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나 청년기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무의식’이란 말을 썼다. “무의식적으로”라는 말을 종종 사용했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도 모르게”라는 뜻으로 썼던 것 같다.
중년에 접어들어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무의식’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무의식은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내가 현실에서 의식하고 행하는 것은 그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으며, 후반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티끌만큼이라도 좋으니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더 ‘무의식’ 이란 말이 어렵고 무슨 말인지도 더 잘 모르겠다.
막 심리학을 공부할 무렵에 ‘무의식은 살아있다’라는 말에 꽂힌 적이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표현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의 나는 다양한 존재와의 마주침 속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무의식은 살아있다’라는 말이 어떤 일이 터지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표현이 아닌, 어떤 일이 벌어진 후에 그 일을 계기로 스스로 깨닫게 되는 과정 속에서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나 상황 속에서 내가 보인 행동이나 궤적이 어떤 작용을 하고, 그 속에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알아가는 감각, 일이 발생한 후에 그전에는 도저히 내가 깨닫지 못한 나의 어떤 무의식을 감지하는 능력을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이 살아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닌 힘들어도 돌아보고 이를 계기로 의식화하는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이나 청년기 때에나 “나도 모르게”가 통용되지, 중년 이후의 삶에서는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인 채로 그냥 넘기거나 아닌 걸 알면서도 거듭 반복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잠들기 전에 그날 하루 내가 한 무의식적인 행동 중에서 걸리는 부분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걸린 부분을 떠올려보며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타인의 행동에서 내가 무엇을 걸려하는지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을 때가 있다.
바쁜 일정으로 그냥 지나쳐도 나의 무의식이 살아있다면, 어떤 나의 행동이나 타자와의 관계에서 내가 걸렸던 부분이 꿈속 이미지를 통해서 드러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에 억압이나 금지, 또는 자신의 틀을 강요하는 사람에게서 압박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알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런 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우선 나는 내가 그런 면을 싫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알자, 그런 행동을 타인이나 타자에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내가 일상에서 보이는 나의 모습이나 타자의 행동을 그냥 무심코 흘러 보냈다면 그러기 힘들었으리라. 에너지를 투자하고 꿈 작업을 통해 나름 의식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에 비해 앎과 지식이 부족하고, 정보력이 없고, 돈이 없어도 무의식에 대한 탐구적인 면에서는 그래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은 있다.
여전히 삶이 힘들고, 관계 속에서 삐그덕대고 있지만 아닌 행동을 나도 모르게 반복하거나, 아닌 상황을 연출하는 타자에게 무턱대고 휩쓸리고 나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