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July 18
종일 찡한 코끝, 울컥울컥 거리는 마음을 숨길 자신이 없어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던데 아프면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청춘은 왜 아파야만 할까.
28년 동안 아빠 앞에선 힘들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50만 원을 가지고 일본에 한 달 살기를 하러 갔을 때도 당연히 돈이 부족했지만 내색하고 싶지 않았고, 돈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아 싸고 조용한 카페를 찾으려 길거리를 전전긍긍 헤맬 때도 '돈을 좀 보태주세요.' '돈을 좀 빌려주세요.' '돈이 없어요.'라는 말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이 뭔지 정말 자존심 때문에 그런 건지도 사실 모르겠다. 그때는
보람을 느낀다는 표현을 더 많이 썼고 그렇게 얻어낸 시간이라 더 소중하게 마음에 자리하는 거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보다 더 어른들의 마음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아빠의 무게를 어느 정도 알게 됐고 더 짐이 되고 싶진 않았다. 돈 생각하지 않고 꿈을 좇았던 나의 과거의 결실이 고작 이런 생활이라는 게 실은 별거 없는 딸의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좋아하고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나는 벌써 28이나 돼버렸고 요즘에 난 현실과 이상 앞에서 계속해서 부딪히며 길을 잃고 나는 과거와 미래의 중간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빠에게 밥을 차려주고 그 앞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게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자취를 하겠다는 동생 이야기, 그걸 별로 내켜하지 않는 거 같다는 엄마 이야기 그리고 내 이야기.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진짜 요즘 너무 힘들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이젠 포기야.'
내 목소리는 이미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도 내게 힘든 일이었고, 아빠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곤 아빠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더 생각해 봐야지. 그렇게 무너지면 되겠어?'
강하게 돌아오는 아빠의 말에 나의 대답은 너무 형편없었다.
'정답이 있기는 해? 정답이 뭔데 누가 알려주면 그냥 그대로 하게'
그리고 아빠는
'이럴 때일수록 파이팅해야지.'
그렇게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최근 시작한 게임에 몰두하는 척을 했으나 정신은 나의 감정은 아빠와의 대화에 이미 몰두되어있었고,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빤 내게 뭐 때문에 우느냐고 물었다. 꼬인 일들을 전부 말했다. 그날 저녁 베베 꼬여버려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나의 최근 이야기를 아빠에게 전했고 대화의 끝 마무리는 없었지만 잘 자라는 말 조차 조심스럽게 전하는 아빠를 보며 아빠의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음을 느꼈다.
다음날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늦은 시간임에도 아무도 없었고 부모님에게 어디냐고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조금 취기가 돈 목소리로 남자 친구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건 왜 묻냐고 하자 아빠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우리 수연이 좀 잘 다독여 주라고 말하려 그랬지.'
라고 했다.
크게 무언가가 바뀌진 않았다. 아니 실은 똑같다. 하지만 처음으로 털어놓은 나의 마음을 들은 모두가 적지 않게 놀라며 날 보듬어줬고 혼돈 속에 갇혀있던 나의 마음과 정체성도 어느새 자리 잡혀 괜찮아지고 있었다. 그냥 달라진 건 나의 마음가짐뿐이었다. 꿈을 좇다가 아무도 날 찾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꼭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