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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Oct 14. 2023

인생작가 발견, 미리보기를 위한 꿀책

피츠제럴드 외, <사랑의 책>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랑도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는다.

-220p, '현명한 선택'(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난 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주제로 다수의 작가들이 참여한 <빛 혹은 그림자>를 읽었고, 모종의 사연이 생겨 그림만 남은 표지에 해당하는 '독자발' 단편을 쓰게 됐다. 아주 짧은 그 단편은 아주 오랜만에 창작의 기쁨을 느끼게 했고, 그 단편을 프롤로그로 삼아 장편을 쓰게 했다. 약 2만 5천자를 쓰다 말고(휴재중) 잠시 다른 기획을 재편했지만 더위가 물러가고 창작욕이 넘치면서 두 번째 중단편(브런치)을 9월에 완성하고 세 번째 중단편(연재중)을 쓰고 있다. 여기서 첫 번째는 호퍼로 쓴 프롤로그가 아니라 2006년에 완성한 중단편을 의미한다. 수기로 작성한 초고가 전부인 줄 알았던 그 소설은 알고보니 메일함에 갇혀있었다. (뷰어없음)


앤솔로지의 창작뽐뿌는 익히 알고 있기에 휴재중인 <레베카 스톤>의 영감을 위해서 <사랑의 책>을 구입했는데 순서가 뒤집히고, 이 책은 <구슬>의 연료가 됐다. 그보다도 앤솔로지를 통해 찍먹한 작가에게 입덕하고자 했던 내 의도는 완전 성공했다. 우선 영어로만 읽었던 피츠제럴드 정주행을 결심했고 이어서 SF 갓파더인 허버트 조지 웰스에게 제대로 빠져들었다. 산책덕후라고 자랑하기가 무섭게 본문에 유의어가 등장해주는 센스라니. 그보다도 웰스의 수록작 자체가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구석구석 취향을 저격한 작품이었다. 여행 좀 해보신 분!


​윌리엄 포크너, 그레이엄 그린 등 소름돋게 쟁쟁한 작가들이 계속해서 시선 강탈을 했다. 스릴러가 로맨스의 사촌이라더니, 이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스릴러가 로맨스의 자매임을 알게 된다. 스릴러 드라마를 수천시간 감상한 망막의 자동완성으로 스릴러의 첫 암시를 알아버리는 안타까움이 있을지라도 작가들의 쫀쫀한 문장을 따라가며 추리를 확인하는 재미가 컸다.


단편이라서 더 강렬하기도 하고, 더 시적인 문장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앤솔로지였기에 각각의 작가에게 몰입하고 이동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어제는 집중을 못했고, 졸려서 울면서 읽었지만 핵심 영감을 놓치지 않고 독서 중 (심지어 폰으로) 집필까지 했다. 웰스 이후로는 고속 정주행을 했다.



무도회장을 찾는 여자들은 이 미혼남들이 절대 결혼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미 흑맥주와 위스키와 게으름 그리고 산속 어딘가에 살고 있는 세 명의 늙은 어머니와 결혼한 상태였다. 팔이 긴 남자 역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빼고 나면 이들 세 명과 다를 것이 없었다.

-143p, 로맨스 무도장(윌리엄 트레버)


평원은 정원이 되었다. 란초 데 라스 솜브라스는 빛의 목장이 되었다.

-186p, 목장의 보피프 부인(오 헨리)


그녀는 나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과거는 이미 황량한 지역이었으며, 그곳에서 그녀는 몬테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사랑이나 우정 따위는 기억하지 않았다. -234p, 파울리나를 기리며(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제가 만나 본 사람 중에 가장 열정적인 산책 애호가지요." 청년이 대답했다. 윈첼시 양은 그 대답이 재밌기는 했지만 조금 불충분하게 느껴졌다.

-286p, 윈첼시 양의 사랑(허버트 조지 웰스)


"조심하거라. 하잘것없는 필멸자와 결혼해서 네 마법의 힘을 전부 잃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조심하거라. 그런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

-333p, 4월의 마녀(레이 브래드버리)


그들에게 과거란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길이 아니라 결코 겨울이 찾아오지 않는 거대한 초원이었고, 그 초원과 현재를 구분하는 것은 최근 10년이라는 좁은 병목이었다. -357p,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윌리엄 포크너)


우리의 눈에는 흘리지 못한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여러분도 알 것이다. -390p, 사랑을 하면 착해져요(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연인들은 그 순간을 뒤로 미루기 힘들지만, 결혼한 사람들은 미룰 수 있었다.

-415p, 영구 소유(그레이엄 그린)




​이 작가 더 읽고 싶다! 이런 기분 좋아하신다면 + 적당히 스릴스릴한 로맨스릴러 덕후라면 <사랑의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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