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던 나였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피구를 시키면 스탠드 그늘에 들어가 앉아 있던 학생이었다(물론 피구의 규칙상, 내가 이기려면 남을 때려야만 한다는 그 개념 자체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몰래 거부하는 마음도 있었더랬다). 초등학교 때는 심지어, 줄넘기 쌩쌩이가 수행 평가 과목이었는데, 쌩쌩이를 아무리 연습해도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해서 최하점을 받기도 했다(꼭 쌩쌩이가 아니고서라도 체육에서는 거의 늘 최하점을 받았다). 50미터 달리기를 시키면, 선생님이 옆에서 걷지 말고 뛰라고 소리치곤 했다. 하나 그때의 난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전력 질주 중이었다. 달리기가 11초가 나온다고 하면 반 친구들이 다들 100미터 기준인 줄 알았다. 그렇다, 나는 50미터도 100미터 기록으로 달리는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나였는데, 이상하게 물놀이만큼은 가슴이 뛰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수영을 시작했더니, 수영에 소질이 있고 운동 신경이 있다는 이야기를 수영 선생님에게 난생처음으로 들었다. 처음에는 수영 강습비를 지불해 놓은 관계로 수업을 빼먹자니 돈이 아까워서 갔다. 그렇게 반강제로 성실한 날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 몇 달간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실력이 늘었다. 다음 날 평영 발차기를 배울 거라고 선생님이 예고하면, 전날 저녁부터 설레서 심장이 뛰었다. 다음 날 오리발(수영에 사용하는 핀을 오리발이라고도 칭한다)을 가져오라고 하면, 드디어 나도 신어 보는구나, 하고 너무 신나서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길거리를 깡충깡충 뛰다시피 하며 오리발을 사 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갈 동안, 강습을 들으러 수영장으로 향하는 아침이면 사위가 깜깜하던 겨울이 저 멀리에서 동이 터 오는 여름이 되었다. 그렇게 햇살이 비칠 때면 수영을 하다가 물속에 일렁이는 빛줄기와 앞사람의 발에 산산이 깨지는 황금빛 공기 방울들의 움직임도 구경하며 수영에 점차 빠져들었더랬다.
이렇게 취미로 즐겁게 수영을 하던 내가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증과 적십자 인명구조요원(다른 말로 라이프가드라고도 한다) 자격증을 정말 수영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자 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왠지, 5년 정도 배웠으니 기왕이면 사람 구하는 데에도 써먹어 볼까, 하는 그간 배운 것의 효용성을 따지는 관점에서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땄던 것이다. 그러나 하마터면 사람을 구하다 내가 죽을 뻔했다. 자격증을 따려면 교육을 이수하고 필기 및 실기 시험에 통과해야 했는데, 그 때문에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6시간씩 수영을 해야 했다. 2시간 이후에는 체력이 고갈되었는데 그냥 악을 써서 버티는 수준이었다.
헤드업 자유형, 구조 횡영 등 다양한 구조 영법을 익혀야 했던 건 기본이었다. 제일 힘들었던 기억은 중량물 옮기기였는데, 5kg의 무쇠 원반을 옆구리에 끼고 구조 횡영으로 25m를 헤엄쳐 가야만 했다. 차라리 사람은 부력이 있어서 물에서 옮기면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5kg에 달하는 이놈의 고철 덩어리는 부력이 하나도 없는 탓에 그러잖아도 6시간의 수영에 기진맥진한 몸을 자꾸 아래로 끌어내렸다. 덕분에 겨우 10m를 가면서도 물을 잔뜩 먹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거기다 성공할 때까지 30분 이상 이어지던 입영 지옥도 있었다. 인명구조요원 시험에 합격하려면 로터리킥으로 선헤엄을 치면서, 귀와 양손 손목이 물 밖에 나온 상태에서 5분간 버텨야 한다. 이때 귀가 물에 잠기거나, 손목이 물에 잠기거나 하면 실격이다. 그렇기에 그중 어느 신체 부위든 물에 잠긴 훈련생의 경우, 훈련을 지도하시던 강사님은 그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너, 너, 하고 너. 5분 추가." 그 말을 마치고 반쯤 물에 빠져 죽어가던 훈련생들 틈바구니에서 느긋하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가 다시 넣던 그 모습. 그때 나는 악마를 보았다.
그런데 이렇듯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난관이 너무도 많았으나 몇몇 동기들은 너무도 평안해 보였다. 특히 5m의 깊은 물에 잠수해서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오라는 강사님들의 말씀에, 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사위와 먹먹해지는 귀와 이렇게 내려가면 숨 쉴 구멍이 없는데 어떻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지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하고 패닉에 빠져서 3m쯤 내려갔다가 화급히 부그르르 올라와 캑캑대고 있을 때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시원스럽게 바닥을 찍고 올라왔다. 나는 매일같이 이어지는 지옥 훈련에, 길거리에서 중심을 못 잡고 쓰러져 아스팔트 바닥에 광대뼈를 찍기까지 했는데도(그 와중에도 아스팔트에 넘어진 채로 손목과 발목을 돌려 보아 팔다리 관절은 멀쩡한 것을 조심스레 확인하고 얼굴에는 밴드만 붙이고 훈련에 왔다. 하루라도 결석하면 과정 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훈련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화기애애하게 잡담을 하며 곧 먹을 저녁 메뉴 생각에 화색이 도는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알고 보니 현역 수영 선수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배신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인간 승리를 한 끝에 자격증을 따고 나니, 정말 뿌듯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주변의 수영인들은 조언해 주었다. “그렇게 체력이 올라왔을 때 생스지(생활스포츠지도사의 줄임말)까지 한 번에 따야 한다. 체력이 내려간 상태에서 다시 훈련하려면 힘들다.” 그 바람에, 별로 생각이 없었던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마저 따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딸 때 이상의 고생을 했다. 아침저녁으로 수영 및 지상 훈련을 한다고 과도하게 운동하다가, 오른쪽 어깨 힘줄이 미세하게 파열되고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몇 주간 충격파 치료를 받고 소염제를 먹는 등 고생을 상당히 했다. 거기다, IM 100 기록(IM이란 Individual Medley, 즉 개인 혼영의 약자이다. 생스지 2급 실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접영-배영-평영-자유형을 각 25m씩 이어서, 총 100m를 수영해야 한다. 이때 남자는 1분 30초, 여자는 1분 40초 안에 들어와야 한다)이 생각만큼 줄지 않아서 정신적 자괴감과 우울감도 상당했다. 아무리 좋아하던 일도 업이 되면 괴로워진다는 말을 절감한 시기였다(물론 아무도 내게 수영을 업으로 삼으라고 시키지 않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자격증을 딴 건지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계속 기록을 재도 합격 커트라인에 들지 못하다가, 시험 당일 기적처럼 기록이 나와 믿기지 않게도 합격했다. 그렇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생고생을 하며 수영 자격증들을 수중에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고로 번역 마감을 마치고 비교적 한산해진 어느 날, 라이프가드를 함께 딴 동기들이 수영장에서 일한다는 소식들을 접하고, 혹시나 해서 다니던 수영장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마침 딱 그날까지만 이력서를 접수하는 강사 모집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그 공고를 보자 수영 강사를 내가 감히 해볼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잠시 들었지만, 워낙 좋아하는 수영을 가르치는 일이니만큼 도전해보고 부딪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 걸어서 15분이니 차비가 들지 않고, 출퇴근길 인파에 시달릴 걱정도 없으니, 조건 역시도 완벽했다. 익숙지 않은 일이라 공부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어떻게든 해보자는 기세가 생겨, 그 길로 급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보냈다.
연락을 기다리면서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문들을 만난다. 추구하던 문이 닫혔을 때, 세상이 끝난 것 같더라도 언제나 옆으로 돌아가면 다른 문이 있다. 그 새로운 문을 열기를 주저하면 안 된다. 살면서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당장에는 좋아 보이는 변화이더라도 나중에 가면 그게 아니었다 싶을 수도 있고, 당장에는 나빠 보이는 변화이더라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계기라고 생각될 수가 있다. 영어에서도 “변장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전화위복이라고 하지 않는가. 번역 마감을 마친 날, 주변 수영장의 공고를 보고 어쩌다따게 된 수영 자격증을 활용해 보겠다고 마음먹어 수영 강사직에 지원하게 되었고, 수영 강사로 일하기로 마음먹음으로써 이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으니, 어쩌면 그야말로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프리랜서 번역가로 살아오면서, 정말 어떤 우주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하나의 일이 끝나면 귀신같이 다른 일이 테트리스처럼 딱딱 맞물려 들어오곤 했다. 만일 그렇게 줄곧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테트리스의 다음 블록이 하늘에서 내려오질 않는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내가 다음 블록을 만들면 된다. 어떤 재료로든, 내 손에 닿는 최선의 재료로 그 블록을 만들어, 인생의 테트리스를 차곡차곡 완성하면 된다. 이 문을 열면 그 뒤에 그 재료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늘에서 떨어진 테트리스를 구성한 재료보다도 더 값진 재료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새로운 문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미래를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