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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로 그 아이 Dec 03. 2024

이명 소리



밤의 침묵은 블랙홀처럼 시상(詩想)을 모두 삼키고

잡음만이 귓바퀴를 쪼아댄다



컴퓨터에 쓴 글자 몇 줄

자꾸 뒷걸음치며

끄적인 것들마저 뭉개버렸다

시집 명 문장들이

기다리다 죽비를 내리친다

위축된 글들은 점으로, 점으로 소실되어 간다



이름만으로도 후광이 빛나는

시인들의 시들

책상 한 편에 쌓아 둔 시집들은

금자탑처럼 휘황하다



하지만 쉽지 않았을 여정

그 시들도 어둠 속 블랙홀을 거슬러 올라

낮은 확률로 잉태된 것일지 모른다

산고의 극한 고통 없이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



시 한 편, 빛을 만나기까지

험로 굽이굽이마다

피다 만 사유의 잔재들

시인들도 들었을까

공허한 메아리들

때론 바깥에서 울리는 소리보다

내 안의 소리가 더 가혹하다

도망칠 수 없다



을 건져 올리는 몰입의 시간에

침묵해야 할 세상은 비웃듯

잡음의 볼륨만 높인다

시냇물 소리, 매미 소리,

폭풍우 소리, 뱃고동 소리...



쉴 새 없이 집어삼킨 소리들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내 귀는 정적을 향해

불편한 이명을 토해내고 있다.








13년 전쯤 이명이 왔었다. 3개월 간 지속되던 그 이명 소리는 아주 버라이어티 한 소리들을 들려주다가 어느 날부터 서서히 사라졌다.


이명, 귀울림 증상은 외부에서의 소리 자극 없이 귓속 또는 머릿속에서 느끼는 이상 음감을 말한다.

원인은 각종 질환, 소음, 약물, 스트레스, 피로 등이 있고, 원인 불명인 경우도 29퍼센트라고 한다.


진료를 받았지만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면 특이점은 없었고, 당시 아이의 그림 숙제를 도와 포스터 글씨를 색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열린 문이 없는데 문 소리가 덜컹덜컹 났다. 그 뒤에는 바람이 귓속으로 불어 들어왔고,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파수가 높은 삐~ 소리부터, 낮게는 부웅~~ 하는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이명에 갇혀 세상 소리와는 단절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 방치하면 청력이 약화되거나 소실될 수도 있다고 했다. 약을 먹어도 별반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그 와중에 문득 드는 생각이, 구부려서 무언가를 할 때 머리로, 혹은 귀로 가는 혈액 순환이 안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은행잎 추출 제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시중에도 판매되는 그 제제를 꾸준히 먹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던 이명소리가 점점 약해지는 것이 느껴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고통스러웠던 기간이 3개월이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주파수가 낮은 이명은 약물에 반응이 좋다고 했다. 삐~ 하는 높은 주파수의 이명이 치료가 잘 안 되고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10여 년 간 이명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 삐 하는 소리가 가끔씩 들려온다. 나는 얼른 은행잎 추출물 제제를 사다 놓고 나타나면 투하한다는 각오로 대비하고 있다.


글을 써야 할 때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복병처럼 침투하는 이명소리는 참 싫다.

세상 소리는 차단하면 되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는 당장 차단할 방법이 없다.


글을 쓰고 책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너무 숙이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숙인 고개와 허리를 쭉쭉 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명이 집중에 방해가 되는 경우에 소음이 없는 조용한 상태보다 빗소리, 파도 소리, 의미 없는 라디오 소리, 음악 소리 등의 백색 소음을 틀어 놓으면 오히려 마음의 안정과 더불어 집중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이 보내는 sos 신호를 잘 잡아 내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아울러, 모든 일에 능력 이상의 큰 욕심을 부려서 스트레스를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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