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by 안녕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곤 한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날 경우가 몇 퍼센트나 될까?


오늘 풀어낼 이야기는, 너무나 놀랐던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다.




2주 전, 7월 9일. 방학 후 진행할 '문학기행' 사전 준비를 위해 사서 선생님과 함께 답사 장소로 향했다. 마침 시험 기간이라 비교적 일찍 답사 장소에 도착했다. 리얼 월드라는 어플을 이용하여 야외 미션 해결 게임을 진행할 예정이라 미션 장소를 한 번 둘러보았다. 날이 덥지만 않다면 할 만한 코스.


근처 식당에 가서 예약을 하고, 인근 박물관까지 들러 사전 예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문학 기행을 준비하면서 부쩍 가까워진 사서 선생님과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었다. 마침 역 앞에 커피숍이 하나 있어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날은 바람도 심하게 불어 걷기만 해도 땀이 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학교에서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시지 못했던 터라 커피가 너무나도 간절했다. 시원한 아이스 바닐라 라테 한 잔이면, 아니 그냥 시원한 물 한 잔만 먹어도 소원이 없겠다 싶어 들어간 곳에서 갑자기, 너무나 낯선 말 한마디를 듣게 된다.


"OO선생님!!"


너무 놀라 쳐다보자마자


"선생님! 저예요. 연우!"

"...?"


당황스러워 누군가 싶어 찬찬히 보니, 연우가 아닌가. 2014년. 너무 힘들어 매일매일 울며 지내던 그 시절, 가끔 내 교실에 찾아와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눠주던 아이. 담임은 아니었지만 그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던 아이. 싹싹하고 씩씩하고, 당당하며 애교 있고,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에게 예의 있던 그 연우 아닌가.


얼굴을 변했지만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너무 놀라


"....?....!!!!! 헉!!!!! 연우? 연우야? 어머나!!!!!"


두서없는 말을 쏟아 내자, 10년 전처럼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는 눈웃음을 하며 답한다.


"선생님. 저 카페 해요. 이거 제 카페예요. 언니랑 같이 일 하고 있어요."


네 나이에 벌써 사장이라니, 대단하다, 멋지다, 대견하다, 이런 말 해줘야 하는데 여전히 나는 어버버.


"선생님. 저 아직도 보영이랑 연락해요."


한다. 보영이, 보영이가 누구냐 하면, 14년 당시 3학년 4반, 우리 반 아이였던 녀석이다. 예쁘장한 얼굴에 공부도 잘해서 예뻐했던 기억이 있다. 다만, 보영이는 연우와 다르게 사근사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타입은 아니고 약간 털털했던 것 같다. 무뚝뚝하고 수줍었던 느낌. 당시에도 둘이 친했는데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낸다 하니 새삼 신기했다.


옆에 계신 사서 선생님은 어리둥절.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있느냐며 신기해하는 와중에 선생님 커피는 제가 대접하겠다며 커피 값을 안 받으려고 하는 걸 한사코 말렸다. 요새 자영업 힘든 거 아는데, 게다가 한 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 제자에게 밥을 사주지 못할 망정 얻어먹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다. 바닐라 라테 한 잔, 에이드 한 잔 사 먹고 앉아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밌고 감동적인 이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연우가 슬며시 와서 케이크와 도넛을 내민다. 이것만은 꼭 대접하고 싶다면서.


두 번 거절하기 어려워서, 담임도 아니었던 나를, 10년이나 지난 후에 만난 선생님을 기억해 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 받아 나눠 먹는데 그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 보다, 마음속에 번지는 따스함이 더 컸다. 업무 이야기를 하는데 새삼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답사 갔던 곳이 첫 직장 근처이긴 했다. 그리고 나는, 한 지역에서 13년째 근무 중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제자를 만날 수 있나 싶다. 그동안 아이 데리고, 남편과 함께, 혹은 직장 동료와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냔 말이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는데 어떻게 그날, 거기서! 녀석을! 만날 수 있는지!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나와 녀석은 그저 수업으로만 만났을 뿐이라는 것. 담임도 아니었고 우리 반도 아니었다. 중3 때 1년 정도 가르친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당시 우리 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교과는 수준별 수업을 했기에 A, B, C에 따라 매번 반이 바뀌는 시스템이었다. 연우와 내가 수업으로 만난 것은 생각보다 더 적을 수 있다.


그런데도 나를 기억해 주었다는 것. 그 자체가 내게는 감동이었다. 16살에 잠시 스쳐 지나간 나를 26살에 만나 기억할 확률이 몇이나 될까. 내 이름을 잊지 않고 부르며 반기는 그 마음속에, 녀석의 기억 속의 내가 적어도 다시 만나 반기고 싶은 선생님이었다는 생각까지 닿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작년부터 매일 같이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다. 능력이 없어서, 혹은 돈이 없어서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성격 상 어떤 일이든 대충 하진 못해서 스스로를 들들 볶으면서 몸을 갈아 넣어가며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 짜증스럽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게 힘들었다. 공감과 소통이 특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너희 도대체 왜 그러냐?"라고 타박하는 일도 잦았다. 아직 정년 퇴직하려면 20년도 더 남았는데, 한 학교당 5년씩 잡으면 무려 4개의 학교를 더 돌아야 정년퇴직을 할 수 있는데, 그 20년 동안 나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면 한 없이 우울해졌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은 돌고 돌아 "나는 왜 부잣집 딸이 아닌가."로 귀결.


그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답사를 가기 전 학년부실에서 난, 조금 속상한 일이 있었고 학기말이라 학교는 어수선했다. 좋아서 했던 일이지만 사실 이번 '문학기행'은 교장 선생님의 예상치 못한 제안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200만 원이 넘는 예산을 2학기까지 써야 했다. 워낙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서 선생님이 좋으셔서 잘 진행할 수 있었지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일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보여주듯 하늘은 우중충했고, 비는 추적추적 내렸고, 나는 하필 그날 원피스를 입었다. 세찬 바람에 우산은 뒤집히고 안경엔 빗물이 툭 툭 투우 욱- 묻어나는 날, 기분과 같이 몸도 축축 처지는 날이었다. 답사 끝내고 커피 한 잔 마시며 힐링해야지, 했던 그런 날에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연우를 만난 것이다.


녀석은 알까. 그날, 집에 오자마자 그 해의 졸업 앨범을 찾아보았다는 걸. 졸업 앨범 속에 환하게 웃고 있던 녀석을 보면서, 또 몇 장 뒤에 웃고 있던 내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뭉클했는지를.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떠난 추억 여행이, 얼마나 나를 오랜 시간 동안 행복하게 해 주었는지를.




올해 학년 부장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어쩌면 교사는 내 눈앞에 있는 아이의 '현재'에 매몰되지 않고, 그 아이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당장 나를 힘들게 하고, 거친 욕설로 분위기를 흐리고, 불성실한 태도로 학교를 다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할 수 있는 아이의 내면을 믿고 가꾸어주는 일,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텨 나가면서도 너무나 무례하고, 개념 없고, 기초가 닦이지 않은 아이들을 대할 때면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다. 왜 이 자리에 내가 앉아서 이런 마음고생을 할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연우를 만나고 나니 조금은 유연해진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녀석들도 10년 후에는 조금 더 성장하여 자신의 일을 찾고, 제 몫을 하고 살아가겠지. 그러다 연우와 내가 만난 것처럼 우연히 우리 다시, 2030년 그 언저리에서 만나면 그때는 "선생님. 중1 때 기억나세요? 저 OO이에요." 하며 다시 나를 10년 전으로 이끌어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미래를 그리자, 미래를 꿈꾸자,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조금씩 행복하게.


하나 더.

교사는 아이들로부터 배운다는 말, 역시나 맞다.

나는 10년 전 연우를 가르친 선생님이었고,

10년 후 연우는 나를 깨닫게 한 스물여섯의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에필로그-


이 특별한 경험의 끝에 연우에게 뭔가 깜짝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요새 장사하기 힘들다는데 힘이 되어 주고 싶어 마침 문학기행 활동 간식을 녀석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행한 선생님도 동의하셨다.


당장에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 제자에게 짐짓 차분한 목소리로 자몽에이드 9잔, 레모네이드 9잔, 그리고 커피 3잔을 예약했다. 끝까지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나라고 말하면 뭔가 또 서비스를 주려고 할 것만 같아서.


그리고 23일 당일. 9시 15분. 카페를 찾아가 연우에게 말했다.


"연우야. 단체 예약. 그거 선생님이 한 거야. 원래 더 팔아 주고 싶었는데 애들이 몇 명 빠지는 바람에."


순간 감동받았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연우의 표정이 생생하다.

이거 단체 주문 그때 그 선생님이 하신 거야? 라며 연우의 옆에서 에이드를 부지런히 만들고 있던 연우의 언니도 머릿속에 가득하다.


장사가 쉽지 않을 게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쉬운 것이 하나 없다.

그래도 스물여섯의 나이에 제 가게를 차리고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연우는

잘 해낼 것 같다.


그 녀석의 기나 긴 인생의 한 부분에 기억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뿐이다.




오늘 풀어낸 이야기는,

너무나 동화 같던 어느 여름날, 연우와 나의 이야기다.



사진: Unsplashfrank mckenna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1화미숙한 제자와 서툰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