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 (완)

by 이계절

1월 31일

이틀 동안은 집에서 가만히 누워있었습니다. 하루 내내 누워있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몰랐어요. 어렵다기보다는 힘들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누워있는 게 쉬기 위함이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행동일 뿐이었으니까요.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을 둘러보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변기와 벽 사이 작은 틈, 침대 아래, 오랫동안 쓰지 않은 수저까지. 누가 검사하러 오는 것도 아닌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청소했어요.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고, 씻느라 물이 튄 욕실을 다시 청소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깨끗해졌을 때 피로감이 몰려왔어요. 물을 마시느라 고개를 젖히니 천장에 먼지가 굉장히 많았어요. 저 먼지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그렇게 청소를 했는데도 저 천장을 닦아볼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왜 못 봤을까요. 이 작은 방에도 내가 모르는 곳이 있다는 게 참 놀랍습니다. 하기야, 내 몸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데 몸 뉘일 곳이라고 잘 알까요.


늘 바쁘게 살아서 잡념이 들 순간이 없었는데 요즘 따라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제가 지나온 곳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니 난 나도 모르는 새 꽤 많은 피해를 입으며 살았더군요. 상대의 고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제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마 지금 같이 돌아보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는 채 살았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는 편이 더 행복했을까요. 그렇다면 그 행복은 온전한 행복일까요.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걸까요. 생각이 멈추지 않아 머리 바깥으로 기어 나오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집에는 쌀 몇 줌과 달걀 2개가 남아 있었습니다. 모처럼 유정란을 샀는데 버리면 아까우니 볶음밥이라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오늘 제가 먹은 달걀을 낳은 닭은 어디 있을까요. 원산지를 보니 대전에 있는 양계장 중 한 마리가 어미였을 테죠. 닭들은 알까요. 제 새끼를 매일 떠나보내고 있다는 걸.


아무래도 이제 자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꿈 없는 밤이 되길 바라며 다시 먼지 붙은 천장 아래로 누워보려고 합니다. 신부님,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2월 2일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어 다시 찾아가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병원에서 영상이 첨부된 메일이 왔습니다. 이튿날 찜질방, 클럽이라고 적힌 우편도 연달아 도착했고요. 이제 정말 생명의 시작점을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문득 눈물이 났습니다. 요즘 참 제 의지와 상관없는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이 정도 흘렸으면 몸에 수분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데도 사소한 것에 또 눈물이 나요. 사람의 70퍼센트는 물이라던데 굳이 제 몸을 열어보지 않아도 맞는 얘기인 것 같았습니다. 사실 찾아가는 곳마다 번번이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게 많이 힘들었어요. 분명 누군가의 씨앗일 아이인데, 왜 나 혼자 이렇게 전전긍긍인 걸까요. 그토록 기다리던 물건들이 눈앞에 있는데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가 우선 메일로 온 영상부터 확인했습니다.


그저 누군가를 감시하고 보호하고자 달린 카메라라고 하기엔 화질이 너무 좋아 놀랐고, 그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제 시술을 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분명 의사가 직접 시술까지 하는 것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제 얼굴에 레이저를 쬐고 있는 건 간호사였어요. 첨부된 영상 아래 메일 본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저희 병원이 너무 바빴던 날이라 진료 시간을 줄일 수 없어서 소속 조무사가 대신 시술 도와드렸습니다. 절대 환자분 몸에 손을 대거나 기타 행동은 없었다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 영상 보내드립니다. 다만, 만약 이 영상을 확인하시고 추가적인 법적 조치를 원하신다면 염치없지만 제고 부탁드리며, 병원으로 먼저 연락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며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사실 간호사도 아니었네요. 이 내용이 없었더라도 대리 시술로 딱히 문제 삼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결과에 만족했으니까요. 따끔거리지 않는 얼굴만 보장되어 있었다면 지나가던 행인에게 치료를 받더라도 상관없거든요. 병원에 간다는 건 그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확률을 높이기 위한 것 아니던가요.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영상 내내 정말 착실하게 시술만 하는 조무사를 확인했기 때문에 메일함을 닫았습니다. 애초에 그 의사가 시술한 게 아니니 더 볼 필요도 없었어요.


남은 건 오늘 도착한 봉투 두 개. 찜질방이라고 적혀있는 봉투부터 열어봤습니다. 안에는 짧고 가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짤막한 글이 적힌 메모지가 함께 들어있었어요. 그땐 미안했다고, 아들놈 잘못 키운 내 잘못이라며 지금은 괜찮은지 제 안부를 물어보는 글씨가 굉장히 서툴렀지만 따스했습니다. 본인의 아들을 감싸기 위함인지, 정말 제게 미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요청했던 건 얻어냈으니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클럽이라고 적힌 봉투를 열었는데, 적당한 굵기의 노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들어있었습니다. 조명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던 그 머리카락. 아직 다른 염색을 하지 않고 그대로인 듯합니다. 머리카락이 담겨있던 투명한 지퍼백에는 ‘연락 사절’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써 있더군요. 저도 굳이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모습을 보인 사람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이 두 머리카락을 새 지퍼백에 옮겨 담고 각각 A, B라고 적어 택배 상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열어 가장 아래 서랍에 넣어둔 핏덩이를 꺼냈습니다. 약을 먹고 쏟아냈던 아기집과 그 피들을 닦았던 휴지를 모아놨거든요. 차마 버리지 못했다거나 그런 게 아닙니다. 그건 유일한 증거기 때문이에요. 내가 누군가의 아이를 품었었다는 증거. 기억도, 상대도, 증인도 없는 이 아이가 존재했었다는 유일한 증거. 이 증거를 지퍼백에 담아 겉면에 기준 검사체라고 적었습니다. 택배 상자는 세 사람의 흔적을 담은 상태로 유전자 검사소로 보내졌어요. 누구나 돈만 내면 핏줄을 가려낼 수 있는 세상이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하네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닐 텐데, 사람들은 참 궁금한 걸 못 참아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최대 열흘이 걸린다고 합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참이 남은 걸 알면서도, 해야 할 일을 마친 기분이에요.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돌아가겠습니다. 이제 이곳을 오는 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좋든 싫든 제 이야기는 끝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 지는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겠습니다.


2월 5일

어제 꽤 늦게 잔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아직 새벽이었어요. 벌써 1월이 다 끝나고 2월이 되었는데 새해 동안 저는 승산 없는 싸움에 뛰어든 것 말고는 한 게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누구는 인턴 신청에, 대외 활동까지 벌써 취업 준비하고 있다는데 전 나중에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지난주 설 연휴 동안, 원룸 빌라 안에는 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들 본가나 큰집에 가서 떡국도 먹고 세배를 올리고 떨어져 있느라 잠시 잊었던 가족에게 인사도 하겠죠. 저는 부모님 대신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떡국 대신 삼겹살을 먹었지만 맛있었으니 괜찮습니다. 떡국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음식과 상관없이 나이는 드니까요.


제 부모님은 평범하신 분들입니다. 커다란 가정불화도 없었고, 풍족하진 않지만 자식 뒷바라지 열심히 해주신 분들이세요. 문제 일으키지 않고 적당한 성적으로 대학에 왔고, 월세를 제외한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달마다 한 번씩은 부모님을 뵈러 갔지만, 저번 달과 이번 달은 가는 건 고사하고 전화 한 통 먼저 드리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걱정 섞인 목소리로 전화가 오면, 대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아무 공모전이나 말하면서 바빠서 연락을 못 드렸다고 얼버무렸습니다.


설에도 아르바이트에 나가봐야 해서 본가에는 못 내려갈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엄마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격려 그리고 미안함이 섞여 있었어요. 본래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말들로 너스레를 떨며 넘어가려고 했지만, 휴대폰 너머로 넉넉하게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라는 말 한마디가 들리자마자 길거리에서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방금 태어난 아기처럼 울었고 숨을 몰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마 엄마는 이유를 모르면서도 어렴풋이 제가 지금 힘들다는 건 알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모른 채 한바탕 울고 나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이전까지는 꾹꾹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눈물이 쉽게 나더라고요.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열 번째나 다름없나 봅니다.


울음이 멈출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준 엄마에게 미안할 거 없다며 안심시키고, 아빠의 안부도 물어보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언제나 딸의 편이 되어주실 분들이라는 건 알지만, 저조차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말씀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 딸의 안위를 걱정하기엔 아직도 직장에 다니며 다른 스트레스가 많은 분들이거든요. 성인이 돼서까지 짐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주면 수강 신청이 있네요. 학교로,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왔다는 거겠죠. 지난 마지막 시험을 잘 봐야만 장학금이 나올 수 있었던지라 반년 정도 다니던 카페에서 그만뒀었어요. 사장님이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고 하셨는데 이번에 다시 가봐야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2월 14일

마지막으로 이곳을 온 게 일주일도 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려고 했어요. 미뤄왔던 메신저 답장도 해결했고, 자연스럽게 잡힌 몇 개의 약속을 나갔습니다. 아직 추운 날씨지만 봄에 입을 옷들을 사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살았어요. 행복하지는 않아도 종일 청소만 하는 삶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웠어요.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지만요.


어제 오후에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대조군 A와 B 모두 기준 검사체와 일치율 0.1 퍼센트 미만. 사실 처음부터 말도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욕탕에 널부러진 콘돔 속 정액이 무슨 수로 제 몸에 들어갔겠어요. 클럽에서 만난 그 남자가 제게 해를 가했다면, 아무리 술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다음날 제가 전혀 모를 리가 없잖아요. 정말 조그만 근육통 하나 없었는걸요. 검사 결과를 예상했는데도 검사체를 보내고 기다리는 열흘 동안은 내심 그중에 내 불안의 원인이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애써 괜찮아 보려고 노력한 모든 것들이 유전자 검사 결과 하나로 쓸모없는 짓이 되어버렸습니다. 신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가 이뤄질 때 종교를 가지게 된다고 하던데, 만약 제 눈앞에 당신이 나타난다면 신에게 목숨이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몸은 이제 내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원인을 모르니 언제 다시 임신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쏟아냈던 그 핏덩이가 정말 아기는 맞았을까요.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이 정말 아기집 배출을 위한 약이었을까요. 대체 그 사람은 누구길래 저를 어지럽히는 걸까요.


이제 성당에는 오지 않겠습니다. 제 말을 들어주는 게 신이든, 신부님이든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부님이 해결해주시길 바라고 이곳에 온 건 아니었지만, 끝을 알고 나니 씁쓸하고 허망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마지막으로, 어딘가에 있을 그 사람이 꼭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오래 오래 살길 바라겠습니다. 꼭 한 사람으로서 속죄하며 살길 바라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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