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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Sep 13. 2024

9. 구글 그리고 아날로그

제한시간은 필요합니다.

타임타이머.

아주 단순한 물건이다.



구글에서 시간관리를 위해 쓰기 시작한 도구.

시간을 설정하면 그만큼의 영역이 색을 가지고 있어-가장 유명한 건 빨간색-남은 시간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나한테 정해진 시간..그러니까 무형자산인 시간이 어떠한 질량을 가지고 있다고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집중력에 효과적이다.


여기까진 대외적으로 나와있는 설명을 참고해서 다시 써본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유에도 불구, 정말 단순해서 (타이머를 돌리고 타이머가 끝나면 알림이 울린다. 단순 스톱워치와 달리 시간영역이 색으로 보인다) 그 단순한 도구에 어울리지 않는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었다.

구글에서 썼다고는 하지만, 스톱워치의 떨어지는 숫자가 색을 가진 면이 되었을 뿐인데.

정말 그걸로 뭔가가 바뀌나?


하지만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고,

나는 결국 집에 구글용 '타임타이머' 하나를 고이 입양하게 된다.

타임타이머를 쓴 지도 1년은 훌쩍 넘은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거 하나다


'타임타이머는 집중력에 '아주' 효과적이다'


('작가님들은 꼭 타임타이머를 구비하시라'

'공부하는 직장인도 추천')


이전까지 나는 글을 쓸 때, '분량'에 포커스를 맞췄다.

오늘은 몇 자를 쓰겠다. 이만큼을 쓰겠다. 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명확한 조건이 있어도 어떤 날의 두세 줄을 쓰기도 하고, 어느 날은 몇 장씩 쓰기도 했다.

집중력이란 건 그때그때 다르고, 낮에는 일을 해야 했으니 쓸 수 있는 시간도 무척 제한적이었다.

특히 낮의 일이 고되고 힘든 날은 집에 오면 글이고 뭐고 드러눕고 싶은 날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 미루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는 데에는 예열시간이 필요해진다.

아주 조금이라도 하던 것이라면 관습적으로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유명 자기 계발서( 이와 비슷한 것도 많다! )를 읽어본다면 더 와닿을 것이다.


처음엔 그 힘을 믿어서 딱 한 줄만 쓰자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감사히 여기고, 아무리 못해도 한 줄만 쓰자고 다짐했다.

작가가 되겠다면서 겨우 이 정도의 목표냐는 생각이 내 안에서 솟구쳤다. 하지만 퇴근하고 2~3시간씩 글을 쓸 생각을 하는 건 생각만으로도 버거웠다.

뭐든 큰 일을 해내려면, 미쳐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미치지 못한 건가.. 우울한 마음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한 줄 쓰기는 내 인생을 바꿨다.

1년 365일 매일 글을 썼다. 제법 많이 쓰는 날도, 정말 한 줄만 쓰는 날도 있었다.

왕창 써놓고 다음날 다 지우는 날도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최소단위 '한 줄'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언제였을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고 느낀 게.

하루 단 한 줄만 쓰면 나는 성공한 거다.

시작과 습관을 들이기에 이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실제로 효과도 보았다.

하지만 그건 점진적인 성장을 위한 출발점이어야 했다.

거의 1년 가까이 그 규칙만 지켰던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렇게만 쓰면 안 된다고.

분량이든 시간이든 늘려야 한다고.

숫자로 기록하지 않았던 과거의 시간은 어스름히 남아 있었다.

뿌듯한 기억도, 우울했던 기억도 있었지만 1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성장했다는 구체적인 좌표는 없었다.


기록하자.

그리고 시간과 양을 동시에 늘려가자.


새로운 다짐을 하고 구입한 것이 바로 '타임타이머'였다.


*

'목표'란 내가 계획하여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고,

'계획'이란 목표로 가기 위한 나의 행동지침이다.

살을 뺄 거야! 는 목표지만 좋은 목표라 할 수 없다. 목표는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제대로 정하기로 했다.

하루 30분 이상 1,000자 이상 글을 쓴다.

누군가 보기엔 아주 작고 소소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을 만큼 단순한 계획에는 힘이 있다.

그리고 타임타이머는 그 과정에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자리에 앉아,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이게 중요하다. 생각을 하면 시작을 못한다..!!)

타이머를 돌린다. 다이얼을 돌리면 주황색 면이 생긴다. (보통 빨간색이 많은데, 나는 주황색을 쓴다) 손을 떼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면이 점점 줄어드는 동안 나는 그저 문장을 적어 넣기 시작한다.

때로는 감탄할 정도로 술술 써지기도, 때로는 한숨 나올 정도로 안 써지기도 한다.

정말 쓸 말이 없을 때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우헤헤헤헤'같은 망언도 써놓는다. 근데 또 그렇게 마구 쓰다 보면 뭐가 생각나기도 한다.

삐비빅. 삐비빅. 알림이 울린다. 30분이 다 지났다는 소리다. 언제 시간이 지난 거지? 처음에는 시간을 의식하면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물도 마신다.

다시 자리에 앉아 타이머를 돌린다. 두 번째 돌릴 때의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나는 타이머와 함께 글을 쓴다.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있다.

꾸준히 기록해 둔 숫자는 들쑥날쑥하며 결국엔 위로 나아가는 중이다. 아주 더딘 성장이다.

숫자에 연연하는 나지만.. 사람이 원래 그러지 않나.

숫자는 중요하다. 숫자에 매몰되면 안 되지만 내가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기에 이만큼 좋은 것도 없다.


뭔가를 쓰고 싶은데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나는 '타임타이머'를 적극 추천한다.

5분이든 10분이든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다이얼을 돌리고, 일단 백지 위에 뭐라도 써보시길.

그러면 타이머의 알림이 울렸을 때 놀라운 풍경을 맞이할 것이다.


자, 오늘도 글을 쓰러 갑니다.


퇴근 후 소설가의 소설, <세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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