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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철

내음 씨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by 심내음

겨울은 인사 발표와 조직 개편의 계절이다. 내음 씨도 최근까지 겨울이 되면 공식 발표 전까지 사람들도 만나고 인사도 다니고 바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유리한 결과가 되도록 하는 발버둥과 같은 동작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내음 씨는 그냥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다. 마치 격렬한 축구 경기나 전투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듯이 바쁘고 와일드하게 움직이는 주변에서 혼자만 조용히 있는 듯하다. 물론 내음 씨 말고도 조용히 있는 사람이야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알다시피 큰 조직에서 저 여기 있어요 저 이거 했어요 하고 목소리를 죽어라 내도 ‘오, 너 거기 있니?’ 하고 인정 아니 인지조차 받기 힘든데 조용히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있다는 건 물론 확실하다.

내음 씨가 가만히 있는 이유는 가족이다. 시간이 갈수록 내음 씨에게서 자기 자신보다 내음 씨의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졌다. 마치 내음 씨는 그냥 놀이공원의 큰 탈 인형 같이 껍데기뿐이고 그 안에는 내음 씨를 움직이는 가족들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내음 씨가 잘 되면 가족들도 행복하리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가족이 잘 되면 내음 씨도 행복할 것이다. 아니 분명 행복하다 믿는다

인사철에 내음 씨가 바쁘게 움직였던 만큼 조금 더 높은 돈과 명예가 생겼었지만 그게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가족들도 그 조금 나아진 것들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고 내음 씨에게도 그것들은 분명 없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앞으로 그런 것들을 더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내음 씨는 가족이 원하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그 일은 내음 씨가 일부러 계획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처음 시작부터 그 일은 내음 씨의 부인과 같이 내음 씨에게 왔다. 예전 우연히 그 일을 시작하던 중 내음 씨는 부인을 만나게 되었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가족을 더 행복하게 해 준다고 그 일 말고 더 멋지게 더 돈이 되는 일을 찾아서 했지만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는 못했고 결국 그 옛날 부인을 만날 때 했던 처음의 그 일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음 씨는 지금 그 일을 묵묵히 하면 된다. 비록 예전 일보다 멋지지 않고 주목을 받지 못해도 그냥 조용히 하면 된다. 물론 이렇게 하는 건 내음 씨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그렇게 한 번 해보려고 한다. 변화는 언제나 필요하고 내음 씨는 이제까지 이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까. 내음 씨는 “변화”를 해보려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가만히 있어보려고 한다.

곧 인사 발표가 나고 그 결과가 내음 씨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음 씨는 이번 인사철에 예전과 달리 가만히 자리에 있었던 자신을 우쭈쭈 해주기로 했다. 내음 씨는 자기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잘했다, 수고했다’ 하고 다독였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채찍찔하고 담금질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고 쉬는 건 가만히 있어도 내재된 게으름이 알아서 작용하여 되는 것으로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내음 씨의 자아는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고 가끔 용기와 큰 소리를 내려고 하면 엄청난 워밍업이 필요했다. 설사 가끔 용기를 내었어도 곧 이건 내 모습이 아니라 일시적인 거라고 생각하고 원래의 주눅든 모습으로 곧잘 돌아갔다. 내 스스로가 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겠는가 하고 내음 씨는 이제야 뒤늦게 생각했다.

늦었지만 안 하는 것보다 지금부터라도 하는 게 낫다. 비 오는 날 우산 안 가져왔다고 그냥 걷다가 집에 다 와서 뒤늦게 가방 구석에 있는 우산을 발견했더라도 우산은 꼭 쓰자. 늦게 발견한 자신을 원망하지 말고 집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에도 허탈해하지 말고 그냥 지금부터 우산을 꺼내서 쓰자. 그리고 그냥 뚜벅뚜벅 집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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