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파트타임 도전 실패 후 아예 일하는 건 시도도 안 하다 수능이 끝나버렸다. 햄버거 가게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가 갈빗집에서 일하고 있다며 나도 같이 하자고 권유했다. 나는 그렇게 갈빗집에서 파트타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많은 밑반찬 세팅, 서빙, 고기 굽기, 치우기 정말 쉴 새 없이 바쁜 곳이었다.
고기 굽는 법도 모르는데 고기 굽기에 투입이 되었다가 너무 태운다며 손님에게 집게를 뺏기기도 했고 후식을 올려 드릴 때 어르신을 두고 제일 안쪽 손님부터 드리다 혼나기도 하였다. 식사 후 치울 것은 어찌나 많던지 이삿짐센터에서나 쓸법한 커다랗고 노란 바구니 안에 치울 그릇을 전부 다 집어넣어 주방으로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게 무겁고 힘들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같이 일하던 친구들, 두 살 터울 언니들과 시간이 갈수록 친해졌고 상 치우면서 손님들이 남기고 간 고기를 서로 입에 재빨리 넣어주며 우걱우걱 씹어 삼키다 웃어 젖히기도 하였다.
그때 먹은 고기가 어찌나 맛있던지..
힘들어도 같이 으쌰으쌰 하고 부당한 일에 열변을 토하며 하소연할 땐 서로 공감해 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보기도 하였다.
그때 처음 '이렇게 같이 어울려 일하는 것도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생활 외에 다른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기에 낯선 이들과 친해지는 느낌이 생소하기도 하였다.
같은 일을 하며 느끼는 유대감과 시간을 함께 보낼수록 친밀감이 형성되어 일하러 가는 길도 즐거워졌다.
그렇게 3개월의 일을 끝내고 여러 해가 지나 나는 한 기업에서 운영하는 중식당에 취업했다.
같은 학과 언니가 퇴사 후 방황하던 나에게 추천해 주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인데 또래 친구들이 많아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내가 취업한 곳은 매장 위치의 특수성 때문에 마이너스매출 일수 밖에 없던 곳이었는데 월말 평가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받을 때면 위축이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직원들끼리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될지 고민도 많이 하고 여러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동료들끼리 똘똘 뭉쳐 돈독해지는 경험도 하였다.
그렇게 일을 하며 '동료애'가 무엇인지도 점점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지점에 비해 좋지 못한 성적을 내는 곳이었지만 우리끼리 위축된 만큼 노력을 하면서 서로 토닥여주고 응원해 주는 일이 많았다. 일이 힘들 때는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힘내자고 격려해 주고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면서 동료들이 가족같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물론 회사였기에 개인별 평가를 받았고 나 스스로도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 맡은 업무를 착실히 하면서도 때로는 동료들과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지점이라는 조직아래 우리 매장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 같이 힘을 모아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다.
아무리 매출이 잘 나오는 매장이더라도 직원들 간의 불화로 잦은 인원교체가 되는 매장은 일하는 분위기가 흐려졌고 그런 분위기는 손님에게 집중해야 할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이어져 결국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됨을 타 매장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역량보다도 팀워크임을 배울 수 있었고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는 중식당에서의 근무를 통해 그전 회사에서 일할 때는 느끼지 못하였던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전의 회사는 사무직이었고 개인의 맡은 업무가 정확히 나뉘어 있어 직원들끼리 의견을 주고받고 소통하기보다는 본인의 업무만 잘 해내면 되는 곳이었다.
사무실에선 자판 두드리는 소리, 업무 통화를 하는 소리, 부장님의 한숨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곳이었고 어린 나이에 취직했던 나에게 직장 상사들은 하늘같이 높은 존재였다. 선배들조차도 거리감을 좁힐 수 없을 만큼 나이차이가 많이 났고 그때 성격의 나로서는 더욱더 먼저 다가가기 어려워했기에 한마디 말도 없는 나를 선배들도 답답해하여 회사 생활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퇴사 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직장을 옮기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다 같이 어울려 일하며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고 손님들을 응대하는 서비스직이 나에게 맞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