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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셋째딸 Oct 19. 2021

외할머니의 맷집

통증 맷집을 기르자

95세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이야기를 해보겠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평생 힘들게 사셨지만, 그 연세까지도 특별히 아픈 데 없이 건강하셨다. 게다가 만인의 바람인 ‘주무시다 돌아가시는’ 참 귀한 복을 누리셨다. 힘겨운 삶의 보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편안한 죽음이었다.      


옛날 분들이 거의 그렇지만, 나의 할머니도 엄청 부지런한 분이셨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할아버지가 외도로 집을 나가신 뒤, 초가삼간에 세 남매와 할머니만 남겨졌다고 한다. 산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땔감으로 썼고, 산나물을 캐다가 시장에 팔아 끼니만 겨우 때웠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할머니는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다. 편하게 키보드 두드리며 앉아 있는 지금의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된 삶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할머니가 나보다 훨씬 건강하셨다. 타고난 체질 탓도 있겠지만, 삶의 방식과 습관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매일 산에 올라 나뭇가지를 줍고 나물을 캐는 생활은 당연히 육체적으로 힘들었겠지만, 그 결과 할머니의 다부진 체력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평생 쉬지 않고 일한 습관이 몸에 밴 덕에 아흔이 넘는 연세에도 부지런하고 활력이 있었다. 게으름이 몸에 밴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맷집’이라는 말이 있다. ‘매를 견디어 내는 힘이나 정도’를 뜻하는, 어쩌면 매우 구시대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의 이런 활동력과 체력, 정신력을 감히 ‘맷집’이라고 부르고 싶다. 고된 환경에 맞선 할머니의 당당한 태도와 끈기, 다부진 몸짓을 체력이나 정신력 등의 고상한(?) 말로 설명하기가 어쩐지 어색하다. 할머니에겐 그보다는 맷집이나 깡다구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을 버틸 수 있었던 할머니만의 비결은 바로 이 ‘맷집’이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나에겐 맷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릴 때부터 먹는 것마다 토하고 비실댔다고 하니 말 다했지. 문제는 건강해지려는 노력도 별로 안 했다는 점이다. 철봉에 매달리면 1초 만에 떨어졌고, 있는 힘껏 던진 공도 발 앞에 떨어졌다.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고, 힘든 운동을 일부러 시간 내서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남들보다 느리고 약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할머니처럼 산골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구시렁거릴지언정 매일 산에 오르고 수십 리를 걸어 학교에 다녔다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연약한 친구 ‘클라라’가 산골에서 지내며 더 건강해졌던 것처럼, 나도 타고난 저질 체력을 좀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한의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체력을 좀 키우세요. 체력이 있으면 통증도 그만큼 잘 넘길 수 있습니다.”

청담동의 신경과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일하셔야 합니다. 밖에서 바쁘게 일하고 집에 와서 푹 자는 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이 동네에 환자분 같은 사람 많습니다. 다들 밖으로 나가셔야 해요.”

이들의 말은 결국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온실 속에 있지 마. 힘든 걸 피하지 마. 대신 맷집을 키워봐.”     


힘들게 살았지만 역설적으로 누구보다 건강했던 할머니의 삶에서 힌트를 찾고자 한다. 내게 주어진 힘들고 불편한 상황(통증 포함)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감내할 용기를 내보는 것. 통증 앞에 벌벌 떨지 말고 통증을 견딜 만한 맷집을 키우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 담대함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먼저 체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체력 증진이라면 아무래도 운동이다. 옛날 사람들은 산 넘고 물 건너 장에 가는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에너지 소비를 했지만, 현대인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 등산도 좋고 수영도 좋고 달리기나 자전거도 좋다. 적당한 수준의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은 두통 환자에겐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여기서 잠깐. 근력 운동을 하면 근육이 딱딱해져서 두통이 더 심해질 것이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 역시 ‘온실 속 화초’의 유혹일 뿐이다. 운동은 근육의 혈관 생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근육이 많아지면 그만큼 해당 부위로 산소가 더 많이 간다. 근육이 딱딱해지는 게 아니라 더 건강해지는 것이다. 근육이 뭉쳤다면 가만히 앉아 찜질만 하지 말고 일어나서 움직이길 바란다.      


물론 아프면 움직이기도 싫고 마음도 소심해진다. 나도 잘 안다. 그러나 아프다고 내내 집에만 있으면 나중에 더 아파지더라. 몸과 마음, 둘 다 그렇다. 겨울이라고 집에서 너무 따뜻하게만 지내면 한 번의 외출에도 감기에 걸리기 마련이다. 평소 추위에 적당히 노출되며 내성을 길러야 더 건강해지듯이, 우리 몸에 주어지는 적당한 스트레스 역시 건강해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자.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도전의 순간을 피하지 말고 넘어서는 경험이야말로 맷집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할머니의 맷집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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