은 되물음이었을 것이다.


“보여 주게.”


로한이 세스의 어깨에 있던 손을 내리며 말했다.


“…외람됩니다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목숨을 끊으려던 아이, 그 아이를 봐야겠네.”


“…이미 손을 써 놓았습니다.”


“괜찮아. 녀석의 얼굴만 보면 돼.”


눈치가 빠른 세스는 더 이상 토 달지 않았다. 시계의 홀로그램이 떠올랐고, 세스의 삐뚤빼뚤한 손가락이 그 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보안 해제해.”


세스의 말에 로봇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해제합니다.”


세스는 왼손을 내밀어 로한을 인도했다. 로한은 눈을 한 번 아래로 내렸다가 올리며 근엄한 얼굴로 세스가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세스의 손이 미닫이에 얹혔다. 흰색에 둘러싸여 경계심이 들지 않던 붉은 유리관이 로한의 코앞에 등장했다. 세스가 장소를 이동시킨 것이다. 로한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입을 열었다.


“34번이군.”


“…예, 폐하를 걷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전으로 돌린 건가.”


“…그렇습니다.”


로한은 실험실에 들어섰다. 붉은빛 아래로 로한의 옷이 넓게 물들었다.


“이건 특이하군.”


로한이 손가락으로 유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지능을 넣었나?”


“…아닙니다.”


“지능을 넣지 않았음에도 목숨을 끊을 줄 안다…, 이건 마치 인생을 여러 번 살아 본 것 같은 모습이군.”


그리고 로한은 유리관 너머로 세스를 흘기며 물었다.


“감정의 종류는?”


“…여린 마음입니다.”


“가더가 될 자들에게 여린 마음이 필요한가?”


“…말단의 인원을 채우려면 덜떨어지는 인간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하였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철회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아니야. 좋은 발상인 것 같군. 나쁘지 않아.”


로한은 손톱으로 유리를 두드렸다. 탯줄에 감긴 목부터 시작해, 실제로 힘이 풀린 듯 보이는 발끝까지.


“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 않아. 자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야.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밝혀진 게 없는 걸 보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가설이 옳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살아 있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 뒤는 관심이 가지 않아. 무엇이 있고, 또, 무엇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말이야.”


그리고 로한은 들고 있던 오른팔을 내려 허리에 붙이고 있던 왼손 위에 포개었다.


“자네는 어떠한가.”


로한은 물었다.


“…실례지만, 무엇을.”


“생명 연장 말이네.”


세스는 조금의 뜸 들임 없이 대답했다.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서도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은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진화이지요.”


“자네의 공이 커. 내 대에서 자네 같은 인재를 만난 건 가히 축복이겠지.”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폐하. …이런 실험을 허가해 주셔서.”


로한은 기품 있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실험실에서 걸어 나왔다. 세스의 손가락이 로한의 뒤에서 또 한 번 빠르게 움직거렸다. 미닫이가 닫히며 붉은 조명이 서서히 걷혀 갔다. 로한은 말했다.


“건투를 빌지.”


세스는 로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조아렸다.

이전 04화 시티의 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