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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辯)

그림형제는 누구이며 왜 이런 글을 쓰는가

by 그림형제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독특한 사고 체계가 독자 여러분들을 솔솔한 재미를 느끼게 해 드렸던 것인지, 제 글을 읽은 분들이 재미있고 기발하다는 반응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그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저도 즐겁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읽어주시는 분들께서도 즐거우셨다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감사함을 담아 저에 대한 이야기와 제가 글을 쓰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첫 직장은 서울의 모 외국계은행이었고 마케팅과 기획 업무를 해왔습니다. 은행을 10년간 다니다가 어느 날 퇴사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퇴사하게 된 이야기는 되도록 자세히 쓰지는 않겠습니다. 워낙 퇴사 관련 글이 여기저기에 많으니 저까지 쓰는 것은 진부해질 것 같기도 해서입니다.

여하튼, 퇴사 일자를 불과 몇 주 앞두고 있을 시점, 나갈 때 나가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시장에 대한 몰이해로 직원들을 점점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던 외국계 경영진들을 향해 일침을 날리고 싶었습니다. 너무 직접적이지도 너무 완곡하지도 않게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사내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한국 시장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경영진들을 향해 우화의 형식을 빌어 비판의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그때 사용했던 필명이 바로 '그림형제'였습니다.





토끼 사냥



영국의 에릭은 내노라하는 모든 사냥 대회에서 우승을 할 만큼 훌륭한 전문 사냥꾼이다. 더 이상 영국과 유럽에서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한 에릭은 머나먼 동쪽의 작은 나라 한국으로 사냥 무대를 옮기기로 했다.

유럽의 사냥은 우선 말을 타고, 많은 수의 사냥개를 동원하여 사냥감을 추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에릭은 한국에 발을 내딛자마자 영국으로부터 말과 사냥개를 공수해 오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해오던 방식대로라면 한국에서도 분명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날렵한 스피드를 자랑하는 토로브레드 품종의 말과, 냄새 감지능력이 뛰어난 잉글리시 폭스하운드 사냥개를 들여왔다.

에릭은 이렇게 장비빨을 갖추고 작심한 듯 사냥에 나섰지만 첫날부터 애를 먹기 시작했다. 가파르지 않은 낮은 언덕 정도가 전부였던 유럽과 달리 한국은 온통 산이었다. 경사진 산과 언덕을 오르내리기에 말들은 애를 먹었다. 생각한 것과 다르게 돌아가자, 에릭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더 좋은 말과 더 많은 사냥개를 공수해 오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였다. 자신이 아는 사냥이란 그것뿐이었다.

마침내 큰 규모의 사냥대를 구성한 에릭은 의기양양하게 한국의 숲을 정복하기 위해 출정에 올랐다. 하지만, 역시 말과 사냥개들은 한국의 산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둥거렸고, 그러다 못해 뒤엉켜 넘어지기까지 했다. 에릭은 대열을 갖추라는 명령을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동네 아이들이 양손에 토끼를 잔뜩 잡아 들고 산비탈길을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얘들아, 너희들 그 토끼는 어떻게 잡았니?"


"그냥 손으로 잡았는데요."


아이들이 맨손으로 토끼를 잡았다는 대답을 듣고 에릭은 충격에 휩싸였다.


'맨 손으로 잡았다고? 잽싸고 날쌘 토끼를 어떻게 맨 손으로 잡았다는 거야? 이건 말이 안 돼. 사냥개와 말도 없이는 토끼를 쫓을 수도 없다고!!!'


에릭이 속으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찰나에 한 손으로 토끼 귀를 쥐어잡은 한 소년이 말했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서 언덕을 오를 때는 빠르지만, 내려올 때는 짧은 앞다리 때문에 균형을 잃고 앞으로 굴러 떨어지거든요."


산비탈 위쪽과 아래쪽에 각 한 명씩 위치한 후, 위쪽에 있는 소년이 토끼를 향해 거리를 좁혀가면 토끼는 산 아래 방향으로 뛰어 도망가려다 앞으로 고꾸라지게 된다. 그때 아래쪽의 소년이 굴러 내려오는 토끼를 쉽게 낚아채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산토끼를 잡는 방법을 에릭에게 알려준 소년들은 에릭의 사단 틈을 빠져나가 유유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에릭의 부하들은 꼬여버린 사냥개 목줄을 잡고 여전히 허둥거리고 있었고, 에릭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사냥으로 이름 좀 날리더니 오만해진 에릭은 한국을 만만하게 본 것입니다. 세계에서 널리 알려진 유명 은행이더라도 한국의 사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방식만 고집했다가는 큰코다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글이었습니다. 게시판의 글은 삽시간에 많은 직원들의 입소문을 탔고 폭발적으로 조회 수가 올라갔습니다. 공감하는 직원들이 하나 둘 모여 급기야는 하나의 물결처럼 움직임을 만들어냈습니다. 결국 경영진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개진을 하게 되는 기폭제로 작용된 셈이었지요. 학창 시절 글짓기 상을 받은 적은 몇 번인가 있었지만, 글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기에 그때의 경험은 저에게 아주 강력하게 남아있습니다.


은행을 떠난 후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했었고, 여러 금융 회사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속엔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생각들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쓰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평소 생각했었던 엉뚱하고 쓸모없는 공상들이 좋은 글감이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토끼사냥 글을 쓴 지 10년이 되어가는 해, 그때와는 달라졌지만, 공감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때 그 이름을 조심스레 꺼내게 되었습니다.







이거슨 에세이인가 리포트인가



평소에 엉뚱한 생각이 많은 저는 글로 이것을 어떻게 옮길까 고민했습니다. 너무 학구적이면 지루하고, 그렇다고 에피소드 위주의 재미만 추구하는 건 너무 가벼운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그 두 가지를 다 섞기로 했습니다. 주제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서사한 후에 해결하려고 하는 궁금증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말이지요. 제가 평소부터 갖고 있던 궁금증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무더기의 역설

여기 한 무더기의 토마토가 있습니다. 이 중에 한 알을 빼도 토마토 한 무더기일 것입니다. 즉, 무더기에서 하나를 빼도 여전히 무더기이지요. 그런데, 무더기에서 하나를 빼는 것을 계속 반복한다면 마지막엔 토마토가 하나만 남게 됩니다. 분명히 무더기에서 하나를 빼도 여전히 무더기였는데, 무더기에서 하나를 뺐더니 무더기라고 말하기 애매해졌습니다. 토마토 한 알도 '무더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Rodion Kutsaiev from Unsplash


이것이 바로 '무더기의 역설'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토마토 하나 씩 덜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무더기'로 부르기 애매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토마토가 모여있어야 '무더기'로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는 이렇게 경계가 모호한 개념이 수도 없이 많지만, 굳이 해결하지 않더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들도 많습니다.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것들은 우리 사회가 기준을 만들고 약속으로 정해 두기도 했으니까요. 반면에, 굳이 기준이 있어야 할지 의문이 드는 아래와 같은 질문들에 저는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의 논리와 방법을 동원해서 해결해보기로 했습니다.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부터 '잘한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를 술에 '취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웃겨서 웃은 것과 어이없어서 웃은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을 굳이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문제를 깊게 파보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떤 통계든 평균의 근처에 분포하는 값이 가장 많게 마련입니다. 그렇더라도 분포의 양 극단에 해당하는 값들이 무의미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으니까요.






분류학

생물 교과서에서 본 '종속과목강문계'를 기억하시나요? 다양한 생물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단위입니다.

출처 : 네이버 어린이백과

인간을 이 분류체계에 따라 표기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종 < 사람속 < 사람과 < 영장목 < 포유강 < 척삭동물문 < 동물계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에 의해 체계화되고 정의된 분류법이 제시된 이래 오늘날까지 국제 학술적으로도 통일된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나름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생물을 분류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분류 기준조차 인간의 주관에 불과합니다. 즉, 인간의 편의에 의해 인간이 자의적으로 구분한 것일 뿐입니다.


데이터를 분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인과관계를 데이터를 활용하여 설명하려고 한다면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여야 할지를 먼저 분류하는 작업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이런 데이터의 분류는 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굉장히 많이 활용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MBTI 같은 성격 유형검사입니다. 상황별로 사람들이 행동하고 반응하는 데이터를 가지고 귀납적 인과관계가 형성되는 것들을 분류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 주변에는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제가 글로 다루었던 것들 중에 분류학의 개념을 사용한 것들이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의해 글로 다루어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라면을 먹는 방식과 취향을 어떻게 분류할까?

냄새와 소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방귀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서울 사람과 서울 사람이 아닌 사람은 어떻게 구분하고 분류할 수 있을까?







픽션 양념을 섞어 보았다



조금 지나니 주제와 연관된 에피소드가 매번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에피소드와 주제 선정에 애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에피소드에 주제를 끼워 맞추는 것만은 하고 싶지 않아서 과감하게 픽션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예능 세계관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을 보면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세계관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스토리는 흥미와 몰입감을 높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만들어낸 픽션의 세상 속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K 피디는 겉으로는 평범한 방송국 예능 PD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비밀 음모조직의 일원이며, 시청자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일삼은 인물입니다. 아래의 세 편의 글에 K 피디가 모두 등장합니다.


극단적 여행 서바이벌

예능의 가스라이팅

메뉴 선택은 생존이다


그리고, K 피디가 속한 비밀 음모조직 '킬루미나티'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일상평화수호위원회(CPDP)'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핵사이다 빌런 퇴치 열전


(위) 영화 '007 스펙터' 중 / (아래) 애니메이션 '원펀맨' 중


이런 대결구도와 세계관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등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묘사하였습니다. 역시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고 했던가요.







데이터 시각화

픽션으로 운을 뗀 글의 흐름을 다시 학구적인 내용으로 가져오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우뇌가 말랑말랑 해지는 스토리를 읽다가 갑자기 좌뇌를 가동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데이터 시각화입니다. 회사에서 매일같이 사용하는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활용해서 데이터를 정리합니다. 되도록이면 시작적으로도 보기 좋게 차트와 다이어그램을 활용합니다.


대표적으로 아래의 글들은 이런 데이터 시각화, 목록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격 '납량특집' 액션

닭을 처형할 명분

시부모/처부모 능력 시험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자료 조사와 이미지를 검색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시각화하는 단계를 매번 거치기 때문에 해당 자료들은 이렇게 회차별 글 주제별로 폴더를 구분하여 저장해 둡니다. 나중에 혹시라도 수정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노트북에 저장된 글 주제별 폴더


폴더 안을 살펴보면 다양한 파일들과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아래는 닭요리 주제로 글을 쓸 때 생성된 파일들을 모아둔 폴더 안입니다. 닭요리 글을 쓸 때는 정말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료 조사를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5_닭' 폴더 안 파일들


저 파일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느냐 하면, 먼저 인터넷에서 닭요리를 검색해서 나온 결과를 txt파일에 옮깁니다. 그다음 필요한 표 작업 등을 위해 엑셀에서 작업을 하고 표를 이미지(png)로 저장합니다. 각종 픽토그램과 이미지를 이용해서 파워포인트로 작업한 후 마찬가지로 이미지(png)로 저장합니다. 글 주제와 어울리는 노래를 한 곡씩 소개하는 것도 글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으므로 직접 링크를 피하기 위해 QR코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



1,000만 관객 흥행 영화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 영화를 봐도 재밌다고 느낄까요?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에 한참을 줄을 서 기다린 후에 먹은 음식은 언제나 틀림없이 맛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남들도 그렇다고 느끼니까. 하지만 저는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왜 남들이 앞서 내린 결론에 의해 내 생각이 좌우되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유독 인심이 박한 느낌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것으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유독 집단 내에서 동일한 정서를 공유함으로써 유대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합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동일한 정서와 사상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라고 저는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다른 관점에서 시작한 글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이미 정해 놓은 기준에 따라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상황이나 무언가에 기준이 없다면 자신만의 기준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재밌고 유익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저만의 글을 계속 써 나갈 생각입니다.



참고자료

- 브런치스토리 : [history] 먼 나라? 이웃나라? 분류학의 장단점 by 김도형

- 브런치스토리 : 데이터 시각화 차트? 그래프? 어떻게 그릴까요? by 뉴스젤리

- 브런치스토리 : 대기업 퇴사후 남은건, 엑셀과 파워포인트 by 아둥바둥 김대리

- 브런치스토리 : 보고서 페이지의 생사를 논하며 by nothing

- 브런치스토리 : 일 잘하고 싶으면 엑셀부터 배워라 by 김진회

- 나무위키 : 더미의 역설, 계통분류학

- 위키백과 : 분류학

- Hofstede Insights : Contry Comparison Tool "Korea, China, Japan, and United Stats"



Main Photo : the TV C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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