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팔뚝이 싫다고 했다

by 티히

팔뚝 둘레, 27.4cm, 가슴둘레 94.3cm.

철봉이와의 만남 전, 줄자로 측정해 본 내 몸 수치다.


음, 27.4cm라... 30cm 자 길이에 육박하는 정도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애초 비교 대상이 없으니, 다른 사내들보다 팔뚝이 얇은 건 확실할 텐데 어느 정도인지는 당최 알 수 없었다. 하긴 그동안 살아오면서 워낙 근육 운동에 관심이 없었으니 남 팔뚝, 남 가슴팍 보면서 부럽다거나 해본 적도 없다.


내 팔뚝 재는 거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 한심한 듯 쳐다보더니 자기 팔뚝도 재보겠다고 나섰다. 아내 팔뚝은 28.2cm. 허걱, 나보다 0.8cm나 굵다. 아내 얼굴 표정이 의기양양해지는 듯하다. 그래서 속으로 그랬다.

‘그래, 네 팔뚝 굵다.’


철봉이랑 함께라면 내 팔뚝은 굵어질 수 있을까? 내 가슴팍은 굵어질 수 있을까?

그래, 굵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까치발로 철봉이를 거머쥔다. 그리고 두 발을 방바닥에서 떼 본다.


1초, 2초... 와우, 철봉이가 곁을 주지 않는다. 턱걸이는 고사하고 그냥 매달리기만 했는데도 2초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 다시 한 번 매달려본다. 그리고 힘차게 몸을 들어 올려본다. 바닥에 강력 자석이라도 붙여놓은 듯 꼼짝달싹 하지 않는다. 하긴 중력이라는 아주 강력한 지구 자석이 내 몸뿐만 아니라 지구 상 모든 것들을 무자비하게 끌어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첫날이니 들어올리기는 고사하고 그냥 매달려보기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철봉이에 매달렸다. 여전히 2초를 넘기기 힘들었지만 매달리다 말다를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뭔가 겨드랑이가 뻥 뚫리는 느낌은 있다.


그렇게 철봉이와의 밀당이 시작됐다. 아마 철봉이는 엄청나게 나를 밀어내려고 할 것이다. 아마 나는 기를 쓰고 철봉이를 당기려고 할 것이다.


철봉이와의 첫 만남 후, 아내에게 말했다. ‘나 역시 2초도 못 매달리는 내 팔뚝이 싫다고.’

keyword
이전 01화아내는 내 팔뚝이 싫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