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랑 동생들은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난 형제들을 울리고 말았다. 내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나 때문에 울고 있는 형제들을 보며 몇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여동생의 전화였다. 전화를 하곤 한참 동안 말이 없길래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고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막냇동생이 일을 하다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막냇동생은 나에겐 자식 같은 동생이다. 일하는 엄마대신 동생을 돌보는 것이 내 일이었으므로. 돈이 없어서인지 늘 천기저귀를 빨아서 사용했다. 고무장갑이 많이 비싸진 않았을 터인데 차가운 우물물에 그것도 맨손으로 빨래를 빨다 보니 내 손은 갈라지고 그 틈새로 피가 나기 일쑤였다.
분유 먹이고 천기저귀 갈아 채우며 고무줄놀이를 할 때조차도 내 등에서 떼어 놓지 않았던 늘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시린 내 막냇동생이 그런 일을 겪었다는 걸 알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는데 내가 그런 형제들에게 또다시 같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고 생각하니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훌쩍이는 형제들에게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형제들의 눈물이 쉬이 그칠리는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늘 바라는 소원은 그저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인데 그거 하나 못 들어주시니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누구도 탓할 수 없으니 부모님 탓으로 돌렸던 건 아닌지.
그렇게 눈물의 시간이 흐르고 형제들도 밥을 못 먹었을 거 같다는 생각에 저녁을 먹고 오라고 했다가 야단만 맞았다.
사고 난 날이 수요일이었고 다음 날 모두 출근을 해야 했다. 내 곁을 지킨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쳤다고 해서 모두의 일상이 무너지는 건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괜찮다고 있다가 가도 된다는 형제들을 어르고 달래서각자 집으로 돌려보냈다.
회사 사람들도 형제들도 다 돌아가고 남편이랑 단 둘이 병실에 남았다. 남편얼굴을 보고 있으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속절없이 눈 물만 흐를 뿐이었다. 그런 나를 그저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남편이 가여웠고 이 상황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는 사실에 기가 막히고 한없이 절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