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수하는 김에 열수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거죠
루틴이 있는 일상을 좋아한다. 요즘 나의 첫 모닝 루틴은 새벽 6시~6시 반 사이에 일어나 수영장에 씻으러 가기다. 집에도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멀쩡한 샤워기가 있지만 굳이 수영장까지 가서 씻는다.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에게 ‘샤워’는 하루 일과 중 빼먹기 가장 쉬운 행동인 데다, 마감이 몰려 집에서 일하다 보면 저녁이 되어도 꾀죄죄한 몰골로 책상 앞에 앉아있기 십상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이러려고 프리랜서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 수 있기에 일단 씻고 보자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수영장까지 걸어간다.
집에서 수영장까지 도보로 10분. 어차피 걸어야 하는 길, 산책이라 생각하고 걷는다. 10분 새벽 산책은 생각보다 즐겁다. 맑은 날엔 맑아서 좋고, 비 오는 날엔 축축하긴 해도 덥지 않아 좋고 눈이 내린 날엔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을 수 있어 좋다. 수영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6시 50분에서 7시 사이다.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을 때쯤 온몸과 머리가 깨어 나는 걸 느끼며 약 29.4도의 수영장 물로 풍덩 뛰어든다. 이왕 온 김에 수영을 하다 보면 열심히 하게 된다. 8시 반쯤엔 한결 상쾌한 기분으로 수영장을 나선다.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한 나를 위한 보상으로 맛있는 모닝커피를 마신다. 수친(수영 친구)들과 아침 일찍 문을 여는 데 커피도 맛있는 카페를 찾아갈 때도 있고, 집에 돌아와 가벼운 아침식사와 함께 핸드 드립으로 내려 마시기도 한다. 커피를 마신 후엔 주방을 정리하거나 식물에 물을 주거나 청소기를 돌리거나 가벼운 집안일을 한다.
오전 10시 즈음 마침내 내 서재로 출근한다. 점심 전까지는 주로 그때그때 써야 할 원고를 쓴다. 잡지나 사보에 기고할 글이든 내 책에 쓸 글이든 오전에 글을 시작해 놓으면 오후에 이어 쓰기 한결 수월하다. 어제 쓴 초고를 집중해서 퇴고하기에도 오전이 좋다. 아무래도 점심밥을 먹고 나면 나른해지기 쉬우므로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나가 일을 하기도 하지만 내 책상과 듀얼 모니터가 있는 서재에서 주로 일을 하는 편이다.
식기를 정리하고 소화시킬 겸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고 보고 싶은 영상 하나를 골라 실내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소파에 누워 영상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유튜브만 보게 되는데, 실내 자전거를 타면 그만 타고 싶은 마음에 영상도 그만 보게 된다. (그래서 실내 자전거는 오래 타야 20분이다.)
커피 한 잔을 더 내려 책상으로 가기 전엔 주로 빨래를 돌린다. 오전에는 일에 집중했다면 오후에는 ‘집안일’과 ‘글 쓰기’를 병행하는 게 전략이다. 타월을 모아 빨래를 돌리고, 자 이 빨래가 끝날 때까지 나도 퇴고를 끝내자 하는 식이다. 타월 빨래가 끝나 건조기를 돌리면서는 사진을 셀렉 모드에 돌입하는 식이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나의 타이머이자 페이스메이커라고나 할까. 물론 딴짓도 한다. 타월 빨래를 하려고 보니 화장실이 지저분해서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하고, 냉장고에 뭐 먹을 게 없나 뒤적거리다가 주방 청소를 하기도 한다. 딴짓도 청소로 하면 일은 진척이 없더라도 집은 깨끗해진다.
이렇게 집안일을 병행하며 일하다 보면 일 때문에 집안일이 밀리는 걸 예방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집은 휴식 같은 공간이어야겠지만, 나처럼 집이 일터이자 쉼터인 프리랜서에게 집이라는 공간을 아늑하게 유지하는 게 몹시 중요하므로. 아무튼 그렇게 일하다 보면 정해진 분량의 일을 어떻게 든 끝내고 저녁 식사 전에 퇴근하는 날이 많아진다. 그럴 땐 남편을 만나 데이트를 할 수도 있고, 친구와 저녁 겸 한잔할 수도 있고, 조용히 요가원에 가 요가를 하며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이완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일찍 잠들기까지 하면 다음날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떠 수영장에 씻으러 갈 수 있게 된다. 이런 게 선순횐 아닐까.