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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alestar Nov 07. 2021

난독증 작가의 서가-모자 장수의 딸

난독증 작가의 서가

그의 사고방식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동안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지 파악하려고 애쓰며 함께 했다. 나를 '뮤즈'라 부르지만 내가 느끼기에 '힐러'에 가까운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그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다시 깨닫게 된 일은 작가의 서가를 보면서 시작됐다.


책의 표지 내용만 보면 마치 논문을 좋아하고 사색과 교양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작가의 서재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니 책장마다 그림으로 가득 차 있거나 글마다 그 내용을 대체할 수 있는 함축적인 이미지들이 책마다 붙어있었다. 그는 책의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나 패턴을 수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폭넓게 책을 읽으리라 생각하죠.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나는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패턴을 수집할 뿐입니다.

그에게 문장을 시각화하는 일은 매우 중요해서 습관적으로 그에 걸맞은 사진과 이미지를 찾느라 책 보다 그에 딱 맞는 이미지 수집을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고 말했다.


이런 작가의 환경을 누구에게 오픈할 수 있었을까?

이런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있을까?

그의 괴짜다운 작업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는 부담감이 나를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했다.

내가 과연 그의 뮤즈 아니 힐러가 될 수 있을까.


그는 신난 듯 서가를 자랑해 보였다. 진귀한 그림이라고 보여주면서 전혀 맞지 않은 자신만의 방대한 철학 개론을 말했다. 공감할 수 없으니 머리가 지끈거렸고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싶었지만, 얼굴에서 이미 피곤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작가님 이걸 보려면 한 해가 가도 어렵겠어요. 어제 마감을 하느라 잠을 늦게 잤더니 조금 졸린데 오늘은 이만할까요?


나의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그가 웃어 보이며 말했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방향은 달라도 서로 삶의 균형이 비슷하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요?


이미 한 번은 우리 관계를 놓고 해석하고 꺼낸 말이다. 나는 그런 어려운 것에 대답해 줄 수 있는 범위의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는 다시 상기된 표정으로 내가 최근에 재미있는 그림책을 구상하고 있어요. 한번 들어볼래요?


멀티 페르소나의 다음 차기작인가요? 호기심이 많은 나라서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 어떤 이야기인가요?


그는 갑자기 자리를 옮겨 나를 마중해 주려는 듯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조만간 소식 보내겠습니다. 스텔라 기자님 내내 집에 가고 싶은 표정이었잖아요? 글을 보낼 테니 재미있다면 다시 서가에 놀러 와요.


작가님 지금 이야기 안 해주시고요? 나의 태도에 응수라도 하듯 그렇게 갑작스럽게 서가에서 나오게 되었다.


다음날 그에게 약속한 메일이 와있었다.



To 스텔라 기자님

그날의 인사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나의 서가로 다시 오세요.



(C)Whalestar


어느 중세 시대 모자 장수가 있었다. 머리는 새의 탈을 뒤집어쓰고,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형상으로 사람들의 모자를 만들어주며 살고 있었다.


모자를 만들 때마다 그는 신에게 기도했다.

이 모자를 쓸 이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이 모자를 쓸 이에게 아름다워지는 축복을 주세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의 안녕을 기도하며 행복을 기원했다.


착한 마음씨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그에게 인색했다.

뒤돌아 그를 음침하다며 흉보거나 분명 못생긴 얼굴일 것이라 얕보았다.


어휴 저 탈바가지 기분 나빠. 분명 아주 못생겼을 거야! 깃털에서 나쁜 냄새도 날 것 같고 그래도 어쩌겠어!

모자 만드는 솜씨는 최고인데~


그를 향한 말의 화살에 모자 장수의 영혼들은 조금씩 조각나고 있었다. 마음을 다쳤지만 이내 익숙해졌고 솜씨가 최고라는 흔한 칭찬에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보상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에게 자신을 욕한 이들의 축복 기도를 다시 올렸다.


"나의 모자를 쓰는 이들에게 평온을 주세요."


그가 어느 날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신에게 기도했다.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희망의 기도를 드렸다.


신이시여 나와 닮은... 아니 닮지 않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제게 주세요.


신은 그의 가여운 외로움을 알고 있었고 낙망하는 그에게 회복의 시간을 기쁨의 소식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석양이 뜬 오후 황금빛의 공기가 감도는 어느 날


똑똑똑  달칵.


모자 장수의 집 문 앞에 아기 바구니가 놓여있었다.

(c) Whalestar


그는 직감적으로 바구니 속 아기가 자신의 아이가 될 것을 직감했다.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단어들로도 표현할 수 없을 사랑스러운 딸.

자신이 이제껏 본 것 중에 가장 벅찬 선물이었다.

환영하는 마음과 더불어 이제껏 자신이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기를 잘했다며 신에게 감사했다.


모자 장수는 자신은 넝마를 걸치고 마음이 가난하여도 아이에게는 반짝이고 예쁜 생각들을 주었고 세상 최고의 것들을 내어주며 딸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키웠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내 아이라니..."


모자 장수는 아이가 자란 만큼 자신의 마음 그릇도 점점 커진 것을 느꼈다.


그가 평생 쓰고 있던 새 탈도 처음 아이를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어깨를 덮을 정도였지만 조금씩 형태와 모양도 바뀌어 작아지고 있었다.


딸은 귀족 가문들의 서신을 대필해줄 만큼 글솜씨도 좋았다. 어느 곳을 가던 그녀를 환영해 줄 만큼 입에서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말이 흘러나왔고 누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했다.


똑똑.


어느 날 천둥 치듯 큰 노크소리가 대문을 울렸고 집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평소라면 또 누군가 장난쳤을 거라 여기며 읽어보지 않았을 테지만 그날만큼은 다르게 느껴졌다.


"모자 장수,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알 수 없는 메시지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무슨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이지?





편지를 읽어 내려간 스텔라 기자의 눈길이 멈췄다.

이야기가 끊겨있다. 무엇보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녀이기에 그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작가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다.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작가에게 물었다.

작가님 접니다.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모자 장수에게 어떤 시간이 다 되었단 얘기인가요?

호기심 탓에 일을 자주 그르치는 것을 알고도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미출간 된 이야기라 걱정이 돼서 일부 아이디어만 보여주신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의 심중을 간파한 작가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스텔라 기자님 제가 말했잖아요. 이야기가 궁금하면 다시 나의 서가로 오라고요."


나의 얘기는 이곳에 다 있어요. 당신이 집어 든 책 내용 중의 패턴 중 하나가 내가 보낸 내용의 영감이죠.

오늘 나의 서가를 보며 당신은 꽤 지루해 보였어요.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서가에 흥미가 생기나요? 지루하진 않았나요?



작가의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방 맞은 것처럼 헛웃음을 지었다. 상황을 대처하는 작가적 전환 방법에 감동했고 그렇게 다시 그의 서가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오히려 그를 치유하는 힐러로서가 아닌 나의 숨어있는 잠재력과 상상력을 그로 인해 맘껏 펼칠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된 하루였다. 내가 그를 감당할 수 있는 갑의 관계가 아니라 나의 필연적인 존재처럼.

모자 장수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의 서가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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