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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Nov 16. 2019

안녕이라는 인사조차 못 할까 봐.

넌 나에게 매일 첫사랑 #10



푸르렀지만 겁이 많았고, 솜사탕처럼 달콤하지만 녹다가 언 눈처럼 시렸던 청춘의 사랑.


들고만 있어도 마음이 푸짐해지던 솜사탕 그리고 내 첫사랑. 내 얼굴을 다 덮을 만한 솜사탕 막대를 손에 쥐고는 나를 부러워하는 동네 아이들의 눈빛에 의기양양 턱끝을 올리며 걷던 어느 여름날의 기억. 혀를 날름거리며 먹다 보면 녹다 굳은 설탕결정과 색소 덩어리로 여기저기 얼룩져버리기도 하고, 깔끔하게 좀 먹으라는 엄마의 타박에 손가락으로 꼬집어 부욱 뜯어먹기도 했던 나의 큰 솜사탕. 과연 줄어들기는 하는 건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안 나고, 결국은 단맛에 물려 다 먹지 못하고 어딘가에 내려놓고는 기억도 없이 사라진 나의 옛날 솜사탕은 마치 나의 첫사랑과 꼭 닮았다.




겨울을 이기고 봄이 왔다. 우리는 사소한 말다툼을 했고, 나는 한 달간 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도 지쳤는지 한참 연락이 없었다. 막상 그와 연락이 닿지 않자 더럭 겁이 났다. 이대로 끝이 나버린 걸까 이제 그도 지쳐서 포기해버린 걸까. 갖은 생각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났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받지 않았다. 번, 번. 여전히 연결음 소리만 요원히 멀어져 간다.


집으로 전화를 해볼까, 집 앞으로 찾아가서 기다려볼까,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뭘 하고 있는 걸까, 내 전화가 울리는데도 받지 않는 걸까, 받지 못하는 상황인 걸까.


전화기를 뒤져 그의 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찾았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그의 생일과 휴대전화 번호를 포함해서 이것들 밖에 없었다. 5년을 넘게 만났어도. 그를 전부 가졌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을 뿐이었다. 그와 만나고 그와 전화로 이야기하는 순간만 그는 나의 것이었다. 그 이외의 순간에는 그는 철저히 남과 같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존재였다.


온몸에서 피를 뺀다면 이런 기분일까 잠시 생각을 했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나는 덜덜 떨고 있었다.



패닉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순간. 전화기가 울렸다. 이현이었다.


"전화했었네? 잠깐 노동청에 와서 일 좀 보고 있느라 못 받았네."

"......"

"잘... 지냈어?"


이것은 헤어진 연인이 오랜만에 묻는 안부인사 같다.


"응. 전화 안 받아서 놀랐어."

"그랬구나. 난 이제 좀 익숙해졌는데."

"......"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의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일부러 전화를 안 받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알던 그로 다시 돌아와 있는데, 그게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그대로라는 것이 그렇게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아냐. 받았으니 됐어."


사과할 사람과 사과받는 사람이 전도가 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이현은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자존심 따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린 같은 그의 속눈썹은 어머니를 빼닮았다. 여배우 누군가와 비슷한 용모에 우아함까지 갖춘 전형적인 미인상. 웃을 때 패이는 보조개는 그의 아버지를 닮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이 고향이신 분으로 명절이면 큰아버지와 고모들 그리고 그들의 자손까지 대가족이 모여 북적거리며 보낸다. 이에 반해 어머니는 서울 출신의 외동딸이라 곱게곱게 자라다 그의 아버지를 만났다고 했다. 서울의 어느 동 주민센터의 장이이던 아버지의 소식이 가끔씩 신문에 작게 실릴 때면 그의 어머니는 그 기사를 스크랩해서 두셨다. 고향이 북인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의 아버지도 생활력이 대단하셨던 모양인데,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뤄놓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온 탓인지 이현은 조급함이나 큰 목표가 없었다.   


그에 반해 나는 전업주부인 엄마, 그리고 보통의 회사원인 아빠의 외벌이 살림으로 살았다. 수입 내에서 알뜰하게 두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을 보며 자라서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늘 생각하고 살았다. 애초부터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인지라 결정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교사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 즉, 어학 자격증이라던가 교육봉사, 통역봉사 등 각종 스펙을 쌓아야 했다. 그렇게 졸업을 위한 준비를 했고, 임용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 경력의 끊김이 없도록 일과 시험공부를 병행했다. 목표는 분명했고 목표를 이뤘다. 이런 내 삶의 기준에서 이현을 보았을 때, 그의 느긋함은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누가 더 잘 사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삶을 대하는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날 때는 결국 끝이 있을 수밖에 없음도 받아들여야 했을 뿐.


기린 눈썹과 보조개 웃음만으로 충분히 나를 달콤하게 했던 사람이었는데,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연인이 나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보조개를 만질 권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커다란 솜사탕을 쥔 아이처럼 당당했었는데 그런데도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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