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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부름 지나 Dec 10. 2023

사랑은 부들부들한 단어지.

#5편. 예목 소암 서각가 김기대


::: inside this episode :::   

서각은 예술로 인정을 받지 못했어. 서예라는 건 계보가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서예가 할 수 없고, 서각이 할 수 있는 걸 하자, 생각했어. 꼬박 일 년이 걸린 거야.

추천해 줄 단어? 사랑. 사랑은 모든 게 통하는 단어야. 어떤 분야던 포용가능하지.


안녕하세요.


< 어떤 그릇에 당신을 담을까요? > 유지나입니다.




안국에서 거닐던 중, 한복 가게들 사이 목각 반지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담으니, 사장님이 작품을 하신다네요. 사장님 그럼 오늘 인터뷰도 가능하신가요? 그럼. 물론이지. 안될 거 있나.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가게 앞에 있는 반지보고 요즘 호기심을 갖지. 올해 티브이에 코쿤이랑 박나래도 끼는 게 나왔어.  나 혼자 산다에도 나왔거든.


친구랑 한번 놀러 와. 사이즈는 언제든지 바꿔줄게.


예목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67


 


 





- 사장님 그럼 언제부터 장사를 하셨던 거세요?


이 간판이 30년 된 거야. 간판이 이제는 다 썩었지. 원래 일자였는데. 보면 나무가 다 주저앉았어.

 내가 1990년에 가게를 열었어. 인사동에서 종로로 온 거야. 예전엔 스타벅스 인사점 -최초로 한글 간판을 쓴 곳 알지 - 내 가게는 그 맞은편이었어. 이사 온 지는 10년이 됐지.  여기는 세가 그 전 1/4 정도 되는 거 같아.   



- 안에 있는 글씨들은 직접 하신 거예요?


안에 있는 나무 서각들은 다 내가 직접 한 거야.

 '복' '화락' '댁일' '달' '매화' '소나무의 부엉이' 이런 거. 가정에 붙일 거면 가정이 화목하라는 뜻으로 복을 걸어두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화락을 추천해. 화하다 화(和)를 써서 같이 어우러진다는 의미가 좋지.  














- 인사동의 기억을 알려주세요.


1994년 서울에서 인사동을 뺄 수 없었지. 골동품점, 화랑, 필방, 고서적, 전통찻집…

 

늘 사람들이 발걸음을 늦추는 거리였어. 거리만 보면 사람이 저 끝에서 끝까지 내려가는데, 5분이면 갈 정돈데 30분이 넘게 걸릴 정도였으니 말이야.  


당시 인사동은 거리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가게가 보여주기 좋았나 봐. 방송사에서도 종종 오고 그랬어. 99년 인사동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왔었고. 아직 인사동엔 그때 방문한 가게들이 남아있을 거야.

이미지)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 그땐 어떤 고객들이 찾았나요?


가게를 열고 딱 10년이 전성기였어. 90년대는 한국사회가 대단히 큰 격변을 경험했던 시대였지.


알지. 한국 성장? 그 안에 경제개방으로 수입 물건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중국산 물건이 많이 들어왔어. 들어오면서 이런 것들이 의미를 많이 잃었지.

이제는 다 돌아가셨지만 그 시절에도 나이 든 분들이 좋아하셨지, 국회의원들이 선물할 때 서각을 부탁하곤 했어. 국회의장실도 그냥 불러주고, 가서 차 한잔도 마시고 나왔지. 한편, 거리에 노숙자도 참 많았던 생각이 나. 그들에 막걸리도 사주고 그랬었네.

 











일본에서도 초청 전으로 불러주고 그럴 때가 있었어. 글씨를 세 개를 합쳤던 서각은 내가 최초였지. 그런데, 내가 정보를 너무 많이 주나. 하하. 내가 그때 자료를 더 보여줄게.



-- 오 그 시절 신문이 그대로네요. 신기해요.

이건 어디예요.


야마가타에서 한국을 느낄 수 있는 고려관이지.






일본은 우리나라 '도'를 '현'이라고 불러. 97년에 지어졌어. 한국민속촌 같은 곳인데, 이 현판의 글씨도 내가 팠지. 한 가지 조건이 있어. 그냥 만든 걸 가져가는 건 안돼. 직접 일본 대사 앞에서 파는 걸 시연해야 했어.





그리고 이 사진은 '아리랑'을 시연하는 모습일 거야.

그 오른편에 있는 건, 이제 인사하고 들어가면서 전시하는 모습이지. 이때 고려관을 만들면서, 한국 문화인을 초청하면서, 나도 따라갔던 거야.


돌아와서 작품 활동을 했어. 한문은 상형 문자잖아. 쓸 때 모양만 따지진 않지, 그 단어가 가진 뜻풀이도 생각해. 그리고 처음 한 작품은 '천지인'이야.







첫 작품이에요?


정확하게는 창작이 처음이었지. 여기 가게 벽에 걸어놨잖아. 그때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두길 잘했지.  획을 살짝씩 굽혔지.  하늘과 땅이 살짝 오염이 되었거든. 또 천지인이 아니라, 천인지 순서로 썼고. 하늘땅 사이에 사람이 있잖아.


서각 위를 고정시키는 진한 갈색 부분 있지. 저기엔 홍익인간을 써놨어. 천지인과 홍익인간으로 우주와 인간세상을 담은 거야. 이걸 고민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어.


홍익인간은 사람 '인'이 아니라 들 '입'자로 썼어. 하늘에서 내려왔다. 왜?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려고.







2001년에 미술 신문이 있었어. 가격은 1000원이네.







와, 22년 전 신문이네요. 어떤 내용이에요


 동경 서각 3개, 초청 전에 간 거야. 내가 최초라는 게 증명이 되는 거지.



언제부터 전시를 하게 되신 거예요?


내 나이 40이 넘어서. 서각은 예술로 인정을 받지 못했어. 팔 때마다 다름에도 창작이 아니라는 거지.

한편, 서예라는 건 여러 계보가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서예가 할 수 없고, 서각이 할 수 있는 걸 하자, 생각했어. 그리고 꼬박 일 년이 걸린 거야.







만드는데 더 오래 걸린 작품들도 있나요?


그럼. 쓰는 양이 많았어. 쓰는 데까지도 오래 걸렸고. 기본도 다 채우고, 창작이 된 거지.


서각은 4-5년 그전부터 했었어. 팔만대장경 경판도 팠어. 이건 경기도립박물관 개관하면서, 외주를 준거야. 독립선언문 경판도. 이건 덕산식품 회장이 부탁을 했어. 제일교포 3세인데, 오사카에 재일동포 역사를 보여주겠다고 하셨거든. 유명할 거야. 당시에 3000만 원에 차 한 대를 받았어. 이것도 작업에 꼬박 일 년 걸렸지.






자부심을 가지고 서각 예술의 세계를 넓혀가고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은요.  


미국에서 보고 간 손님이 우리 가게에서 산 것들이라며 사진을 우편으로 보내준 사진이 있어.

난 사람들에게 그게 정말 그냥 만든 게 아니라, 진짜 예술을 하려던 사람이 만든 거라는 걸 이야기해 주고 싶어.


하지만 사기 전에는 말하진 않지. 작품이 좋고 난 다음이라는 거야. 그런 것들은.




사고 나면 뒤에 이야길 하지. 아무 데서나 만든 게 아니다. 그럼 더 소중할 테니까 말이야. 그지?







듣고 보니 정말 그래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글자를 좋아하세요?


中庸

갈수록 중용이 중요한 거 같아.

어느 곳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잖아. 딱 중립을 지키는 게 중용의 핵심이야.

가운데, 양쪽이 거의 똑같잖아. 이게 전서체라고 하는 걸 내가 더 굴려놨지.



최근에 손님이 사간 작품은요?


下心


하심. 자기를 낮추고 몸을 높인다는 뜻이야. 이 글씨는 소록도 수녀님 있지. 삽 십 년 동안 문둥이들 치료한 수녀님. 그분 돌아가시면서, 방송에서 그 집을 비추는 데, 글씨가 딱 중용이 쓰여있더라고. 글자를 쓰다 보니, 그런 게 눈에 잘 들어와. 불교용어에도 쓰는 단어고.










둘다 좋아요.

혹시 요즘 저같은 청년들에는 어떤 글자가 좋을까요.


사랑.

사랑은 모든 게 통하는 단어야. 어떤 분야던 포용가능하지. 참 부들부들해.


특히 나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대해 많이 썼어. 사실 아버지의 사랑보다도 어머니의 사랑이 유별나지. 품 안에 있을 때 탯줄로 연결된 하나의 세포거든.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뗄 수가 없어.

그 관계는 우주보다 큰 거야..  고귀한 사랑이지.

딸내미가 초등학교 때 학부모들 작품 전시에 내가 “스승과의 사랑” 그것도 썼는데, 참. 사진첩 어딘가에 있을 텐데, 안 보이네. 스승, 어머니, 누나의 사랑. 그래. 사랑은 가장 많이 쓴 것 중 하나지.














무형문화재 등록이 하나 필요 할 거 같은데요.

저도 사진 한 장 남겨드려도 될까요?


하하하. 그래도 좋지.

 요즘엔 잘 안 찍는데, 그래도 한 장 남겨줘 봐. 명함도 줄게.




아 명함에 있는 사진이

 아까 이 사진이었네요.


예전에도 한 학생이 찾아오더라고. 자기가 대학을 가는데,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대.


알겠다고 하니, 며칠을 와서 찍어가대. 내가 작업하는 동안 와서, 계속. 그러고 나서, 부산대 사진학과를 갔다고 잘 됐다고, 이걸 인화해 온 거야. 그 후론 못 봤지. 잘 지내겠지.




잘 지내고, 언제든지 찾아와.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라. 글씨도 찾아오면 또 알려줄게.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60



우연히 한복 가게 사이 발견한 가게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사장님은 서각 예술을 통해 30년 이상의 세월을 동안 다양헌 작품을 만들어오셨습니다. 그 분의 경험과 감동, 또한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야길 듣고 왔습니다.


중용, 사랑, 하심.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위 단어 속 생김새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을 까요?

사장님의 한문 설명 속에 뜻을 고민하고 그 뜻도 함께 전파하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어요.



92년도 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를 여러분도 가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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