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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Aug 22. 2019

좋은 부모가 되고 싶으신가요.

글디오: <글로 보는 라디오> #22



비가 와요. 엄청 많이 쏴아 쏴아. 어젠 흐려서 좋았는데 비가 내리면 나가서 놀기가 불편한걸요. 잠시 망설여져요. 그래도 마지막 주말이잖아요. 이렇게 버릴 수는 없죠.


오늘은 '아이를 위한 시간'을 가져볼까 해요. 그동안 노래를 불렀던 로봇박물관도 가고 영화도 볼 생각이에요. 출근을 하면 아이와 보내는 낮시간이 얼마나 그리워지는데요. 그러니 후회 없이 오늘 하루는 '아이의 날'로 해주어야겠어요.


<레드슈즈>라는 영화를 보고 싶대요. 그런데 이걸 굳이 3명이서 다 같이 볼 필요가 있을까요. 아이를 설득해야죠. 엄마 아빠 중에 한 명만 영화를 보면 그 돈으로 너의 장난감을 살 수 있다고. 아이는 망설이겠죠? '함께'의 의미를 아주 크게 생각하는 아이이지만, 장난감이 생긴다는데 넘어와야 어린이지요. 그럼 다음 관문은 누구와 함께 볼 것이냐, 예요. 우리 부부는 서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요. 자기가 걸리지 않기를. 영화의 스토리 상 엄마가 낫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운도 참 좋죠? 당첨이에요!


기본 플롯은 백설공주인데 마법으로 예뻐진 공주와 저주로  못생겨진 왕자의 만남이에요. 실제 외모보고는 실망과 고민을 하지만 서로의 진심이 닿아 결혼까지 골인해요. 마녀 새엄마와 얼간이 왕자도 나오고요.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 모양인데 억지스럽게 끌고 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아무리 보아도 '예쁜' 레드슈즈의 모습이 더 매력적인 걸요.


예뻐진 공주는 왕자가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실망할까 봐 걱정, 못생겨진 왕자는 자신의 잘생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 '진정한 사랑은 외모가 아니다'가 결론이기는 하지만, 영화 보는 내내 외모에 대한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기분이 들기는 했어요. 아이가 아직은 '예쁜 친구가 좋고 못난 친구는 별로이고' 하는 개념도 없거든요. 자신한테 상냥하거나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관심을 갖는데, 이 영화를 보고 예쁘고 멋진 것에 대한 구분이 생길까 오히려 걱정이 된 영화였어요.



영화를 마치고 나니 점심이네요. 근처 가성비 좋은 초밥집으로 찾아가 점심을 먹고 로봇박물관에 가려고요.


제주에서 운전하는 것은 참 기분이 좋아요. 모르는 길일 때는 긴장이 되기는 하지만요. 육지의 하늘과 제주의 하늘은 뭐가 다른 걸까요. 왜 제주의 하늘이 더 예뻐 보이는 걸까요. 생각해봤는데, 확실히 하늘이 더 넓어요. 높은 건물에 시야가 가리지 않아서이겠지요.


나무와 전깃줄 외엔 하늘을 가리는 것이 없는 제주 하늘.


이번에는 남편 차례예요. 저희 가족, 로봇박물관 벌써 몇 번째거든요. 남편이 아이와 함께 들어가기로 했어요. 로봇 격투도 해야 하고 로봇댄스도 봐야 하고 계획이 많아요. 이제 저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야호! 자유시간이네요.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비 내리는 바다를 보기도 해요. 유를 원했지만 막연히 주어진 자유를 어찌 써야 할지 모르는 불안함도 공존합니다.



저녁은 집 근처에서 닭갈비를 먹기로 했어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요. 우리처럼 3인 가족 옆에 자리를 안내받았어요. 저희 아이 또래처럼 보이는 아이가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어요. 아이데리고 식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음량이 너무 커요. 제 바로 옆에서 소리를 키우고 보고 있는데 안 그래도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식당에서 그 소리까지 듣고 있으니 온 신경이 거기로 쏠려요. 물론 저희 아이도 보고 싶어 하지만, 집에 가서 보자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밥 먹을 때는 밥 먹는데 집중하자고요.


핸드폰을 보여주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신가요. 저는 천만번 이해가 가요. 아이 데리고 식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먹성 좋은 아이여야 그나마 먹는 것에 집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라면 더욱 힘들고요. 하지만, 너무 소리가 커요. 주변 소리 때문에 안 들려서 그러겠거니 하면서도, 바로 옆에 앉아 있으니 저는 괴롭더라고요. 하지만, 부모 모두 개의치 않아하는 듯해요. 저도 모르게 자꾸 쳐다보게 되는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요. 술 한 잔 마시며, 음식을 가져오는 어린 알바생에게도 반말 대하는 모습을 보니 괜한 기대를 했나 싶어 져요.


그런데요. 이 아이는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공공장소에서 소리 높여 영상을 보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부모 아래서 그것이 당연한 듯 자라지는 않을까요.


"한 번만 먹자. 응?"


아이는 도리질을 쳐요. 자신에게 애원하는 부모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전에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오는 길에 모두 피곤에 지쳐 잠든 기차 안에서 한 아이가 유튜브를 보더라고요. 이어폰도 생략한 채. 내가 재밌고 즐거운 것이 남들에게도 똑같이 그럴까요. 게다가 공공장소라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익스큐즈 해주는 상황도 아니고요.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소음일 수 있어요. 이 아이도 어쩌면 그런 부모 아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자랐던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편하고자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줬으면 적어도 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제가 PT 받을 때 아이에게 헤드셋을 끼운 핸드폰을 쥐어주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예요. 헤드셋이 아이 귀에 좋지 않을 거라서 못하신다면 다른 사람이 우리 아이로 인해, 또는 아이가 내는 소음으로 인해 받는 피해는 괜찮은 걸까요. 생각이 조금 달라지시나요?




- 잘 크고 있어.


육지 빈집을 살펴주시는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왔네요. 토마토 사진과 함께요. 우리가 제주로 떠나온 사이, 방울토마토가 식구를 하나 더 늘리고 빨갛게 익기도 했어요. 탐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예뻐요. 마트 가서 한팩 훌쩍 들고 나왔던 그 토마토들과 달라요. 생기가 돌고요. 푸릇한 풀내음도 돌잖아요. 이건 완전 다른 토마토라고요. 모르시겠어요?


처음 키운 생명이 열매까지 맺었다. 첫 손주 생긴 할머니같은 기분이다. 우쭈쭈.


예쁘다는 것은 어쩌면 '생김새'만 말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제가 애정을 쏟으며 처음 키운 식물이어서 사랑스러운 거겠지요. 동글고 빨간 제 토마토가 다른 토마토보다 확실히 더 예뻐 보여요.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요. 제 눈에 비치는 제 아이처럼요.


어떠세요? 제 말대로 인가요? 제 토마토가 확실히 뭔가 특별해 보이시나요? 당연히 아닐 거예요. 여러분이 보시기에 여전히 그냥 토마토이죠? 내 아이도 그럴 수 있어요. 그냥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어쩌면 '조금 귀여운 아이다' 정도 생각할 수도 있고요.


식물도 애정을 쏟으면 이렇게 예쁜데 내 아이라면 목숨과도 같이 소중하고 사랑스럽죠. 아이가 하는 어떤 행동이든 예뻐 보이요. '아이라면 그럴 수 있'라고 생각하고 허용할 수도 있요. 하지만! 나에게만, 내 눈에만 그렇다면요? 남들도 자신의 아이에게 나와 같이 그럴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쩌면 '무례한 부탁'과도 같을지 몰라요.


예쁜 것은 죄가 없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그것을 묵과하는 부모, 인지조차 못하는 부모들이 문제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굳이 따지자면, '노 키즈존(NO KIDS ZONE)' 보다는 '노 배드 패런츠 존(NO BAD PARENTS ZONE)'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나쁜 부모가 되지 않도록 하세요. 좋은 부모라는 타이틀이 도대체 어떤 건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실천하기는 더 어렵잖아요. 나쁜 부모가 되지 않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배우자를 떠올려보세요. 근사한 보석이나 신형 풀스를 선물해줄 때보다, '당신 때문에 그래', '당신네 집안은 왜 그래?'라는 비난이나 카드빚을 늘려가는 골칫거리를 선사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으신가요? 좋은 것을 더해주기보다는 나쁜 것(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 애쓸 때 상대에 대한 신뢰도 더 쌓이고요. 부모 자식 관계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대단한 모범을 보이려고 애쓰기보다는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나쁜 부분을 보고 배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 앞에서 무단횡단을 한다든지, 도서관에서 큰소리로 책을 읽어준다든지 하는 일들이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저를 돌아봐요. 예쁜 것은 죄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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