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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Nov 09. 2024

엿들음

누군가의 말을 엿듣는 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누군가의 혼잣말을 엿듣는 건 그 사람의 치부를 잡을 기회가 될 수 있다. 아무튼, 엿듣는다는 행위는 들키지만 않는다면 잃을 게 없다. 지금 로한과 겸상을 하고 있는 말단 가더가 그러하다.


“엘렌 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폐하.”


로한은 나이프를 든 손으로 말을 이으라 손짓했다.


“제가 본 것과 들은 것에 있어, 아무런 거짓이 없음을 맹세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조용한 날이었습니다. 이렇다 할 소동도 없고, 처리할 일을 미뤄도 되는, 얌전한 그런 날. 저는 폐하의 순방을 준비하던 차에 우연히 동료들과 떨어지게 되어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폐하께서 머무시는 층에 올랐습니다. 감히 발을 내디딜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 짧은 순간만, 그 순간만을 눈에 담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상치도 못한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복도에 쓰러져 계셨던 엘렌 님이 그 이유입니다. 저는 A구역에 머무는 모두와 마찬가지로 꿈을 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고 계시는 듯 보이는 엘렌 님을 뵈러, 또한, 차가운 복도에 있는 왕자님을 침실로 부축하기 위한 마음으로 감히 더러운 발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뜨렸습니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엘렌 님의 목소리였습니다. ‘F구역으로 가야 한다고? 내가 왜 F구역에 가야 해?’와 같은 말들이었습니다.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 보였고,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저는 가까이 다가가 엘렌 님을 지켜보았습니다. 두꺼운 가죽신의 투박한 발소리에도 엘렌 님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가정부의 그림자가 저 앞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기에 저는 황급히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말단 가더는 말을 마쳤다.


“여기까지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로한이 말했다.


“말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일단 들게.”


“예, 폐하.”


로한은 가더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가 집어 든 육즙이 흐르는 고기부터 포크를 타고 장갑까지 다다르는 기름까지. 그리고 장갑에 맺힌 기름방울이 접시로 떨어지는 순간, 로한은 작은 리볼버를 꺼내어 그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청소부 불러.”


“청소부를 부릅니다.”


AI의 목소리가 울린 지 3초가 채 지나지 않아 가더를 포함한 검은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로한의 방으로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청소부는 둘이었고, 가더는 다섯이었다. 검은 복장을 한 가더는 곧장 총을 빼내어 로한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가더 넷은 입구를 지켰고, 청소부 둘은 말없이 청소를 시작했다.


“폐하!!”


검은 복장의 가더가 외쳤다.


“일 없네.”


그에 가더는 의자 뒤로 목이 꺾여 있는 자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저 쥐좆만 한 새끼가.”


“어허, 일 없대도.”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로한은 약간의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대답했다.


“…뭐, 단지 말버릇이 조금 나빴달까. 그리고 심문은 할 필요 없어. 저자의 가족을 건드리지도 마. 명령일세.”


검은 복장의 가더는 고개를 힘껏 숙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청소부들의 작업은 그야말로 일개미들과 같았는데,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비즈니스맨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주 날카로운 보석을 다듬는 세공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는 남는 것이 없었다. 시체와 피, 그리고, 더럽혀진 음식들, 그 모두 시간을 되돌린 듯이 사라졌다.


“다 나가. 그리고 상 내려.”


로한은 말했다. 정적은 이내 찾아왔다. 생각하기 알맞은 침묵이었다. 로한은 아무 소리 없이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겸상을 권하는 순간부터 이미 수백의 경우의 수를 따진 로한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침묵과 명상은 고민이 아닌 선택이었다. 세스를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가, 하는 선택. 그의 처분에는 많은 감수가 필요하다. 이유는 당연히 엘렌이다. 엘렌의 치료. 그러기 위해선 로한은 말단 가더로부터 들은 사실을 세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그럼, 그 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스가 겁을 먹고 도망이라도 친다면, 혹은 그 자리에서 자살이라도 한다면.


“흠.”


눈을 감은 로한은 얼굴을 찡그러뜨렸다.


“엘렌 방에 감시카메라 설치해.”


AI가 되물었다.


“몇 대를 설치할까요?”


“사각지대 하나 없이 모조리. 최대한 티가 나지 않아야 해. 그리고, 한 시간마다 내 쪽으로 파일 보내. 네가 먼저 봐도 좋아. 특이점이 있다면 곧장 수신기로 말하고.”


“세스 쪽은 어떻게 할까요?”


“세스는 내가 알아서 하지.”


“알겠습니다.”


“…저.”


“말해.”


“조명을 좀 밝혀 드릴까요?”


“왜, 내가 어두워 보이나?”


“스트레스 지수가 평소의 3배로 뛰어 있습니다.”


“수면제면 돼.”


“그럼, 침실을 따뜻하게 데워놓겠습니다.”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총소리를 들은 주방에서는 조용한 수다가 이어지고 있었다. 파르제를 필두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멈추세요. 치우는 건 나중에 하도록 해요.”


수석 쉐프의 말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파르제가 천장을 쳐다보자, 다들 고개를 들어 올렸다. 파르제는 키가 작고, 몸이 호리호리한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그의 옆에 발판으로 삼기 알맞은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남자는 얼음 조각처럼 얼어 있었는데, 손 하나만은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움직여도 됩니까, 쉐프?”


그가 말했다. 그 말에 파르제는 아랫입술을 깨물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 냈다.


“물론이에요. 거기 옆에 있는 의자 좀 가져다주세요.”


파르제는 자신의 키만 한 의자를 선반에 올려 거꾸로 매달린 그릇과 촛대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슬그머니 귀를 대어 로한의 방을 엿들었다.


“어?”


목소리를 내었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파르제는 실수했다.


“어어?”


이어서 요리사들의 입이 벌어졌다. 파르제의 얼굴이 식탁에 찰싹 붙은 것이다. 파르제는 귓가를 파고드는 기묘한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져, 양손을 붙였다. 이젠 손까지 달라붙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 요리사 한 명이 눈치를 보더니 파르제의 다리 아래 의자를 툭 하고 밀었다. 공중에 매달린 파르제는 마치 꼬치에 꿴 바비큐 같았다. 발버둥을 칠수록 동서남북으로 몸이 흔들렸고, 파르제는 이내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여러분! 저 좀 내려 주세요! 토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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