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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속삭임

by 고운로 그 아이


가을의 연못에서는

맑은 윗물만 살포시 길어 올리자

작은 표주박으로 담을 수 있는 만큼만

행여 크게 휘저어 뿌옇게 흐려지지 않게

기억도 맑은 것만 떠 오르게 하자



달빛 아래 울어대는 귀뚜라미

긴 여름 가마솥 같은 땅 속에서

허물을 벗으며 숨어 지내던 고난 가라앉히고

어쩌다 한 나무 덤불 틈에서 들은

우렁찬 매미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렸을지라도

표주박 속에는 멀리서 은은히 바라보던

달빛만 소복이 담아 내자



뙤약볕과 장대비 사이 징검돌을 오가던 구절초

갈증과 짓무름으로

뿌리마다 고통의 진주알을 물고 있어도

가을 햇살 아래에서는

불순물 같은 기억 침잠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윗물만 가만히 받아 올리자

쪽박으로 물속의 구름도 건져 올리고

꽃잎에 앉았다 가는 서늘한 바람도 얹어서

머리에 이고 살랑살랑 춤추며

가라앉힌 기억들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도록

저 못 바닥에 고스란히 남겨 두고 돌아오자



가을에는 제 무게를 벗고 위로 떠오른 청아한 마음들이

물에 비친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게 하자








가을입니다.

낮 동안은 뜨거운 햇볕이 여전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상쾌한 바람이 어옵니다.

연재 삶 속에 스치는 시 3부를 시작합니다. 이번 시즌은 가을, 겨울 이야기가 주를 이루겠네요.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무심코 지나치는 소소한 것에도 마음을 열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늘 찾아오셔서 공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대문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깜돌이의 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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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