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일을 하면서 자꾸 조급해지는 게 싫었다.
하루치 할당량이 곧 내 벌이이니 이것을 빨리 처리하고 쉬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자꾸만 발걸음이 빨라지고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별일 아닌 고객 전화에도 불쑥 짜증이 날 때도 있었고 집에 가서 별로 할 것도 없는데도 언제나 빨리 퇴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택배 기사들도 일을 하면서 말과 몸짓이 빨라지고 밥을 급하게 먹는 등 성격이 급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장점도 있다. 택배 기사들 중에 살찐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어지간해선 없을 거다.
나 역시 태어나서 덩치가 있는, 그러니까 타고난 뼈대나 근육 때문이 아닌 지방 때문에 덩치가 있는 택배 기사는 거의 보지 못했다.
몸이 빨라지다 보니 몸에 살이 붙지 않는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어떻게 보면 옛날 어른들이 뱃살을 인덕이라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 여유가 없으면 살이 찔 수가 없다.
나 역시 일을 하다 보니 보통 체격이던 몸에 지방과 근육이 쑥쑥 빠져나가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볼이 잇몸에 달라붙을 정도로 움푹 패어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고 몸은 빨라지니 살이 쑥쑥 빠졌던 것이다.
살이 빠질수록 내 고민도 깊어졌다.
몸이 빨라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고객 응대만이라도 조금 여유롭게 할 수는 없을까?
솔직히 택배 일을 하기 전에도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쉬울 때가 있었다.
택배기사를 하기 전 택배기사와 통화를 하게 되었을 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이듯 말하는 기사님들이 간혹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얼마나 힘들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에 말을 저렇게 할까, 의아했었다.
그래서 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나도 이 일을 해보니, 그때 그 화난 것 같은 기사님들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매일매일 화물차 한 대를 꽉 채우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데다, 쉬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때를 놓치면 쉬지도 못하고 굶게 되어 몹시 예민해진다.
제때 밥을 먹는다고 해도 천국 같은 김밥을 파는 곳에서 주문한 김치찌개 정도로 짜고 혈당이 높아지는 메뉴를 부실하게 먹으니, 금방 다시 배가 고파진다.
그리고 언제나 운전 중이거나 짐을 들고 이동 중이니, 울리는 전화기가 반가울 수가 없다.
더군다나 택배기사가 받는 대부분의 전화들은 가장 순한 맛이 ‘물건 언제 오냐, 몇 시에 오냐’ 혹은 ‘물건이 올 때쯤 집에 없을 것 같은데 어디 어디 놔달라 혹은 경비실에 맡겨달라.’라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매운맛은 잔뜩 화가 나 있거나 불안에 떨고 있는 고객의 전화다.
거기다 그 내용은 ‘배달 완료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물건이 없다.’는, 택배기사 입장에선 듣기만 해도 심장이 덜컥 떨어져 지하세계로 고속주행하는 소리다.
배고프고, 바쁘고, 이동 중인 상황에서 그런 전화를 받으면 아무리 느긋한 사람이라도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피가 머리로 쏠리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좋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야지. 조급하지 말아야지.’
일을 시작하면서 하루에 수십 번 결심해도 밝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운전을 하며 생각해 보았다.
“음... 택배기사가 물건을 못 찾겠다는 전화에 초조해지는 건 근본적으로 그 물건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잖아?
최악의 경우, 물건을 본인이 받아놓고 보상만 받고자 잃어버린 척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잖아.
대부분 전화하는 고객들은 물건을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화를 하는 거야. 도움을 요청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택배를 못 찾겠다’는 전화에 대해 조급한 감정을 가졌던 것이다.
‘내가 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내 배달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항의 전화가 오는 거다.’ 혹은, ‘나는 늘 두던 곳에 제대로 두었는데, 내 일은 제대로 처리가 되었는데 너무 억울하다.’
즉 택배를 못 찾겠다는 말을 내 업무의 완성도를 지적하는 전화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택배기사가 아무리 꼼꼼히 세부사항을 체크해서 배달을 한다고 해도 고객이 직접 받지 않는 이상 완벽한 배달이란 불가능하다.
이런 비대면 시대에는 고객이 집에 있어도 일부러 비대면 배송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택배를 고객이 직접 받는 경우가 드물다.
문 옆에 얌전히 놔둔다고 해도 지나가는 사람이 뛰어 내려가다 발로 찰 수도 있다.
고객이 특정 장소에 놔달라고 했는데 지나가던 이웃이 왜 여기다 이걸 놔둬? 하면서 다른 곳에 옮길 수도 있다.
혹은 고객의 가족이 먼저 집에 들여놓았다가 본인은 못 찾는 경우도 있다.
어르신들의 경우 배송 예정 문자를 받으면 배송 완료 문자인 줄 알고 오전부터 택배가 안 왔다는 전화를 주시기도 한다. 이 외에도 택배를 못 찾는 데는 수백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고객의 전화는 내 업무에 대한 지적도 아니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시비도 아니었다.
그저 받아야 할 물건이 보이지 않아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도움 요청에 그 물건을 배달한 기사의 말이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현관문에 걸린 우유 주머니에 넣어달라 하셔서 그곳에 두었습니다.’라고 하면 ‘아 맞다, 작은 귀금속이라 거기에다 넣어달라 했었네요, 제가 늘 택배가 오던 문 앞에 없어서 순간 그걸 잊어버렸어요.’ 하는 식으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고객의 전화는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다.
화가 난 목소리라면, 너무나 불안한 마음에 마음이 급해 그런 것이다.
이렇게 ‘고객의 전화’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아예 새로 세우고 나니 고객의 전화가 두렵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버럭버럭 화를 내는 고객에게도 ‘내가 도와드린다’는 마음으로 차분히, 최대한 친절히 응대하게 되었다.
택배를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났을 때는 오히려 고객이 전화를 안 주니까 살짝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희우는 부처구나. 어떻게 그렇게 친절하게 전화를 받는 거야?”
“그러게 부처네 부처.”
어느 날 동료들이 내 전화받는 태도를 보더니 신기해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갑게 받을 수 있냐는 것이다.
마음가짐을 바꾼 것뿐인데, 부처되기가 이렇게 쉬웠다니.
아 그러고 보니 우리는 모두 이미 불성을 지닌 존재라는데, 문득 얼마 전의 초조해하며 스트레스받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