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좀 수상한데? 완전히 까먹었어!
평소에는 절대 쓰지 않는 말들이 있다. 한국어든 영어든 영화 속의 멋진 대사는 우리에게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오래 간직하고 갈고닦아도 쓸 일이 벌어지지 않아 답답하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 직접 그 상황을 만들어 들어가는 수밖에! 언젠가 한번 이런 말을 써보면 좋겠다고 여겼던 표현들을 가지고 상황극으로 들어가 보자.
살면서 뭔가 좀 꺼림칙하거나 의심이 가는 일을 겪을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상황일 때 무어라 이야기하면 좋을까? 힌트! 비린내가 난다고 하면 어떨까?
뭔가 이상할 때 흔히들 뭔가 구린내, 비린내가 난다고 들 하지 않는가? 내게 친절하게 굴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막 칭찬하고 잘해준다면 의심하면서 해 볼 수 있는 말이다.
헉! 역시나 다 꿍꿍이가 있었다.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 어쩐지 수상하게 굴 때 알아봤어야 한다. 그때 억울한 건 억울한 거고, 영화 속 대사처럼 멋지게 한마디 해주면 어떨까? ‘네가 내게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개인적으로 멋지게 느끼는 말이다. 뒷 문장만 바꾸면 얼마든지 여러 가지 표현으로 쓸 수 있겠다. ‘네가 여기 올 줄이야! or 정말 몰랐다!’, ‘시험에 합격할 줄이야! or 정말 몰랐어!’ 뭔가 멋지게 쓰러지면서 뱉을 수 있는 말 같아서 좋아한다.
쓰러지는 나를 보고 곤경에 빠트린 그놈이 비웃으며 중얼댄다. ‘제 무덤 제가 판다더니...’ 뭐라고? 내가 스스로 그랬다고? 내가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니...
직역하면 문제를 요청했다는 말이다. (Ask for help = 도움을 요청하다) 문제를 불러일으킨 게 나라는 말이다. 마침 그때 과거에 잘못했던 일이 생각났다. 맞다. 내가 스스로 무덤을 팠다. (자업자득)
비슷한 표현 유사한 의미다. 내가 그것을 요청했다는 말이니 곧 내가 스스로 빚어낸 일이라는 뜻이다. 결국 모든 수상한 상황과 배신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거나 무언가 함께 하기 위해 미리 약속을 잡는다. 한 명은 그날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리고, 다른 한 명은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지 그 약속 자체를 잊어버리곤 한다. 거짓말 같은 일이지만 이런 상황은 정말 자주 종종 많이 벌어진다.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자.
바로 오늘이다 오늘. 그 사람과 만나는 그날! 오늘을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했다. 집을 나서면서 반가움에 곧 보자고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도착한 답문 메시지가 가관이다.
이 놈 뭐라는 거야. 완전히 까먹었다고? (근데 왜 갑자기 영어로... 뭐 설정은 내 마음이니) ’Slip’은 미끄러지다는 의미가 있는데 그 약속이 자기 마음에서 완전히 미끄러졌단다. 이 놈 제정신이 아니다.
이걸 어쩌나 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때 바로 연속으로 도착한 메시지.
비 티켓? 비 수표? 뭐라니 이 놈. (또 영어로... 영어가 편한가 보네) 찾아보니 ‘A rain check’은 운동 경기 관람하러 왔을 때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되면 나누어 주던 재입장 가능 티켓이라고 한다. 결론은 다음으로 미루자는 이야기다. 완전 지 마음대로 구만.
마음이 좋지 않다. 난 이 날만 기다렸는데 이 사람에겐 중요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지질하게 굴지 말아야겠다. 한마디 던져주고 쿨하게 마무리해야겠다.
직역하면 ‘네 머리가 구름 속에 있지 이놈아?'로 ‘마음이 다른 곳에 빠져있구나?’하고 콕 찔렀다. (나도 영어 쓸 줄 안다 이놈아) 다른 사람 생각이라도 하고 있나 보지 뭐. 너랑은 이제 끝이야. 바이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