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따뜻한 오후

시&노트

by 여상

[모처럼 따뜻한 오후]


겨울 가지 찰랑이다

공연히 푸른 싹을 내밀려하고

하루가 길다는 길고양이

아그작 아그작 사료 씹는 소리


밥그릇을 싹 비우고

구들방 등 지지는 할매마냥

사는 맛을 안다는 표정이

뜨뜻한 밭고랑에 맛깔지게 배를 깔았다


나풀대는 게 먼지인 줄 알았더니

햇살 겨운 날벌레 몇 마리

어쩌자고 하루치 온기에 이리 나왔냐고 물으니

나는 당신처럼 질질 끌지 않아요,라는 대답


짝을 지은 새들이 부르는 악보 없는 노래가

표절 없이 나무 사이를 건너 다니고


시간이란 생각하기 나름

햇살이란 것도,


하루치의 사랑도,

사랑이지


어제까지 날 서게 춥다가

모처럼 따뜻한 오후





note


느긋하게 밥을 다 먹고는 양지 바른 밭 마당에 태연하게 배를 척 깔고 누웠다. 세상 시름 없다는 듯 늘어진 낮잠, 며칠 새 또 추위가 찾아오면 어딘가 익숙한 구석에 웅크려 버티며 겨울을 견딜 것이다. 안 보이면 궁금한 사이.


겨우 하루 햇살에 날 것들이 공기를 휘젓다니!

자연은 하루를 산다. 그렇게 매 순간'지금 여기'를 산다.


생애 어느 따사로운 순간에 이룬 목숨 같은 사랑...


사흘이 지나면 대한(大寒)이다. '대한 끝에 양춘(陽春)이 있다'라고 했던가.

들판을 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들에게 추위가 얼마나 고달팠으면 이런 위로의 말을 지어냈겠는가.


그렇게 나온 말이 '견딤'

'견딤'과 '삶' 그리고 '사랑'은 어쩌면 동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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