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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an 26. 2021

할 수 있다고, 해보면 별 것 아니라고

개학 전 폭풍전야

아들이 아프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몸은 고열과 콧물이 줄줄 나고 마음은 답답하고 막막해하고 있다. 당장 병원에 갈 수도 없다. 병의 원인과 해결책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야 낫는 것임을...


하룻밤만 자고 나면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시작을 아들의 온몸과 온 마음이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긴장과 두려움이 꽤 있다. 요즘엔 매일 밤 날짜를 새면서 심각한 얼굴로 말하며 잠자리에 든다. 


'나 마음이 답답해. 1학년 가는 거 걱정된다.' 나와 닮은 아들을 보며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고 위로해준다. 그리고 내가 겪은 수많은 시작과 그 떨림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신기한 눈과 귀로 열심히 듣는다. 정말 그랬냐며 아빠도 처음에는 힘드냐며 물으면서 조금 안정을 찾는다. 다행히 몸과 마음은 그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나아지고 있다. 스스로 잘 이겨내고 준비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날은 중요한 날이었다. 아침 일찍 나와 아들은 예쁘게 보이기 위해 단골 미용실을 찾았다. 아들 생일 잔칫날에 왔었으니 거의 2달 만이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만 오는 셈이다) 그렇게 꽃단장을 하고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아들의 올해 교실을 둘러보며 담임 선생님과 첫인사를 나눌 수 있는 중요한 약속이다. (놀랍게도 개학 전에 이런 시간을 제공한다!) 모두 좋았다. 교실 위치도 교문과 가까워서 좋았고 담임 선생님도 느낌이 좋았다. 반갑게 아들을 맞아주시며 작년 선생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하시며 기분 좋은 칭찬 멘트도 해주셨다. (베리 클레버 보이!) 아들이 제일 걱정했던 새로운 반 친구들에 원했던 친구들이 꽤 포함되어 있어 안심했다. 돌아오는 길에 작년 반 선생님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언제든 와서 인사 나누자고!) 아쉽게도 모두 다른 반이 된 작년 반 친구들과 미리 정한 약속대로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 왔다. 아직은 왜 매년 선생님과 친구들이 계속 바뀌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사실 나도 설명은 그럴싸하게 해 주지만 잘 모르겠다.)


아들은 오늘도 스스로 다짐하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할 수 있다고. 해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새로움이 가득한 이 곳에서 겪은 진리를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기에.


응원하고 대견하고 사랑한다.



불안 긴장 걱정 담담 웃음 당당





일상다반사



1. 첫 여름성경학교

방학 내내 엄마 아빠와 붙어있다가 처음으로 이틀 동안 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눈물도 글썽이고 어려웠지만 결국 아주 신나게 보내고 왔다. 가장 막내였지만 잘 놀고 잘 먹고 왔다. 스스로도 해낸 뿌듯함이 즐거운 눈치였다. 잘했어 아들!



2. 칭찬 코인(첫 용돈)

작년까지 주던 칭찬 스티커를 올해부터 용돈처럼 주는 '칭찬 코인' 방식으로 바꿨다. 여전히 받는 조건은 아주 쉽다. 밥만 잘 먹으면 준다. 가끔 방 정리하거나 한글 놀이에 집중하면 또 준다. 이렇게 쉽지만 밥 먹기 힘들어하는 아들에게는 어려운 조건이다. 


이번 여름성경학교에서 밥을 잘 먹고 온 아들이 꽤 용돈을 모았다. 얼마인지 매번 물어보고 무엇을 살 수 있는지 확인하더니 이제 살 때가 되었다고 결심했다. 첫 용돈을 사용했다. 가격을 따지며 물건을 고르고 직접 계산했다. 기분이 많이 좋은지 다시 모으려고 집중하고 있다. 쉽지는 않지만... ^^;;



3. 영화 취향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DVD를 5개 빌려왔다. 사실 나랑 파랑은 지난겨울에 장만한 해리포터를 정주행 하고 싶었는데 아들이 1편을 보고 나더니 겁에 질렸다. 나쁜 주인공 볼드모트의 얼굴이 무서워서 더 이상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아들 수준에 맞는 영화로 잔뜩 빌려왔다.


아들은 바다와 관련된 '니모를 찾아서', '도리를 찾아서'를 여러 번 보았다. (이러다 외울 기세) 지난 저녁에는 다 같이 '토이 스토리 2'를 즐겼다. 나도 토이 스토리를 본 적이 없기에 감명 깊게 보았다. (명작이다 명작!) 아침마다 장난감의 위치를 열심히 따져보는 아들이 귀엽다. (진짜일 수도 있어!)


첫 여름성경학교
첫 용돈 사용






아들 어록


1.

어제 이런저런 다른 모임이 있었는데 아들의 몸상태로 집에서 쉬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랑 파랑이 각자 불참 연락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옆에 있던 아들이...


‘왜 내 핑계대?’


ㅋㅋ 맥락을 잘 이해한 아들이었다. 핑계와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지만 깔끔한 표정이 아니었다 ^^;;



2.

비가 부슬부슬 오는 아침 따로 우산을 챙기지 않고 나섰다. 거의 안 오는 거랑 마찬가지였는데... 아들이 한 마디 거든다.


‘그러다 가랑비에 옷 젖는 거 아냐?’


하하. 요즘 속담 책을 즐기더니 제대로 써먹었다!



3.

남자 아이라 그런지 가끔 허세가 나온다. 어제는 밥 먹으면서 갑자기 한 숟가락 힘차게 먹더니 외친다.


'귓구멍도 안 차네~’ 


엥? 이게 도대체 뭔 소리여? '간에 기별도 안 가네'같은 뉘앙스인 것 같은데 비슷한 말을 우리는 전혀 몰랐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어떤 옛날이야기에서 들어본 것 같다고 했다. 그래... 우리가 모르는 말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들었을 때 의미가 통하면 되었지! 밥이 얼마나 적으면 귓구멍에도 꽉 차지 못할까? ㅎㅎ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바다, 피아노,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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