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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Feb 25. 2022

아직 사람이 덜 되었나 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에게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표현을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다.  말을 온전히 반박할  없지만 순순히 동의하기도 어렵다. 누군가와 공존하는 삶을  수밖에 없지만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모두와 잘 지내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으나 관계라는 교집합 안에서 크고 작은 충돌을 전부 피할 수는 없다. 부딪칠 때마다 아프다고만 생각했는데 지나 보니 서로를 깎고 깎이며 매끄럽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상호 간의 조율이 필요한 것이 '관계'임을 배우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원활한 일상을 위해 상대의 움직임에 나를 맞춰갔다. 참다 보면 맞춰질 거라 생각했던 것은 계산 오류였다. 견디고 희생했다고 여기는 만큼 배신감이 컸기에 관계의 끝은 항상 처참하게 깨져나갔다. ‘영원히’ 끝나버린 것처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극단적인 마침표로 서로를 찔렀다.


내가 참고 견딘 만큼, 어쩌면  이상으로 상대방도 나를 품어주려 노력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땐 알지 못했던 것을 시간이 지나서 내가 조금  넓어지고 감정이 옅어진 후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함께 하는 것보다는 혼자가 편하기에 합동보다 개별을 선호하고 가능한 무엇이든 스스로 해낼 수 있기를 원했다. 작은 것이라도 빚지는 걸 싫어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편하지 않다. 독립적인 삶을 위해 무인도에 사는 것처럼 혼자 살아가는 것을 배워갔다. 그것이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자 이상적인 삶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나를 보며 어른들은 대견했지만 동시에 안쓰러웠나 보다. 어릴 때는 어른스럽다고 좋아하더니 자란 후에는 오히려 조금은 기대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힘들지만 애쓰던 습관을 바꾸는 것은 더 어렵다.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이 왜 사회적인 존재인지 알려주는 일이 생겼다.

거리를 두고 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힘든 순간은 온다. 딛고 서있던 땅이 꺼지듯 순식간에 깊은 바닥으로  무너지는 일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먼지 몇 번 털어내고 다시 올라가야 한다. 어느 날은 떨어진 절벽 위를 올라가는 내 앞에 불쑥 손이 보였다. 손잡고 올라오라는 말을 신뢰하지 못하고 내 힘으로 올라갔다. 이후로도 손, 동아줄, 사다리,... 다양한 형태로 도움을 주려했고 나는 받지 않으려 애썼다.


 아무야, 혼자 이겨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도움을 받아도 괜찮아. 아무에게도 상처 안 주고, 도움 안 받고 살기는 힘들어. 그러니 너무 혼자 온전하게 살기를 애쓰지 않아도 돼.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곱씹어 보게 했다. 세상에 혼자서만 사는 것이 아니기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피해를 주기도 한다. 정확히 나누어 떨어지는 산수처럼 살 수 없고 분명 어딘가에는 스며들고 엉켜지며 살게 되는 것이다.


공존을 위해 나를 부수고 다시 조각해가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누군가에게 스며드는 것도 어색하고 관계 속에서 오는 아픔이 두렵기도 하다. 어쩌면 상처를 주는 것도 치료해주는 것도 사람이다. 스스로도 상처를 주기에 혼자 있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방어를 위해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하며 치료하고 회복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면, 이렇게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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