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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18. 2024

따분한 부모는 노잼

<DANNY the CHAMPION of the WORLD>

까맣고 고요한 밤과 새벽 사이. 달빛도 별빛도 새어 들어올 틈이 없는 어두운 숲속. 사라진 아빠를 찾으려 무작정 달려 나온 소년. 방향도 거리도 잃어버린 대자연의 한복판. 들리는 소리라곤 자기 발걸음에 불과한 적막함. 어린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헤매고 있을까. 짓누르는 두려움을 얼마나 더 견뎌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큰 소리로 그를 불러본다. 돌아오는 건 방금 입에서 빠져나간 익숙한 소리의 작아진 울림뿐.


어릴 적 모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꼭 이처럼 극적이진 않아도 떠올리면 바로 소름이 돋는 그런 추억 말이다. 술래잡기 놀이가 깊어져서 산속 무덤가까지 올랐던 저녁. 포도밭 서리를 하다 걸려 신발을 잡아 들고 도망치던 아침.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조금이라도 빨리 구하기 위해 학교 담장을 넘은 대낮. 모험이라 하면 위험이 예상됨에도 기어코 하는 것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은 모두 모험이 아닐까. 세상에 나온 이상 위기가 없는 순간이 있을는지. 생명의 위협까진 아니더라도 모든 선택의 기로마다 다양한 위험을 감수한다. 포기한 다른 쪽에 대한 후회, 행동하며 나아가는 길에 닥칠 힘겨움. 모두 우리가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들이다. 모험으로 가득 찬 시간이 우리의 인생이다.


자신 외에도 주변의 다양한 모험가를 만난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가까이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부모다. 우리보다 최소 이삼십 년을 더 모험해 온 베테랑이다. 태어나자마자 백지로 나와 바로 그들에게 물들어 간다. 홀로 서는 그때까지 꽤 긴 시간을 선배 모험가와 함께 다닌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운다. 꼭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더라도 대선배의 모습을 쏙쏙 흡수하며 자란다. 이때 보고 느낀 것들은 평생의 모험을 좌지우지한다. 앞으로 나설 길의 기초가 되고, 방향을 정하는 근거로 남는다. 그만큼 처음으로 함께하는 부모와의 모험은 꽤 중요하다. 유명한 모험가들의 공통적인 증언에 따라 밝혀져 왔다. 유년기의 흥미롭고 의미 있는 단 한 번의 모험이 때론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기도 한다고.


이 책은 로알드 달의 다른 책과 결을 달리한다. 불행한 상황에서도 순수하고 바르게 지내다가 결국 악당에 맞서 승리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다른 점은 아빠와 아들의 관계를 향한 집중이다. 작가의 책을 대부분 다 읽은 내 기억이 맞다면 부모와 아이가 밀접하게 등장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부모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나쁘거나 보조적이었다. 현재 주 양육자로서 아들을 키우는 아빠인 내게 친밀한 상황이었다. 나도 내 아들과 이런 숨 막히는 모험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차올랐다. 다 읽은 뒤 입으로 들려준 이야기에 아들도 열광했다. 매일 밤 이야기가 끊어질 때마다 다음을 궁금해하며 잠들었다. 끝나고 난 뒤 언젠가 우리만의 모험을 기약했다. 읽지 않았다면 내 어릴 적을 돌아볼 일도 없었고, 아들과 새로움을 계획할 일도 없었을 테다.


내겐 선배 모험가와의 강렬한 일탈의 추억은 없다. 평이한 지난날이 나만의 평범함이 아니기를. 물론 잔잔하고 따뜻한 기억도 충분히 정감 있게 남아있다. 단지 딱 한 번이라도 모험이라고 불릴 만한 기억의 부재가 아쉽다. 아직 나와 아들에겐 기회가 남았다. 판에 박혀온 듯 지루하게 살아왔던 나지만, 균열을 노리는 요즘이다. 주인공 대니가 느꼈던 흥분을 내 아들에게도 남겨주고 싶다. 아빠와 함께한다면 언제나 즐거운 일이 벌어진다고. 때론 예상치 못한 즉흥성과 기발한 발상을 발휘할 수 있는 아빠로 남고 싶다. 재밌고 흥미진진한 하룻밤의 탐험으로 평생을 이어가는 관계가 되고 싶다. 아들이 내 품을 떠나 혼자만의 모험을 나서기 전에 꼭 한번 이루고 싶은 소원이다. 어디서도 해 볼 수 없는 우리만의 그 짜릿한 경험을 바란다.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DANNY the CHAMPION of the WORLD (Roald Dahl/PuffinBooks) - 20년 6월 완독

[최고의 문장]
- A stodgy* parent is no fun at all.
- What a child wants and deserves is a parent who is SPARKY**.

*stodgy (지루한, 따분한)
**SPARKY (생기발랄한, 재기 넘치는)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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