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면, 저 재주를 훔치고 싶다.
'회색인간'을 읽을 당시 언뜻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자유로운 발상, 압축된 반전, 매력적인 시공간. 과작하는 테드창이 제게 월드 무비스타라면, 김동식은 언제든 몇번이든 볼 수 있는 대학로 배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현실에 있고 진행 중이며 가까운 느낌.
김동식이 쓴 창작론이라니, 당연히 관심이 쏠립니다. 읽을 책이 많았는데도 이거 먼저 읽었습니다. 마침 '문장의 일', '소설가의 일' 등 전통적 창작론도 근래 본 터라 더 흥미로왔습니다.
김동식, 2021
초단편 소설.
예전엔 콩트(conte), 또는 장편(掌篇) 소설 정도의 분량입니다. 하지만 김동식이 말하는 초단편은 외양은 유사하지만 확연히 결이 다릅니다. 암묵적인 프로토콜이 있기 때문입니다.
웹이라는 미디어를 기본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돈 받고 글 파는게 아니다.
독자의 주목과 시간이 대가이니, 확실하게 흡입력과 반전을 둬야한다.
따라서 반전의 강도와 강박은 예전 콩트보다 매우 높고, 문학의 본질에 구애받기 보단 효율에 몰두합니다. 각 이야기는 직진성이 매우 강하고, 작가는 다작을 전제로 합니다.
실은 이쪽에는 과문해서, 이게 초단편 웹소설의 전반적 경향인지, 무학의 공원으로 틈틈히 내공을 연마해 일가를 이룬, 김동식 류인지는 제가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원칙들은 명료해서 좋았습니다.
캐릭터에 공들이지 마라. 전형성에 기대도 된다. 초단편은 사건과 반전이다.
대사를 활용하라. 짧은 글에 입체감을 주는 한편, 독자의 상상력을 끌어오니 효율적 문장이 된다.
감정은 설명하지 말고, 행동을 묘사하라 (이건 전통 창작론과도 상통)
제 보기에 초단편은 의도적으로 문학적 장식을 털어 내고, 주변적 설명을 자제하며 함축되고 연속적인 사건이 점증하며 반전을 기폭하는 장치 같습니다. 그러니, '회색인간' 읽으며 유일하게 아쉽던 부분, 캐릭터가 밋밋하고 글이 투박한 이유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이 더 개선되면 좋다고 아직도 생각합니다만.
독자는 돈을 내지 않는 대신. 시간을 내고 본다.
이 철학이 김동식을 김동식 답게 만든듯 합니다. 그의 재주를 들여다 보려다 그 주인의 매력에 젖다 나온 독서였습니다.
Inuit Points ★★★☆☆
이 책도 초단편 소설마냥 잘 읽힙니다. 분량은 가볍고 필치는 경쾌합니다. 군데군데 쓸만한 내용도 많습니다. 착상을 떠올리는 그의 방법, 반전을 숨기는 요령, 첫문장 쓰는 좋은 접근법 등은 따로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입니다. 이 책 읽고 초단편을 쓰겠다고 달려들것 같진 않으나, 글 보는 시각, 요즘 호흡에 맞는 글이란 어떤건가 등 생각해 볼 좋은 기회였습니다. 별셋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