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만으로도 살아져.”
“아빠 만약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볼 수 없게 됐으면 어떻게 해야 해?”
“행복했던 때를 생각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그 기억만으로도 살아져.”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중
‘사별’이라는 렌즈를 쓰고 보니 세상 모든 이야기를 다 상실과 엮게 된다. 성서 속 룻기에서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와 남편을 잃고도 시어머니 곁을 지키는 며느리 사이 핏줄보다 진한 사랑을 보며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를 떠올리고는 울었다. 이집트를 떠날 때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후손들에게 자신의 유골을 들고 머나먼 여정을 떠나도록 명령한 요셉의 일화나 배우자 곁에 묻히고 싶어 유언하는 어느 인물의 묘사가 그리도 슬픈 대목이었는지 그동안은 몰랐다. 영화 <코코>에선 살아있는 이들이 이승에서 고인을 추억하는 한 망자는 죽은 자들의 도시에서 소멸되지 않는다는 설정이 마치 실제인 양 와닿았다.
범위를 조금 넓히면,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혹은 과거 선택에 미련이 남아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여행을 하는 타임 슬립Time slip 영화도 많다. 지난주 우연히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다시 보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끝없이 흐르다 이제는 말라버린 눈물샘이 다시 축축해졌다. 사회생활을 이유로 잠가뒀던 수도꼭지는 아무도 없을 때, 스스로가 내면에 귀를 기울여줄 때나마 슬그머니 열린다. 영화의 원작인 기욤 뮈소의 소설을 접한 건 한참 전의 일이다. 외과의사인 주인공을 괴롭히는 건 사랑하는 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회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알약을 얻은 주인공은 몇 번이고 시간을 돌린다. 죽은 연인을 살려내고 달라진 인생의 전개를 맞이한다. 어찌 보면 뻔한 타임 슬립 영화가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건 그 허상이 모두에게 보편적인 것인 까닭일 것이다. 사랑했던 만큼 후회하고 아픈 만큼 간절하기에 결국 한 번쯤 도달하는 허무한 상상. 우주의 신비를 모두 깨달아 알 수 없는 인간임에도 타임 슬립 영화에는 공통적인 한계가 씌워진다. 과거를 바꾸더라도 생과 사는 정해져 있다는 결론. 절대자만이 관여할 수 있는 인간 영역 밖의 세계가 있다는 설정. 세상 누구도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발버둥 치다가도 끝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진리.
슬픈 감정과 밀려오는 회한, 어떻게든 다시 살아내보고 싶은 갈망. 그걸 묻어두는 대신 납득이 될 때까지 꺼내고 우려내는 무의미해 보이는 과정은 사실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내면이 치유되고 아물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고인을 마음에 묻기까지, 남은 이는 자꾸만 고인을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존재로 여기고 말을 건네고 허무해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는 볼 수 없음을 직면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수현 역할을 한 김윤석이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바로 그 순간이다.
“아빠, 만약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볼 수 없게 됐으면 어떻게 해야 해?”
“행복했던 때를 생각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그 기억만으로도 살아져.”
행복했던 때를 생각한다는 건, 상실을 마주 보는 것이다. 이제는 과거가 된 그 순간을 오로지 과거로서, 재현할 수 없는 기억으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그 기억만으로도 살아지더라는 고백은 수현이 아홉 번이나 과거로 돌아가 바꾸려 애썼던 결론을 바꿀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여러 차례 맞섰던 한계에서 겸허해졌음을 보여준다. 그가, 우리가 사랑한 ‘당신’은 이제 3차원의 현실인 ‘거기’에는 없지만, 우리의 머리와 가슴으로 닿을 수 있는 기억 저편의 ‘거기’에는 있다. 3차원에 있어달라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 끝에 도달한 순응은, 남은 이가 추억을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안에 머물러 달라는 독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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