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연애하고 싶다."
"뭐? 무슨 소리야?"
"여보랑 하고 싶단 말이야. 연애"
"결혼한 사람들은 연애하고 싶고, 저 드라마 속 연인들은 결혼이 얼마나 하고 싶겠어?"
연하남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날 쳐다봤다가 이내 안도한다.
돌이켜보면 추억이겠지만, 할 땐 드럽게 힘든 육아 기간 중 가장 심장이 쫄깃해질 때는 잠든 아기가 뒤척일 때와 달달한 드라마를 정주행 할 때가 아닐까.
한지민과 정해인이 나오는 '봄밤'을 시청하며, 단맛이 다 빠져버린 내 일상에 달달함을 채워나가는 중이었다.
극중 한지민은 더는 가슴 설레지 않는 오랜 연인이 있고, 정해인은 약사라는 직업과 잘 생겼다기 보다는 안아주고 싶게 생긴 치명적 얼굴, 그리고 '너무 잘나기만 하면 드라마가 아니지' 라는 듯, 아들 딸린 싱글남으로 나온다.
사랑하면 안될 이 둘이 사랑에 빠지자, 다크초콜릿을 녹여 먹듯 달달함과 씁쓸함이 절묘히 어우러져 안타깝기까지 하다.
하지 말라는 건 묘하게 끌리듯, 드라마 속 저 둘은 결혼이 하고 싶어 미치지만 현실이 이 둘을 가만 놔둘 리가 없다.
나도 그랬다. 연하남과 연애할 때는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 슬프기까지 했다.
친정집 아파트는 마을버스가 다닐 정도로 단지가 엄청 큰데, 집에서 아파트입구까지 걸어나가려면 여간 짜증나는게 아니었다.
한껏 꾸미고 나와도 입구까지 힐을 신고 걸어나오면, 공들여 한 셋팅이 무색하리만큼, 벌써 처져버린 머리카락과 반질하게 떡진 화장. 그리고 약속장소에 닿기 전부터 뒷꿈치와 발가락엔 물집이 잡혀버린다.
그런 이유로 난 우리집이 싫었는데, 연하남이 집에 데려다 주는 길엔 대규모 아파트가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는 길은 항상 너무 짧다. 헤어지기 싫어. 히잉"
그땐 결혼만이 이 문제의 해결점이었다. 결혼을 한 지금은?
역시 결혼은 둘이서만 하는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그와 나 우리 둘이 아니라, 그와 나, 그의 가족 나의 가족이 우리인거다.
서로 너무 바빠, 다같이 식사하는 건 누구 생일 정도였던 우리 가족에게는 당연하게
개인플레이가 몸에 베었지만, 연하남의 가족은 '모두 다같이'라는 가훈이 있다는 듯, 모든 걸 함께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하남은 신혼 초에도 거의 매일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난 그 모습이 굉장히 놀라웠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간답시고 떠나서 전화의 필요성을 못 느껴, 도착한지 일주일 만에 연락하자, 집에서 난리가 났던 적이 있는 무심한 나와 이 남자는 결혼을 하고 우리가 굉장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결혼 한 지금, 난 여전히 그와 나, 우리 둘이 잘 먹고 잘 살고 싶고, 우리 둘을 먼저 생각한다.
아무튼, 모든 커플이 그럴까? 연애할 땐 결혼이 하고 싶고, 결혼을 하면 연애가 하도 싶은...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연애가 핫초코처럼 달달하기만 했다면, 결혼은 모카처럼 달콤쌉싸름하다. 때로는 싫은 점도 보이고, 좋은 점도 발견하는 맛에 같이 사는 재미도 있지만, 결혼은 온전한 나와 완벽한 타인의 모습이 섞인 새로운 세계다.
오늘따라 이런 무거운 것 따위는 다 집어치우고
"아... 연애하고 싶다. 우리 둘이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