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울지 않는다 - 안희연의 시 ‘호우’에 부쳐
방 안으로 새가 날아들었다
문이 열려 있지 않은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을까
창문을 열고 새를 날려 보낸다
방 안에 새가 들어와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문은 열려 있지 않은데
새의 눈을 들여다본다
사람 손을 많이 탄 것 같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태양이 태양을 삼켜 자멸하고
멈추지 않는 비가 내리고
매일 조금씩 떠내려가는 방 안으로
새 한마리가 날아들고
날려 보내도 기어이 되돌아오고
더듬더듬 그 새를 살피고
이름이 필요해졌다는 이야기
이름이라니,
우리는 정말 멀리 와버린 것이다
닫힌 문 안으로 쉴 새 없이 비가 들이치고
목은 자꾸 휘어지려고만 하고
언젠가
이 새가 나를 포기하는 순간이 올까봐
가망이라는 말을 뒤돌아본다
비가 와도 울지 않는다
- 안희연,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호우’ 전문
안희연의 첫 시집 중 좋아하는 시다.
‘좋아하다’라는 말. 나만의 단어장에 이렇게 기입한다. ‘나를 건드리는 것에 감응하다’.
나를 건드리는 사람, 나를 건드리는 책, 나를 건드리는 시, 나를 건드리는 영화, 나를 건드리는 음악, 나를 건드리는 말, 나를 건드리는 글이 좋다.
‘건드리다’라는 말. 스치고 지나가며 무언가 흔적을 남기는 것. 또렷하지 않고 모호한 형상으로 나를 ‘그것’에 잠시나마 골몰하게 하는 것.
나를 건드리고 가는 말들이 묘하게 조합되어 있는 시.
일단 명사를 살핀다.
방, 새, 문, 창문, 이야기, 비, 이름, 가망.
그리고 동사를 더듬는다.
날아들고, 열고, 날려 보내고, 들여다보고, 삼키고, 자멸하고, 떠내려가고, 되돌아오고, 살피고, 들이치고, 휘어지고, 포기하고, 뒤돌아보고.
무엇보다 잡아끄는 말은 이것이다.
울지 않고.
비가 와도 울지 않는다,라는 게 중요하다. ‘가망’이라는 말이 앞서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가 와도 울지 않기에, 가망이 있다는 걸까, 없다는 걸까. 나는 어느 쪽에 걸고 싶은가.
바람 부는 봄날. 마스크를 쓰고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걸었다. 코로나라 불리는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나날에도, 벚꽃이라 불리는 꽃 이파리들이 사방으로 궐기하는 나날들.
아주 작은 꽃잎 한 점이 희미하게 날아와 내 콧잔등(정확히 말하자면 마스크에 뒤덮인 콧구멍 자리)에 앉는다. 놀랍게도.
내겐 가망이 있었다. 뜻밖의 순간이 찾아왔으니. 단 한 줄의 시라도 쓸 수 있겠다.
두 눈동자를 가운데로 모아 그 희고도 발그레한, 얇고 부드러운 것을 내려다본다. 아무렇지 않다. 놀랍게도.
나는 가망이 없었다. 순간을 붙잡지 못했으니. 꽃잎이 얼굴에 내려앉았는데 어떤 말도 몸속에 스미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친구가 보내준 파울 첼란의 시 ‘코로나’를 다시 읽어본다.
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을 뜻한다지. 태양이 완전히 가려졌을 때 그 주위로 먼저 나오는 빛의 환(環).
한순간 태양 빛이 꺼지듯 시간의 어두운 원점에 선 연인들의 모습을 그린 연가,라는 각주를 들여다볼 때까지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 아무것도 나를 건드리고 가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아도 놀라지 않는다,라는 게 중요하다. 적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의 모습에라도 나는 놀라야 했을까.
시적 화자는 비가 와도 울지 않는다. 단단해진 걸까, 담담해진 걸까. 무뎌지지만 않는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비가 와도 울지 않는다. 비가 와도 울지 않을 만큼 ‘나’의 체념은 한결 성숙해졌는지도 모른다. 가망이 있든 없든.
새가 ‘나를’ 포기하는 순간이 올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새를 포기할까 불안한 건지도 모르겠다.
시인에게 ‘새’는 무엇일까. 시, 삶, 시간, 신. 이런 아득한 이름들을 나열해본다.
새는 ‘나’인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을 건너 지금-여기의 나 위에 또다시 겹쳐진 어떤 축적의 이름.
비가 와도 울지 않는 나를 발견하는 진공 같은 시간. 호우는 그런 특별한 시간을 끌고 오는 힘이다. 호우(豪雨)이거나 호우(好雨)이거나.
가망 없음에도 가망에 마음을 거는, 그런 시간.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